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나의 문학 수업기

이현재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4-01-22 11:33

이현재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학원이란 잡지가 있었다. 1960 년대 중, 고교생들의 인기 잡지로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소년, 소녀 문사들의 문학 등용문 역할을 했다. 참으로 글을 잘 쓰는 친구들이 많았다. 거기에 실린 주옥같은 글들을 보면서 나는 언제나 저들처럼 멋지게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하고 한탄하고는 했다.

  필자가 다녔던 대전 중학교 도서관은 규모가 꽤 큰 편이었다. 동, 서양의 고전을 비롯해 현대물, 교양 서적 등 만 여권의 장서가 사방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중 가장 인기 있는 책은 소년 소녀 세계문학전집이었다. 보물섬, 왕자와 거지, 로빈후드의 모험, 오성과 한음, 김 삿갓 등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키웠다. 이때 거의 하루에 한 권 이상 책을 읽었다. 상급 학교에 진학하고 사회에 나오면서 보다 많은 책을 빠르게 읽기 위해 속독법을 배우기도 했다. 보통 일반인들은 단어를 한 글자씩 읽는다. 그러나 단어 군을 한 번에 읽는 습관을 들이면 읽는 속도를 두세 배 이상 늘릴 수 있다. 이것이 익숙해 지면 두세 단어 군을, 나아가서는 한 줄을 한 번에 읽을 수 있는 수준이 된다. 이 수준이 되면 2, 300페이지 정도의 소설책은 한 시간 이내에 독파할 수 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읽은 부분을 다시 읽는 습관이 있으면 독서 속도가 상당히 느려진다는 점이다. 필자가 목격한 속독법 고수들은 한 페이지를 한눈에 읽으며, 초일류 고수들은 눈으로 읽는 속도를 책장을 넘기는 손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였다.

  외국 작가로는 헤르만 헷세를 좋아했다. 그의 저서 ‘데미안’ 을 성경처럼 끼고 다니며 수시로 읽고는 했다. 국내 작가로는 감성적 필체의 황순원 님을 좋아했다. 이어령 교수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등 여러 수필집도 나의 문학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책을 한 권 씩 읽을 때마다 짧게 나마 꼭 독후감을 썼다. 마음에 드는 구절이 나오면 별도 표시를 해 놓았다가 나중에 대학 노트에 옮겨 적었다. 이렇게 작성된 여러 권의 대학 노트는 글을 쓸 때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글을 쓸 때는 먼저 서론, 본론, 경론, 결론을 머릿속으로 구상을 해 놓고 구상이 끝나면 그다음에는 일필휘지로 써내려 가는 스타일이다. 여기서 경론이라함은 서론, 본론까지 읽은 독자가 약간 지루해질 무렵 그 지루함을 덜어줄 몇 줄의 문장을 말한다. 유머나 인용문, 흥미를 끌 만한 사건, 사고 등의 내용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그리고 문장을 짧게 쓰는 훈련을 많이 했다. 문장을 길게 쓰면 산만하고 전달력이 떨어진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한 시간 안에 수필 한 편을 완성할 때도 있었지만, 글이 잘 안 풀릴 때는 일주일 동안을 끙끙대며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할 때도 있었다.

  1970년대 후반 필자가 다니던 제일 은행에서 창립 48주년 기념 현상 응모 작품을 장르 별로 공모했다. 연습 삼아 단편 소설 부문 ‘기다리는 사람’을 출품했는데 이것이 그만 덜컥 당선되고 말았다. 마감 하루 전날 쓰기 시작해서 대충 마무리하고 서둘러 접수하느라고 제대로 교정도 보지 못했다. 망신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믿지 못할 결과가 나와 잠시 어리둥절했었다. 그 후 직장 동료들은 장난스럽게 이름 대신 작가 선생으로 불렀고 사보 편집 위원으로도 위촉이 되었다. '금융, 행원, 은행계’ 등 금융 관련 잡지사에도 이름이 알려져 심심찮게 원고 청탁이 들어 왔다. 당시 잡지사에서는 200자 원고지 한 장당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했는데 청탁이 많을 때는 한 달 원고료 수입이 꽤 쏠쏠했다.

