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가족 상봉(Family reunion)

김춘희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2-08-29 08:48

김춘희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코로나 바이러스로 막혔던 하늘길이 열리면서 별러 왔던 동생들의 방문길도 열렸다. 혼자 사는 큰동생과 막내 부부가 서로 때를 맞추어 드디어 나를 찾아 주었다. 8월은 분주한 달이었다. 아들 집 아래층(Suite in law)에 사는 나의 조용한 공간이 형제들의 만남으로 꽉 찼다. 거동이 불편한 큰동생의 방문은 어렵사리 준비한 여행이었기에 뜻깊었고, 미국에서 찾아온 막내 부부의 방문은 여의찮은 형편에서 용단을 내린 여행이었기에 감사할 일이었다. 일찍이 작고하신 오빠를 빼고 우리 6명 형제가 모두 모이기엔 이런저런 이유로 불가피했다. 이번에는 3남매만 모였다.

  5년 전 형부가 아직 생존해 계실 때였다. 한국에 사시는 언니 내외분이 LA에 사는 조카들을 방문할 기회가 있어서 우리 6남매가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이벤트를 갖게 되었다. 그때도 방학을 이용한 8월 중순경이었다. 형편이 넉넉한 형부는 애와 어른 모두에게 두툼한 봉투 하나씩 선물을 했다. 그때 모인 친척들은 애들까지 거의 50명이나 되었으니 형부가 큰맘 먹고 거금을 쓰셨다. 조카들이 준비한 전체 가족 모임의 이벤트를 마련했다. 벤치와 피크닉 테이블이 구비된 아름다운 파크를 통째로 빌렸다. 웬만한 식당에서 함께 얼굴을 마주하고 식사하기가 쉽지 않은 숫자였다. 우리 형제 중에는 처음 보는 조카며느리도 있었고 조카들이 낳은 3세 아기들을 처음 보는 형제도 있었다. 혈육이라는 끈 때문인지 모두 오래전부터 알았던 것처럼 곧 어울렸다. 아이들도 처음 만났지만, 금세 친구가 되어 놀았다. 큰 조카들은 운동도 하고 어린아이들은 게임도 하고, 우리 어른들은 1세대 2세대로 나누어 그늘에서 담소를 즐겼다. 마지막으로 사진을 전담한 조카가 단체 사진을 찍었다. LA를 떠날 때 조카는 각 가정에 사진을 인화하여 돌렸다. 그 사진은 두고두고 기념되었다.

  파크에서의 행사가 끝난 후 우리 여자 형제 4명은 우리끼리의 행사를 또 했다. 큰 조카가 디즈니랜드 건너편 길에 있는 마리오트 호텔 리조트에 큰 방을 예약해 준 덕분에 우리 여자끼리의 달콤한 시간을 가졌다. 호텔 방에서 우리는 모두 동심으로 돌아갔다. 한국에 사는 언니는 그 당시 81세였는데 우리들을 만난다고 많은 선물을 챙겨 오셨다. 호텔 침대에 선물 보따리를 풀어 진열하셨다. 한국에서 유행한다는 드레스, 손가방 등.... 그리고 우리의 만남을 재미있게 하려고 특별한 물건을 준비해 오셨다. 조그만 기계 안에 뽕짝 음악을 잔뜩 녹음 해 오신 것이다. 원래 클래식이나 듣던 언니였는데. 언니는 음악을 틀어 놓고 ‘얘 우리 춤추고 놀자’ 우리는 동심으로 되돌아 가 엉덩이를 흔들고 춤추며 놀다가 서로를 쳐다보며 깔깔대고 웃었다. 디즈니랜드에서는 매일 저녁 폭죽을 터트린다더니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자 길 건너에서 폭죽이 터졌다. 우리 넷은 의자를 창가로 끌고 와 나란히 앉아 팡팡 터지는 불꽃놀이를 관람했다. 육신은 병들고 늙었으나 마음은 여전히 젊어 있었다.

