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재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젊은 시절에는 하루는 짧고 1년은 길다.
나이를 먹으면 1년은 짧고 하루는 길다. /베이컨
다가오는 설날이 되면 한 살을 더 먹는다. 서양사람은 본인 생일이 지나면 한 살을 더 먹지만 한국 사람은 설날이 지나면 공평하게 한 살씩 더 먹는다. 올해 70이 되었다. 나이 60도 용서가 안 되었는데 70이다. 29년 전 장인어른의 칠순 잔치가 생각이 난다. 잠실에 있는 대형 뷔페를 통째로 빌리어 친화력 좋은 둘째 처남 주도하에 수백 명의 손님을 초대하였다. 밴드는 물론 소리꾼도 초빙하여 흥을 돋우었다. 셋째 처남이 장인어른을 업고 홀을 몇 바퀴 돌았다. 하객들은 박수로 화답했고 일부 여성 하객들은 그 모습을 보고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지금은 코로나로 잔치하기도 어렵지만 나를 업어줄 사람도 없다. 딸만 둘이기 때문이다.
노인이 되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했던 말을 또 하기도 하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인생극장같은 다큐를 보다가 주인공이 울면 같이 울기도 한다. 나이를 먹으면 여성호르몬이 많아진다더니 사실인가보다. '늙은이(늘그니)'는 '늘 그 자리에 있는이’라고 한다. 생각이 깊고 많기 때문이다.
늙은 나무에 더 좋은 열매가 달리고 하루의 햇빛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는 저녁노을이다. 인생에 연장전은 없다. 하루하루가 처음이고 또 끝이다. 어제는 흘러간 시간이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다. 오직 오늘만이 나와 함께 존재한다. 흘러간 시간은 추억이 되고, 오지 않은 시간은 희망이 된다. 오늘만이 내가 어찌해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오늘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캐나다에서 20여 년간 비즈니스도하고 직장도 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러나 직장에서 만난 이들 중에 의외로 인사를 잘 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한국에서 평생을 금융 서비스업인 은행에 다녔던 나는 아침에 만나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먼저 인사를 했다. 그런데 대체적으로 세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먼저 인사를 하는 사람, 내가 먼저 인사를 해야 아는 척하는 사람, 전혀 인사를 하지 않는 사람...... 그런데 이 중에는 심지어 눈길을 피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봤으니 자기도 나를 보았을 텐데 딴청을 하며 지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싫은 사람과 억지로 친해지려고 애쓰지 않기로 했다. 이 나이에 애써도 안되는 거면 하지 않기로 했다. 입구가 좁은 병엔 물을 따르기가 힘들듯 마음이 좁은 사람에겐 정을 주기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되면 부패하는 음식이 있고 발효되는 음식도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 들어 고집만 세고 예의도 없이 망가지어 부패되는 사람이 있고, 나이 들수록 발효되어 중후하고 점잖게 완숙해지는 사람도 있다. 늙어서 어떤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은 오로지 본인이 살아온 세월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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