  1997년 캐나다로 이민을 오면서 이민 생활에 적응하고 한편으로는 비즈니스를 운영하느라고 한동안 문학을 잊고 살았다. 5, 6년 동안 커피숍, 일식집 등을 운영하다 힘들어 처분하고 잠시 쉬고 있을 때 밴쿠버 문인협회의 2006년 신춘 문예 작품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예전에 써두었던 ‘출산’ 이란 수필을 조금 손질해서 응모하여 입상했다. 이듬해인 2007년에는 한국 미래문학에 ‘두 딸과 결혼기념일’ 등 수필 3편을 응모한 것이 당선되어 한국 문단에도 데뷔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찻잔’ 으로 제4회 한카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현재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남이 가는 길은 쉬워 보이지만 내가 가는 길은 험하다. 삶이란 오직 단 한 번의 불확실성에의 시도이며, 모든 인간의 이야기는 중요하고 영원하며 누구나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 데미안 중에서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골덴 바지 2024.01.29 (월)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나는 겨울이면 늘 어깨를 웅크리고 다녔다. 어머니는 내가 키가 크지 않은 이유가 그 때문이라며 자주 나무라셨다. 그게 마음에 걸렸던 지 어느 날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골덴 바지를 한 벌 사오셨다.  바지에 대한 촉감은 허벅지까지 먼저 알아차린다. 병아리 털에 닿은 듯 부드럽고 포근하면서 약간 간지럽기도 했다. 그런데 길이가 길고 품이 컸다. 내 허리춤을 잡아보며 어머니도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정성화
어미 2024.01.29 (월)
처음은 어둠이었다가다음은 점이다가그 다음은 점 점 점 선명해지는눈 코 입 손 그리고 발가락그렇게 생긴 꽃들이 내게 와서나는 저절로 꽃이 되고덩달아 꽃이 되어어미의 이름으로 사는꽃의 나날난얼마나 환하고뜨겁고겁 없이 용감했는지
어미
쏟아지는 모시빛의 햇살아래너는 눈이 부시게도 빛나고 있었지.누군가를 향한 너의 기다림은하얀 여백이 되어가고 있었고지울 수 없는 명징한 약속은까만 상흔이 되어 나부끼고 있었어.고결하게 새겨진 너의 이름은성실한 애달픔을 묵묵히 지우며무심한 시간을 견뎌내고 있었지.하얗게 사무치는 천년의 침묵은한겹 두겹 수피를 벗겨 내었고,영혼을 향한 순백의 기도로 다시 태어났었어.빛과 어둠은 자리를 바꾸어 나갔지만너의 가녀린 뿌리는...
이봉란
황혼의 찬미 2024.01.22 (월)
J 에게,엊그제 이민 온 것 같은데 어언 30년이 훌쩍 지나고 이제는 성숙한 디아스포라의 길을 가고 있는 중이네. 내 인생에도 황혼의 자유가 찾아온 셈일세.자네가 보내 준 ‘황혼의 자유’ 라는 글 속에 보면 나이가 들어가면 노숙해지는 것도 있어 참 좋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글픈 일도 있다네. 오미크론이 지난 이즈음 아는 목사님의 거동이 불편한 모습을 보면서……그렇지만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고, 웃고 싶으면 웃고 내...
이종구
나의 문학 수업기 2024.01.22 (월)
  학원이란 잡지가 있었다. 1960 년대 중, 고교생들의 인기 잡지로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소년, 소녀 문사들의 문학 등용문 역할을 했다. 참으로 글을 잘 쓰는 친구들이 많았다. 거기에 실린 주옥같은 글들을 보면서 나는 언제나 저들처럼 멋지게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하고 한탄하고는 했다.  필자가 다녔던 대전 중학교 도서관은 규모가 꽤 큰 편이었다. 동, 서양의 고전을 비롯해 현대물, 교양 서적 등 만 여권의 장서가 사방 벽면을 가득 메우고...
이현재
끝끝내 매달리려마침내 매운 바람 끝흘러 내리는 눈물처럼마지막 잎 새는 떨어져 나갔다내가 지르고 싶은폐 깊이 눌렀던 고함을 걷어가을 나무 잎 새는 떨어져 나갔다작은 가지에 모든 얘기 걸어 놓고마지막 잎 새는떨어져 나갔다연 고등 새싹 피어 오르던 봄나는 네 앞에 서서새 출발의 새 다짐을갈증의 한 모금 찬물처럼입에 물었다견디다 보니 견디어도 무너지는세월의 회초리는고통에 웃으라고 윽박 지르더라그래도 봄이 오면겨울 견딘 나무에 새...
조규남
설화 2024.01.15 (월)
따사로운 햇살에들력을 풍요롭게 익히었던가을 바람도록키 넘어온 북서풍에 미련이 남아있는 사연들눈 속에 모두다 묻었다겨우내 창 두두리고흰 머리 날리며정이 많아 속 눈물 흘리는 너는살을에는 칼 바람 부는날별이 좋아 밤새워앙상한 가지에 피어낸 꽃 향기없이 피어난설화뒤 돌아볼 시간 없이 사라질 운명명일 햇님이 찿아오시면차거운 세상에 힘겨웠던 마음도함께 반짝이겠지또 시린 가슴 호호 부는날다시 피어나는 숭고함에옷 깃을...
리차드양
 언젠가 고국에서 유행했던 노래가 있다. 그 노래는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였다.  이 노래는 대한민국이 어려웠던 시절 많은 서민들에게 희망을 주며 많은 사람들에게 불리어졌던 대중가요이다. 그 당시 방송에서 흘려나오는 노랫가락은 내 입에서 무심코 흘러나올 정도로 잘 알려졌다. 모두가 힘든 시기에는 이렇게 희망을 주는 노래와 꿈을 갖게하는 설교는 듣는이들에게 희망을 갖게하거나 꿈을 꾸게하는 동기를 부여하는 힘이...
김유훈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