  그 후 5년이 흘렀다. 그동안 형부는 하늘나라로 떠나가셨고 우리들은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선뜻 만나보지 못했다. 더욱이 코로나가 지구를 휩쓸고 지나간 지난 3년은 하늘 문이 닫혀서 더욱 그랬다. 온다온다 하던 동생들이 드디어 우리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아래 동네 아우님은 많은 식구가 먹을 음식 걱정부터 해 주었다. 그리고 내 일손을 덜어준다고 육개장 국을 큰 냄비 가득 끓여 왔다. 이웃사촌이라지만 내게는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귀한 사람이다. 어려울 때 급할 때 늘 내 곁을 지켜 주는 착한 이웃이다. 또한 학교 후배 부부는 하루 시간을 할애하여 투어를 제공해 주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딸과 아들 내외가 휴가 중이어서 후배 부부의 선의의 투어 제공은 받지 않았어도 마음은 훈훈했다. 자기의 소중한 시간을 내어 주겠다는 그들의 선함이 나의 마음을 더없이 훈훈하게 해 주었다. 이웃과의 관계란 참으로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다. 역시 사람은 만나면 볼거리와 먹거리가 있어야 한다. 밴쿠버는 그 두 가지가 있으니 최고의 관광지가 아닐까! 낮에는 밴쿠버 구석구석 탐방하고 저녁이면 막내 동생의 음식 솜씨로 우리들은 행복했다. 매일 저녁 잔치였다. 나는 배추김치나 겨우 만들어 먹는데 동생은 오자마자 오이 열무김치와 며느리가 좋아하는 배추겉절이부터 담갔다. 매일 저녁 다양한 메뉴가 상에 올랐다. 멍게 샐러드, 매운탕, 낙지볶음, 돼지 목살 묵은지 찜, 이모 표 김밥과 유부초밥... 가히 달인의 경지다. 우리 아이들은 그랜빌 아일랜드(Grandville Island)에서 사 온 게와 해산물로 밴쿠버 특산물 요리로 상을 차렸다. 내가 아이들에게 해 주는 메뉴라야 기껏 김치찌개 정도인데... 며느리를 포함한 우리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모, 여기로 이사 오세요’ 라 할 정도로 이모의 요리 솜씨는 달인의 경지였다. 만날 때가 있으면 헤어질 때도 있는 법이다. 2주간 동생들의 방문이 막을 내리게 되었다. 혼자 사는 큰동생에게는 몇 끼 식사가 해결될 것들을 챙겨 주었다. 그리고 며칠 후 막내가 떠날 때도 BC 특산물 이것저것을 챙겨 넣어 주었다. 부디 잘 살라 기도하면서. 내리사랑이라 했던가!

