Login

떠도는 섬

자명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4-04-02 16:40

자명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사방이 물로 둘러싸여 고립되어 있는 지역을 우리는 섬이라 말한다. 어느 곳은 썰물이면 육지와 맞닿아 있다가 밀물 때면 수면위에 떠 있는 섬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망망대해에 고고히 떠 있는 섬을 외로움과 고독에 비유하는가 하면 인고를 견디는 삶을 대변하기도 한다. 물이 아니라도 우리 주변에는 섬처럼 떠 있고 고립된 모습들을 자주 보게 된다. 수많은 친구들이 있다고 하면서도 혼자가 되면 금방 외롭다하는 모습이 그렇고, 사과밭 한가운데 자두나무 한 그루의 모습은 흡사 섬과 다를 바 없다.

출근 시간이면 어깨를 부딪치며 걸어야 할 정도로 인파로 가득한 서울의 을지로역 입구는 밤이 되면 인파 속에 고립된 섬들이 만들어진다. 출근 시간 전후로 뿔뿔이 흩어져 어딘가에서 하루를 보낸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끼리끼리 작은 군락을 이뤄 섬들의 지형이 생긴 것이다. 그 섬들도 질서가 있어 어떤 섬들은 가장자리를 잡고 두툼한 이부자리를 펴고 있는가 하면 찬바람이 들어오는 입구와 가까운 섬들은 박스로 둘레를 치고 자리를 잡는다.

이른 아침 세찬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는 날 나의 걷는 장소는 늘 지하도다. 호텔 근처의 시청역을 출발해 을지로역 입구를 지나 동대문까지 가는 지하도에서 발견하는 떠도는 섬들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늘어나고 연령층도 더 낮아지고 있다. 여성 노숙자들이 크게 늘어나는 것도 최근의 변화다. 이미 날이 밝아오는데도 소주잔을 나누는 이들이 있고 누군가는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다. 한때는 귀한 자식으로 태어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을 것이고, 한 가정의 사랑받는 아빠, 엄마였을 것이다. 각자의 간직한 지난날들의 시간은 찬란했고 화려했을 시간들도 분명 있을 터.

최고의 명문대학을 나와 누구나 선망하는 직장에서 일하다 캐나다로 이민 와 사업을 시작했으나 일순간에 사업이 망해 노숙자가 되었다는 어느 한국인의 사연을 방송에서 본 적이 있다. 을지로역 입구와 광화문 지하도를 건널 때마다 마주치게 되는 노숙자들을 볼 때마다 영상 속 그 이민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는 매일 같이 사람과 사람들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한다. 대부분은 스마트폰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쉼 없이 대화를 나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않는가 하면 사람들을 만나 수다를 떨다가 헤어지면서도 “이따 문자해” 하면서 손을 흔든다. 매일같이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혼자가 되면 무료하거나 심심해 수시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우리는 을지로 지하도에서 본 섬들과 분명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정신은 이미 스스로 섬을 만들어 놓고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지도 모른다.

지하도에서 마주한 섬들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 찬란한 청춘을 꿈꾸며 밀물을 주도하는 주인공으로 살아왔을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아직도 그 꿈을 놓지 않고 보통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경제서적을 읽는 모습이 진지함을 넘어 초연함 그대로였다. 아직은 이순으로 보이지 않은 윤곽이 뚜렷한 한 여인은 태연히 널판지 박스 안에 기대어 오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애써 눈길을 피해 그 곳을 지나오지만 군데군데 섬들로 가득해 그들을 볼 수밖에 없어 지나칠 때마다 많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근자, 여러 뉴스매체에서 발표하는 통계를 보면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1위
하는 상품들이 점점 줄어드는 반면 1위를 갱신하는 사회적 이슈들이 늘어나고 있다. 모두가 알고 있듯 G20 국가 중에서 노인 빈곤, 자살률, 저출산, 고령화 속도, 이혼, 개인 빚 등은 단연코 1위를 지속하거나 다른 나라들을 뛰어 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도 쉽게 말하는 “한국은 경제 대국 10위권이며 IT 강국이다” 등을 내세우며 자랑을 하지만 그 내면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음을 숨길 수가 없다. GDP 5,000불 시대 보다 35,000불 시대의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부자인 대한민국은 왜 이처럼 불편한 사실들의 1위는 크게 늘어나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경제발전 속도와 성장의 크기만큼 커플링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을 주제로 여러 방송에서 심도 있게 다룬 적이 있었다. 한국은 외형적으로는 크게 부자나라가 되었지만 그 부의 과실은 1%인 부자들의 몫이 되었고, 빈부 격차는 더 커져 소외계층이 크게 늘었다고 진단했다. 어느 국가에 비해 새로운 변화를 앞서가고 사회복지시설 등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날로 좋아지고 있지만 가족 동반 자살과 젊은 층의 고독사가 늘어나는 이유는 한국적 특유의 체면문화에서 맘을 열지 못하고 스스로 고립되어 소외된다고 한다. 남들과 비교하며 예민해지고 주변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도 큰 문제라는 것을 방송에 출연한 패널들의 공통된 시각이었다.

