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정 / (사)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원수와 웬수는 유머의 차이이다. 한 예로 부부가 한 팀이 되어 단어를 맞추는 게임이
있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의 순서에 답이 ‘천생연분’인 문제였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당신과 나
사이?” 할머니가 “웬수” 할아버지가 당황해서 소리치며 “네 글자로?” “평생 웬수!” 그런데
남자들이 정말 이렇게 생각하는지는 엄청 궁금하다.
원수는 같이 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고, 웬수는 ‘운명 공동체’로써 같이 살아야 되는 사람이다.
하여튼 원수든 웬수든 “원수를 사랑하라.” 까지는 힘들어도 “미운 아이(사람) 떡 하나 더 준다.”
라는 심정으로 좀 너그럽게 봐주면 내 정신건강에 유리한 것 같다. 이말 뜻이 밉다고 떡을 주지
않는 것에서 조금 양보해서 하나쯤 줘 볼까? 하는 정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진짜 속뜻은
미울수록 더 정답게 대해야 미워하는 마음이 가신다는 말이라는데…. ‘미울수록 더 정답게
대한다?’ 이건 엄청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나를 위해 상대방을 용서하면 옛날식으로는 화병이
줄어들고 요즘 식으로는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상대가 언제부터 웬수로 보였을까? 신혼 초에 눈에 씌워진 콩깍지가 벗겨지면 그때부터
상대방의 성격, 독특한 취향 등 나와는 다른 점이 눈에 띄기 시작하면서부터 인 것 같다. 그리고
꼭 아이들을 걸고넘어지면서 맘에 드는 것은 전부 나를 닮았고 안 드는 것은 다 상대편을 닮은
것이 된다. 부부 싸움이 큰일에서 비롯되면 물론 이혼의 사유가 될 수 있겠지만 보통은 아주 작은
것 별 것 아닌 문제부터 시작된다. 일단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화부터 내면서 말을 한다. 별것도
아닌데 왜 저러지? 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이 상한다.
원수까지 용서하기에는 많은 노력과 종교적인 깊은 묵상까지도 필요하겠지만, 웬수는 내 것에
대한 집착 (예를 들면 내 인생도, 내 꿈도, 내 자녀도 내 것이라 내 뜻과 내 계획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조금 양보하고, 지금은 밉지만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 해 볼 겸 또
좋았던 기억을 억지로라도 꺼내서 계속 머릿속에서 돌려보기를 하면 조금은 이해가 되며 화가
누그러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같이 사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상대방의 장점보다 단점이 눈에 보이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좀 더
시간이 지나면 그 단점들을 인정하면서 어느 정도 도인(?)이 되어 크게 눈에 띄지도 않게 된다.
그렇게 지내다 아이들이 결혼 등의 이유로 집을 떠나면 신혼시절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다시
적응해야 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이젠 둘이 싸우면 아이들이 없어서 화해할 건수도 적어진다.
그러다보면 싸움이 장기전으로 갈 수도 있다.
상대방이 평생 웬수로 안 보이는 경우의 분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미운 정, 고운 정이 나무의
나이테처럼 만들어져서 가족이 함께 해온 희로애락의 세월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끊임없는
불화 속에서도 가정을 지키게 되는지도 모른다.
간혹 혼자 오래 사신 분들에게 남편과 싸워서 꼴도 보기 싫다고 하면 “쓰레기만 버려줘도 얼마나
고마운지…, 그것만 평생 모아도 만 불은 될 거야.” 라고 농담을 하시면서 노래가사처럼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라고 하신다. 거꾸로의 경우에도(부인을 생각하면)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게 반복적으로 적응을 하면서 나이가 들수록 이제는 서로가 필요하게 느껴진다. 요즘은 평균
수명이 길어져서 덜하겠지만, 둘이 재미있게 살아 볼까하면 웬수 중 어느 한 쪽이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때 비로소 빈자리가 느껴지고 상대방에게 잘 하지 못한 것만 생각난다고 한다.
그러니 서로 있을 때 잘해보려는 노력을 이제부터라도 해 보면 어떨까? 마음대로 될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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