  크거나 작거나 가족 상봉은 진한 혈육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큰동생은 떠나기 전에 기념으로 제 조카들에게 화초 하나씩 선물을 했다. 뒤뜰 화단에 조카와 함께 또 다른 가족 상봉의 기원을 심어 놓고 떠났다. 8월도 벌써 다 지나고 있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2024년은 나에게는 특별한 해다. 정확히 말하자면  1994년 11월 23일  우리가  독립 이민자로 캐나다 퀘벡주에 있는 몬트리올 공항에 발을 디딘 지  50년을 맞는 해다. 반세기를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     1974년 육군본부에서 공병 장교로 일 잘하던 남편을 설득하여 아직  두 살이 채 안 되는 딸아기를 안고 아무도 우리를 반겨주지 않았던 낯선 캐나다 땅에 랜딩 했다. 남편의 본적은 함경북도, 하얼빈 출생이다. 러시아계와...
김춘희
  용인 가는 고속도로에서 수원가는 표지판이 눈에 띄고서야 문득 수원 양로원에 있는 요안나가 생각났다. 아! 수원이구나! 요안나가 있는 수원이구나!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우리 일행은 용인에서 다른 가족팀과 합세하여 다음 날 전주로 떠나기로 하고 용인 라마다호텔에 묵었다. 한국을 떠나 반세기를 캐나다에서 살아온 세월 때문에 용인과 수원이 인접해 있다는 사실을 전연 모르고 있었다. 나는 한국어를 하는 이방인이다....
김춘희
   지난해 추수 감사절 다음 주, 제주도 앞 바다에서 들개처럼 방황하던 캠퍼를 구해 준  이효리씨와 그의 친구 인숙 씨가 우리 집을 방문했다. 그녀들은 우리 집에서 1박을 부탁했고 터키 디너도 가능한지를 문의해 왔다. 전 주에 우리는 이미 추수 감사절 터키를 먹었지만, 그들을 위해서 아들 내외와 가까이 사는 딸이 기꺼이 준비했다. 그때 나는 목소리가 안 나올 정도로 편도선을 앓고 있었기에  정중한 인사와함께  아이들과...
김춘희
  마지막 한 장 달랑 남은 2022년 달력은  더 이상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2023년 새 달력에 자리를 내 주어야만 한다. 월말이면 어김없이 한 장씩 넘기다가 오늘은 12번째 막장을 내린다. 새 달력을 걸어 놓고 이제 막 내려놓은 낡은 한해를 한 장씩 훑어 본다. 크고 작은 일들이 어제 일처럼 펼쳐진다.  내 산책 견이 강원도 강릉에서 비행기를 타고 밴쿠버 공항에 도착하여 마중 나갔던  일, 형제들의 방문, 아이들과 여기저기 여행했던...
김춘희
코로나 바이러스로 막혔던 하늘길이 열리면서 별러 왔던 동생들의 방문길도 열렸다. 혼자 사는 큰동생과 막내 부부가 서로 때를 맞추어 드디어 나를 찾아 주었다. 8월은 분주한 달이었다. 아들 집 아래층(Suite in law)에 사는 나의 조용한 공간이 형제들의 만남으로 꽉 찼다. 거동이 불편한 큰동생의 방문은 어렵사리 준비한 여행이었기에 뜻깊었고, 미국에서 찾아온 막내 부부의 방문은 여의찮은 형편에서 용단을 내린 여행이었기에 감사할 일이었다....
김춘희
코로나 바이러스로 막혔던 하늘길이 열리면서 별러 왔던 동생들의 방문길도 열렸다. 혼자 사는 큰동생과 막내 부부가 서로 때를 맞추어 드디어 나를 찾아 주었다. 8월은 분주한 달이었다. 아들 집 아래층(Suite in law)에 사는 나의 조용한 공간이 형제들의 만남으로 꽉 찼다. 거동이 불편한 큰동생의 방문은 어렵사리 준비한 여행이었기에 뜻깊었고, 미국에서 찾아온 막내 부부의 방문은 여의찮은 형편에서 용단을 내린 여행이었기에 감사할 일이었다....
김춘희
대구떼의 수난 2022.06.20 (월)
유네스코가 지정한 관광지 가스페 반도(Gaspé)는 우리가 1980-90년 사이에 여름마다 찾아갔던 여름 휴가지이다. 몬트리올에서 생 로랑(St-Laurent) 강을 왼쪽으로 끼고 북쪽으로 올라간다. 한나절 드라이브 길에 벌써 바다 냄새가 코 끝을 스친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대서양 어귀에 리무스키(Rimouski)라는 큰 도시가 나온다. 여태껏 보아 왔던 경치와는 사뭇 다르다. 바닷가 근처에 새우나 조개 같은 어패류의 롤 샌드위치를 파는 간이 판매소가 여기저기 눈에...
김춘희
대구떼의 수난 2022.06.15 (수)
유네스코가 지정한 관광지 가스페 반도(Gaspé)는 우리가 1980-90년 사이에 여름마다 찾아갔던 여름 휴가지이다. 몬트리올에서 생 로랑(St-Laurent) 강을 왼쪽으로 끼고 북쪽으로 올라간다. 한나절 드라이브 길에 벌써 바다 냄새가 코 끝을 스친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대서양 어귀에 리무스키(Rimouski)라는 큰 도시가 나온다. 여태껏 보아 왔던 경치와는 사뭇 다르다. 바닷가 근처에 새우나 조개 같은 어패류의 롤 샌드위치를 파는 간이 판매소가 여기저기 눈에...
김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