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세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우리들의 마음 속에는 공주하면, 백설공주를 연상하게 된다. 착하고 아름다움의 최고
모델로서 천사같고 요정같은 여인으로......
고 3때 학내 체벌사건에 항의하는 데모현장 입구를 막은 바리케이트 위에서 온종일 담임을
막아선 죄 때문에, 한 대기업 회장님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환경이 가장 열악한 시골 형광등
공장 생산라인으로 쫒겨 갔다.
뜨거운 개스불로 형광등 유리를 자르고 붙이느라 매캐한 연기에다 실내 온도가 무려
45도에 달해 숨이 턱턱 막혔다. 온도 20도에서 기화한다는 저 무서운 "이따이 이따이 병"의
원인이라는 수은이 공장 바닥 도처에 굴러 다니고, 탈진한 여공들이 수도 없이 픽픽 쓰러져
나가는 생 지옥과도 같은 곳이었다. 이렇게 비참하게 살다 죽을 수는 없다 싶어 탈출을
꿈꾸게 되었다.
어느 큰 업체에서 국가의 특별한 시험에 합격할 사람을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달려
갔다. 성적은 바닥이고, 데모에 앞장섰다고 쫓겨 나온 녀석을 뽑아 줄리가 만무였다. 지옥
불 속 같은 형광등 생산라인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는 절박함에 국장님을 붙들고 사정을
했다. 시험에 떨어지면 스스로 나가겠다고.
학교, 집, 형광등 공장에 알리지 않고 몰래 옮겨 가 7개월간, 하루 24시간 근무하고,
다음날은 회사근처 독서실에서 거의 굶고, 잠도 안 자고 시험공부를 해야만 했다.
대졸자들과 현장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분들까지 3,500 여명이 본 객관식, 주관식, 구술의
3차에 걸친 시험에서 겨우 2%만 합격한 가운데 끼었다. 나 자신부터 모두가 믿을 수 없는
놀라운 기적이었다. 믿고 기회를 주셨던 국장님은 약속을 지켜주어 고맙다며 더 큰 세상에
나가 살아 보라고 권했다.
학교에선 데모한 죄에 몰래 다른 회사로 도망간 죄까지 보태 졸업도 안 시키겠다는데,
고등학생을 정식 주임으로 취직을 시켜주었다. 모자라는 현장경력을 보충하도록 밤마다
경력이 우수한 전문가들을 동원해 특별 과외까지 시켜 주었다. 공무원 초임의 두 배나 되는
파격적인 대우라 기존직원들이 사표를 내겠다고 하여 수당을 낮춰 양보를 했다.
이 신기한 이야기가 당시 전국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정 재계, 교수등 몇몇 유명인사들
사이에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 시절 앙증맞은 독일 폭스바겐을 자가용으로 타고
다니면서 8밀리 영화 카메라를 취미로 하시던 유명한 여대 원로 교수님도 그 중의 한
분이었고, 자주 초대를 하고 보다 넓은 세상을 알려 주셨다.
양반가 규수들의 격조 높은 품행에 대해 들은 바가 있고, 교수 사모님이시니 어련하랴
짐작한 내내, 세상에 저렇게 천사같은 여인이 있을 수 있구나 하며 내심 감탄을 했다.
나중에 조선 왕가의 공주님이라고 교수께서 조심스럽게 소개를 하셨다. 눈 앞에서 직접
뵈고, 가끔 식사대접에 명동, 충무로의 고급 문화까지 일러주신 공주님은 훨씬 강한
인상으로 내 머리속의 백설 공주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후 강산이 변하고 결혼을 해서 어렵게 5년 터울로 두 딸을 얻었다. 이 바쁘고 험난한
세상에 우리 딸들은 공주가 아니라 사내 대장부처럼 키워야 하겠다고 마음을 굳히고,
백설공주는 동화 속에 남겨두기로 했다. 내적으로는 늘 공주님을 모델로 착하고 바르게
키우려고 노력을 했다.
다시 세월이 흘러 책임 간부가 되었을 때 몰래 실토를 해서 알게 되었는데, 또 다른
이왕가의 어린 공주님를 직원으로 데리고 있었다. 이미 품성과 능력은 확인을 한터라
이번에는 본인의 원대로 우리 딸들 같이, 남자처럼 살아 보라고 세상으로 내 몰았다.
나중에는 왕실의 반대를 피하기위해 해고당했다고 하고, 월급을 더 주는 조건으로
명예퇴직을 시켜 유학비를 마련해 캐나다 오타와로 스포츠 이벤트 학과 대학원 유학을
보냈다. 졸업을 하고 한참 캐나다 행사장을 누비고 다니더니,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겨
가문에서 붙잡아 간 모양이다. 세상 사람들과 연락이 끊겼다. 핸섬한 낭군을 만나 백설
공주님처럼 살고 있지 싶다. 속이 얼마나 답답할까 싶기는 해도...
그 진짜 공주님들과는 반대로 남자처럼만 키운 우리 딸들에게 결혼이 이슈로 떠오른 지금
마음이 많이 많이 착잡하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다 그렇듯 신부는 공주같아야 하는데,
웬만한 사내들보다 드센 며느리 감을 시댁 어른들이 얼마나 반기고 이해해 주실까 하는
걱정이 신부감 아버지로서의 속내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먼저 결혼을 하기로 예정된 수영 성수, 철인 3종 경기, 극한 스포등을 두루하고 출판사에
근무하는 둘째 딸보다 얌전한 사위감에게 "여자와 함께 사는 것만으로도 득도를 하는 것과
같은데, 드센 우리 딸을 모시고 살려면 많이 힘들텐데 !"하니 걱정하지 말란다. 서로가
좋아서 선택한 것이니 단점은 반쯤 눈감아 주고, 장점은 등 떠밀어 주며 오손도손 살아주길
바랄 밖에...
겨우 한국 나이로 네 살에 태백산 정상까지 제 발로 힘들여 첫 등반을 해서 철쭉이 만개한
것을 보고는, 세상의 모든 산이 다 그렇게 아름다운 줄 알고 자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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