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어느 해 봄이었다.
할아버지는 햇볕만 찾아다녔다. 안마당, 바깥마당을 오가며 먼 하늘과 산을 바라보고, 새로 소생한 나무와 풀, 꽃 따위를 유심히 들여다보곤 긴 한숨을 토했다. 그 눈빛은 너무 아득해 아무도 말을 붙일 수 없었다. 여름에도, 가을에도 그랬다. 말 수도 줄고, 왕성한 식욕도 떨어지고,
웃음도 잃어갔다. 말을 건네고 맛난 음식을 해다 바쳐도 영 반응이 없다.
그저, “물 한 대접과 요강이나 갖다 놔라.” 뿐.
할아버지에겐 3가지 낙이
있었다. 1은 남에게 인정을 베푸는 일이요, 2는 소리 내어 책읽기요,
3은 식도락이다. 일제시대, 6.25, 보릿고개를
겪은 할아버지는 배곯는 거지나 땅꾼들을 보면 멀리서도 “어이!” 하고
불러다 엄마에게 푸짐한 밥상을 차리게 하고, 필요한 옷가지와 먹거리를 챙겨주곤 했다.
당신은 평생 남의 집 부지깽이 하나 얻어 오는 법이 없었지만, 혼자 사는 늙은이가 불쌍하고, 누가 쌀이 떨어졌다며 챙기고, 처음 보는 사람도 측은해 보이면 데려와 배를 채워줬다.
어느 날은 서울 큰아버지 집으로 가더니, 지하철 타는 법을 익히고, 버스를 타고 서울 지리와 지하철 노선을 완전히 외우신 후 에야 내려왔다.
그러곤 수시로 서울을 드나들며 서울 노인들을 사귀고, 동물원이며 공원,
고궁을 찾아다니며 어딜 갔네, 어디가 좋네 하며 보는 사람마다 구경한 걸 들려준다.
그러면 사람들은 눈빛을 반짝이며 귀를 쫑긋했다.
할아버지는 80의 연세에도
꿋꿋했다. 수 십 년 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외로웠는지 어디서 마나님을 데려왔다. 효자자식들보다 등 긁어줄 사람이 낫던 모양이다. 큰아버지는 새살림 집을 얻고,
아버지는 연신 쌀과 음식을 해 날랐다. 고모와 작은아버지는 필요한 세간을 사 나르고
비위를 맞췄다. 할아버지도 새할머니가 좋아하는 일이면 신이 나서 뭐든지 다 했다. 그런데 새할머니는 1년도 못살고 무엇이 궁했는지, 그
살림을 다 팔아 치우고 달아났다. 그간 넉넉히 드린 용돈이 모자란다, 쌀 가마 갖다 준지 얼마 안 돼 쌀이 동이 났다 앙탈을 부리더니. 할아버지는 마지막 여생까지
맘 붙이고 오순도순 살고 싶었는데.
할아버지는 자식들 볼 면목이 없었는지 손녀인 우리 자취방으로 찾아왔다. 그전엔 꼭 우리 먹을 걸 한보따리 사 가지고 왔는데 그땐 그냥 빈 몸만 달랑이었다. 멋스럽던
옥색 바지저고리에 금박 물린 노란 마고자 차림이 그날따라 왜 그리 쓸쓸해 보이던지. 나는 약아빠진 서울 노인네가
한없이 미웠다.
할아버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고향집 사랑방에서 노래하듯 밤낮으로 책을 읽었다. 고전부터 현대 책까지 닥치는 대로 모조리
읽었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풀어놓을 재미난 이야기 보따리였다.
“난 여기서 죽고 싶구나. 죽을 때까지 너희들 하고 살련다.”
할아버지는 먼저처럼 좋아하는 음식을 주문했다.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만 얻을 수 있는 맷돌질과 절구질, 떡메질을 해서 만든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우러나는 것들이다. 순두부, 두부, 콩국, 녹두전과 인절미, 아웃국과 고깃국,
그리고 갖가지 약주다. 그런 음식이 만들어지는 날에는 꼭 “저 건너 노인네들....” 하면 엄마는 금세 잔칫상을 차렸다.
“얘야, 노인네들은
먹고 싶은 것 실컷 먹으면 건강하단다.”
그랬던 할아버지가 수시로 심었던 그 많은 나무도 돌보지 않고, 산으로 들로 노인정으로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한약재를 채집해 한의원에 내다 파는
일도 재미없어 하고 햇볕만 찾더니 그 해 겨울 자리에 누웠다. 이젠 더 이상 그 맛난 음식도,
친구도, 그 무엇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21살 꽃 다운 나이로 시집와 40년 할아버지를 모신 엄마는 무슨 한이 맺혔는지 한숨만 내쉬고, 일이 손에 안 잡힌다며 울먹인다.
그러곤 이듬해 봄, 식목일이자 부활절인 그날 할아버지는 89세에 산속으로 가셨다. 땅 속에 뿌리를 내린 식물들이 막 새싹을 내 놓을 때, 미소 띤 영정 사진을 앞세우고 사람들의
통곡 소리를 들으며 소나무 숲과 밤나무 숲을 지나 산새 소리 가득하고 진달래꽃 만발한 산으로 아주 가셨다.
비바람이 유난히 변덕스럽던 그해 봄날은 그날따라 바람 한 점 없이 얼마나
맑고 포근했던지. 충만한 햇살과 함께 할아버지는 좋은 자리에 묻혔다. 멀고도
깊은 산 속으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49재 날은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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