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숙 려 / (사)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
얼마나 아득한 바램인가! 얼마나 간절한 소원인가! 사람들은 그저 오래 살기를 간구한다. 팔팔하게 백세를 추구하며 겸손을 더하여 99세라 말한다. 두고 갈 것이 많아 그러한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말한다.
성경 신-구약을 다 썼더니 볼펜이 18자루가 닳았다고 웃으시던 아흔일곱의 어머니는 성경 읽으시며 찬송하시며 간절히 기도하셨다. 주님 불러주시면 언제든지 자는 듯이 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그러시던 어머니가 응급실에 가신다는 급한 전화를, 때마침 한국에 일이 있어 나갔던 이튿날 받게 되었었다.
마른 꽃잎 같아 한 줌이나 될까 모를 어머니는 고관절이 부러져 쇠를 박아 붙이는 큰 수술을 하시고, 잦아드는 숨소리를 내시며 잠이 드셨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주시던 그 손길은 앙상한 핏줄로 퍼렇게 멍이 들었고 깊숙이 감은 눈 속엔 세월이 흘러간다.
오매불망 고명딸이라 품에두시더니 아마도 마지막 나의 효도라도 받으실 양으로, 내가 나가자 자리에 드신 것 같아 안타까움이 가슴을 저리게 했었다.
내 일을 일단 미루고 어머니 곁을 일주일을 지키며 수술 후유증에 시달리는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잠만 들면 먼 세월을 넘나드시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것은 안타까움이었다.
웃으시고, 옛 얘기를 하시고, 손짓하시는 것이 아마도 행복했던 날이 많으셨던 것 같다. 섬망증(譫妄證)은 연로하신 어른들께 수술 후유증으로 삼사일씩 나타나는 증상이라 했다.
간간히 깨어나시면 “나는 아무 여한이 없다. 이만큼 살았으면 족하다. 충분히 수(壽)를 누렸으니 울지도 말거라.” 하셨다. 얼마를 사는 일이 족한 수(壽)일까?
한 치 앞을 모르는 인간이면서 백 세를 갈구하는 이 세대의 가치관 앞에 죽음은 너무나 먼 나와는 상관없는 길이라 여긴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앓은 후 갈 수만 있다면야 더 바랄 것이 있겠는가마는, 죽음을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여야 옳은지를 알아보는 것도 지혜가 아닐까 싶다.
96년 전 어머니는 정씨 가문의 만석지기의 맏딸로 태어나시어 막 피어나는 열일곱 꽃으로 노비들을 거느리고 가마를 타고, 강진사댁으로 시집오시어 슬하에 삼남매를 두셨다. 한량이시던 아버지를 보필하며 시어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하셨다.
삼종지의(三從之義)를 엄격히 교육받으신 어머니의 삶은 순종의 삶이셨다. 이후 하나님을 알고 얼마나 감사해하셨는지 모른다. 어머니는 자기의 길을 예비하시고 자식들에게도 분명한 길을 주신 분이셨다. 존경을 받아 마땅하신 내 어머니의 길은 꽃길이시고, 하늘길이시다.
그때 경과가 좋아 병실로 옮기신 후에 떠나오긴 했었지만 마음은 함께 오지 못하고 어머니 곁에 머물고 있었다. 언제든지 보고 싶다 하시면 곧바로 비행기를 타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또 다시 편찮으실까 보아 그런 전화가 올까 두려웠었다.
어머니는 쉬 가고 싶어 하시지만 우리는 아직 보내드릴 준비가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한번 가면 다시는 이 세상에서의 정을 나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아쉬워하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부모 형제 자식 간의 죽음은 백세가 되어도 역시 우리를 슬프게 하고 아쉽게 할 뿐이다.
그런 어머니 가신지도 일 년을 넘기고 우리는 웃으며 살고 있다. 때때로 엄마하고 부르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서도 또 잊으가며 살아간다. 이것이 인간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가슴에서도 멀어진다는 이 슬픈 현실을 우리는 살아간다. 그러나 위로는 있다. 어머니는 원하시던 나라에서 평안히 계신다는 것. 머잖아 오실 분을 기다리는 우리의 위로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아련한 어머니 모습 그리워하며 지난날을 되새겨 본 아침이다.
내 아이들도 내가 가고 난 후에 많이 아파하지 말고 좋은 기억으로 엄마를 그리워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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