경쟁과 비교는 분명 긍정적인 면이 더 많다. 남과의 비교 속에서 자극을 받아 삶을 발전시키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쟁력을 키운다. 타인의 성공을 거울삼아 발전의 계기로 삼기도 하지만 그것을 시기와 부정으로 보면 자신은 한없이 초라해지고 세상이 불공평하게만 보인다. 어쩌면 더러는 남을 의식하고 비교하는 습관으로 인해 뚜렷한 이유 없이 스스로 고립되어 섬으로 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보다 우월해 보이거나 다른 색채를 지닌 사람들과 섞이기 보단 떨어져 있고 싶은 심리가 강하다. 열등의식을 자존심으로 착각해 스스로 고립되어 섬으로 남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데서 비극적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된다는 심리학자의 말에 수긍이 간다.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에서 섬처럼 떠도는 부류가 아닐지라도 그들 못지않게 스스로 섬으로 떠 있는 사람들이 우리주변에는 수없이 많다. 평소엔 육지처럼 보이지만 밀물이 되면 비로소 떠도는 섬으로 흔들리고 있을지 모른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그림자 3 2024.02.05 (월)
한여름 고산의빙하를 감상하고내려오다 길을 잃었다초저녁부터브랜디와 와인을 걸친 산의 양 어깨는더욱 무거워 보였다어둠 속에서 혼자 싸우다 먹칠하다무사히 내려왔다​라면 끓여 허기 채우고산짐승 공포와 습기를 머금었던이슬 친 옷가지며 어두웠던 마음조차따사로운 모닥불에 털어 말렸다빠닥빠닥 말리고 훌훌 날려버렸다진한 커피 한 잔 마시고 선애써 잠을 청했다산 그림자 서늘하다 못해오싹한 밤이었다​날카롭게 흘기던외 눈 달빛...
하태린
봄이 오는 밤 2024.01.29 (월)
조용한 호흡이크게 느껴지는안식의 긴장이무의식의 시간을날 선 칼같이 새롭게 한다대지의 핏줄은이미 봄을 바로 집터 밑까지밀어 오고밤은 내일 터질 성벽을벼르듯 턱 밑까지숨이 차다가느다란 비가적막의 커튼을 드리우고어둠의 너머에새봄의 생기가아가의 숨골 위에새록 인다긴 여정 끝지난 모든 과실은겨울 추위와 얼은 땅거죽아래에서 모두 해체되어 다시준비되었다땅 밑의 수로는물길을 뚫어바로 봄의 축제를 대비했다모든 생명은 이제이해...
김석봉
밴쿠버에서 남들은 거의 다 가보았다는 멕시코 캔쿤 여행은 갑작스럽게 결정이 났다. 막내 딸과 아내 세 식구가 비행기를 탄 것은 작년 12월 11일이었다. 근래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향할 때는 에어 캐나다 직원 가족으로 자리가 있어야 탈 수 있기 때문에 빈자리가 있으려나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할인 가격으로 사기는 했지만 어쨌든 공짜는 아니다. 공짜가 아니면 당당해진다. 비행기는 이륙 후 기수를 남쪽으로 돌려 콜로라도...
한힘 심현섭
골덴 바지 2024.01.29 (월)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나는 겨울이면 늘 어깨를 웅크리고 다녔다. 어머니는 내가 키가 크지 않은 이유가 그 때문이라며 자주 나무라셨다. 그게 마음에 걸렸던 지 어느 날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골덴 바지를 한 벌 사오셨다.  바지에 대한 촉감은 허벅지까지 먼저 알아차린다. 병아리 털에 닿은 듯 부드럽고 포근하면서 약간 간지럽기도 했다. 그런데 길이가 길고 품이 컸다. 내 허리춤을 잡아보며 어머니도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정성화
어미 2024.01.29 (월)
처음은 어둠이었다가다음은 점이다가그 다음은 점 점 점 선명해지는눈 코 입 손 그리고 발가락그렇게 생긴 꽃들이 내게 와서나는 저절로 꽃이 되고덩달아 꽃이 되어어미의 이름으로 사는꽃의 나날난얼마나 환하고뜨겁고겁 없이 용감했는지
어미
쏟아지는 모시빛의 햇살아래너는 눈이 부시게도 빛나고 있었지.누군가를 향한 너의 기다림은하얀 여백이 되어가고 있었고지울 수 없는 명징한 약속은까만 상흔이 되어 나부끼고 있었어.고결하게 새겨진 너의 이름은성실한 애달픔을 묵묵히 지우며무심한 시간을 견뎌내고 있었지.하얗게 사무치는 천년의 침묵은한겹 두겹 수피를 벗겨 내었고,영혼을 향한 순백의 기도로 다시 태어났었어.빛과 어둠은 자리를 바꾸어 나갔지만너의 가녀린 뿌리는...
이봉란
황혼의 찬미 2024.01.22 (월)
J 에게,엊그제 이민 온 것 같은데 어언 30년이 훌쩍 지나고 이제는 성숙한 디아스포라의 길을 가고 있는 중이네. 내 인생에도 황혼의 자유가 찾아온 셈일세.자네가 보내 준 ‘황혼의 자유’ 라는 글 속에 보면 나이가 들어가면 노숙해지는 것도 있어 참 좋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글픈 일도 있다네. 오미크론이 지난 이즈음 아는 목사님의 거동이 불편한 모습을 보면서……그렇지만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고, 웃고 싶으면 웃고 내...
이종구
나의 문학 수업기 2024.01.22 (월)
  학원이란 잡지가 있었다. 1960 년대 중, 고교생들의 인기 잡지로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소년, 소녀 문사들의 문학 등용문 역할을 했다. 참으로 글을 잘 쓰는 친구들이 많았다. 거기에 실린 주옥같은 글들을 보면서 나는 언제나 저들처럼 멋지게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하고 한탄하고는 했다.  필자가 다녔던 대전 중학교 도서관은 규모가 꽤 큰 편이었다. 동, 서양의 고전을 비롯해 현대물, 교양 서적 등 만 여권의 장서가 사방 벽면을 가득 메우고...
이현재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