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미쳤어. 미쳤어. 어떡해. 어떡해.
내가 사람을 치다니. 믿을 수가 없어.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내 인생 이대로 끝인가. 여태 남에게
피해주는 일은 절대 하지말자며 묵묵히 잘 살아왔는데. 한순간 물거품 되다니. 천벌 받을 죄인이
되다니. 제발 다시 1초 전으로 되돌아갔으면.
눈앞이 캄캄했다. 머릿속이 하얗다. 나를 용서할 수 없다. 사람을 쳤으면 바로 차에서 내려
확인해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질 않는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다리가 덜덜 떨렸다.
쾅쾅쾅, 어디선가 목격자가 달려와 차 창문을 깨부술 듯 친다.
“사고 냈으면 빨리 나오지 않고 뭐해요? 경찰 부르라고요.”
누가 신고했는지 금방 경찰차가 몰려왔다.
그래, 난 이제 감옥행이야. 죽을 죄 지었으니 벌 받아야지. 분명 내 차가 사고를 냈어. 누군가가
악, 소리 내며 탁 부딪쳤고 차 밑으로 빨려 들어갔어. 내 잘못이야. 백퍼센트 내 실수라고.
아니, 아니야. 내가 뭘. 난 그냥 노란불만 보고 달렸어. 달릴 때 초록 불에서 노란불로 바뀌면 얼른
달리라고 교육 받았다고. 근데 왜 사고가 나. 나 잘못한 거 없어. 정신 차리고 운전 했단 말이야.
근데 어떻게 된 거지. 봐, 저기 사고지점에 횡단보도가 있어. 웬 횡단보도? 난 분명 횡단보도를 못
봤어. 초록불도 못 봤단 말이야.
공포가 밀려왔다. 이순간이 그냥 악몽이었으면. 이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가지. 빼도 박도 못할
현실을 도망치고 싶었다. 곧 내손에 수갑이 채워지겠지. 이제 누가 내 어린 새끼를 돌봐주지. 내
인생 이렇게 끝나면 안 되는데.
제발, 다시 사고 1초 전으로 되돌아갔으면... .
그런데, 내 차 밑에서 누군가가 기어 나와 꾸벅 인사를 한다.
“아줌마, 죄송해요. 저 괜찮아요.”
어떻게 된 일이지. 잘못됐다고 믿은 사람이 잘못했다고 인사를 하다니. 아, 하느님 지금 이
상황은 꿈인가요. 생시인가요.
나는 부리나케 꿈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차에서 내려 방금 그 사람을 꼭 안았다. 그는 9살
남자 초등생이었다.
경찰들은 어느 결에 주변 상황을 파악, 촬영하고는 나를 경찰서로 불러들였다. 생전 처음 내
잘못으로 경찰서에 왔다. 아이는 근처 종합병원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CT촬영과 MRI, 온갖
검사를 하러 갔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러 그들이 묻는 질문에 답변하고, 계속 뭔가를 쓰라고 해서 썼다.
수 시간이 흐르자, 아이와 아이엄마가 경찰서로 왔고, 아이의 검사 결과가 나왔다.
“아이가 다친 데가 한군데도 없네요. 감사하게 생각하세요.”
나는 연신 머리 숙여 죄송하다는 말을 했고, 아이를 다시 꼭 안았다.
그날 사건은 내가 초보운전 3개월 때, 자신만만하게 친구를 만나러 광주에서 성남에 갔고,
그녀와 놀다 그녀가 데려다 달라는 곳까지 내려주고, 1키로 지점 3거리를 달리던 중 노란불이
켜져 얼른 달렸고, 그 20미터 지점에 또 노란불 켜져서 달렸는데, 나는 거기에 차마 건널목이
있다고 전혀 생각도 못했을 뿐더러 보지도 못했다. 건널목을 막 지나는 사이 초록불이 켜지자마자
내 차 옆에 서있던 아이가 길 건너 태권도 차를 타려고 마구 달렸다가 내 차와 부딪혔다.
나는 아이를 못 봤고, 아이는 내 차를 못 봤다. 나는 오로지 노란불만 봤고, 아이는 태권도 차만
봤다. 나는 시선을 멀리해서 건널목을 살폈어야 했고, 아이는 초록불이 켜지고 하나 둘 셋만 세고
건넜다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터였다.
내가 1초 빨리 아니, 1초 늦게 달렸거나 아이가 1초 늦게 뛰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목격자는 아이가 오른쪽 차 범퍼에 부딪히고 공중으로 붕 떴다가 내 차 밑으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언제 어디서든 위험 상황 돌발과 사람의 생사를 망각한, 교만심으로 전후좌우 멀리까지 똑바로
보지 못한 운전이었다. 차는 그저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이동수단으로 으뜸이라고만 생각했지,
순간 사고로 여러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도구일수도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 치명적 1초, 행불행 지옥과 천국의 갈림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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