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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가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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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0-04-07 08:54

심정석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캐나다 사람들은 젊어서부터 은퇴 준비를 철저히 한다. 은퇴 후에 하고 싶은 계획도 미리 준비도 해둔다. 들뜬 기분으로 은퇴식도 하고 축하 인사도 주고받는다. 아직 누리지 못한 수많은 ‘행복’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부푼 기대를 가지고 직장 일을 마감한다

 

 

실제 나의 은퇴 경험은 사뭇 다르더라. 벌써 내 나이가 이렇게 됐나 하는 한숨부터 나온다. 늙는 줄 모르고 바쁘게 살다가 갑자기 변을 당한 기분이다. 평생 몸 바쳐 지켜 온 직임(職任)에서 물러나는(withdraw) 아쉬움도 컸다평생 땀 흘려 이루어 놓은 전문영역과 나름대로 익숙한 삶의 터전을 남에게 내어 주고 밀려난다는 상실감 같은 느낌이었다. 늘 젊은 학생들을 대하며 살아온 교직인지라 나도 학생들처럼 젊으려니 착각을 하고 살았나 보다. 세월이 가는지 모르고 은퇴 준비에 소홀했던 것만 같았다. 빨리 이 허전한 상실감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절박감이 크게 작동했다. 나를 다시 찾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어떻게 하지일거리를 빨리 찾아야겠는데.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다는 생각을 하니 조급했다.

 

 

은퇴하던 해(2006), 나는 곧장 중국 연변과기대를 찾아갔다.  5년동안 중국 조선족 젊은이들과 함께 살았다. 그리고 2012년 평양과기대로 옮겨 북한 학생들을 섬기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그것은 참 잘한 결단이라 생각된다. 은퇴를 10년이나 늦춘 셈이 된다. 대학에서 강의하고 연구하는 것 외에 사실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그것이 내가 가진 것의 전부였다. 지금 내게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후회 없이 쏟아 놓고 왔다는 후련함이 있다. 10년의 세월이 아깝지가 않다.  

 

 

2017년 내 나이가 80이 되던 해다. “그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이제는 집에서 편히 쉬시지요.” 하시던 교회 목사님의 배려(?) 담긴 말씀이 생각난다그 배려에 감사함과 섭섭함이 교차했다나이80이니 이젠 정말 늙었나 보다 생각됐다. 그리고 순종을 했다. 반평생(41) 천직으로 삼고 살아 온 대학교수직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리고 집에서 쉬기로 했다. 그런데 밀려났다는 상실감은 여전히 찾아온다. 이를 어쩐다? “아니 내 나이가 어때서…” 중얼대 본다. 화가 나기도 한다. 그리고 나 ‘일거리 없는 은퇴는 은퇴가 아니다’란 생각이 든다. 사람은 역시 일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인 것 같다. 일해야만 한다. 은퇴를 Re- Tire 라고 쓰는 이유도 새 타이어를 갈아 끼고 새 일터로 힘차게 나아가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으로부터 e-mail 한 통을 받는다. 시니어 선교 훈련학교(Senior Missionary Training School) 강사로 섬겨 달라는 초청의 내용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강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니 모두 저명하신, 나보다 훨씬 젊은 목사님들이셨다. 왜 산수()를 훌쩍 넘긴 평신도 퇴물 교수를 찾을까? 궁금한 한편 걱정도 된다. 기도했다. 하나님이 응답하신다. 가라 하신다. Senior 선교사 훈련 학교라 했으니 아마도 내 나이가 적정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거두절미하고 가겠노라고 답장을 드렸다. 이렇게 인연이 닿아 다시 타이어를 갈아 끼고 도미니카 공화국의 수도, 산토도밍고 소재  월드그레이스미션(WGM)이라는 단체에서 시니어 선교 훈련 학교를 3년째 섬기고 있다

 

 

우리는 지금 빠르게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다. 65세 이상 인구가 30%를 훨씬 넘는 사회, 즉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노인인 사회로…  노년기의 행복지수가 사회 전반의 행복도가 되는 시대이다. 은퇴 이후의 시간이 여생(餘生)이 아니다. 대충대충 살기에는 너무 길고 소중한 시간이다. 은퇴가 웬 말이냐진정 원했던 삶의 모습으로 생의 후반생(後半生)을 준비하는 노년이 돼야 하겠다. 이 넘쳐나는 늙음의 Energy (자원)을 재활용하는 길은 없을까? 오랜 장고의 해답이 2016년 탄생한 시니어 선교사훈련학교다. 천국 확장의 인력 자원으로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다.

 

 

나는 선교 현장에서 많은 것을 배우며 늙어 가고 싶다. 많은 사람을 만나며 지혜를 쌓으며 늙어 가고 싶다. 멋있게 늙어 가고 싶다. 무엇이 진정한 멋일까? 사람은 늙든, 젊든 열정(Passion)을 다해 할 일이 있는 삶이 멋있는 삶 이리라. 일에 몰두하는 동안은 청춘이다. 나도 내게 주어진 삶을 다 할 때까지 일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짐을 싸 일을 찾아간다. 일할 때가 청춘이니까, 일이 곧 삶의 멋이니까! 선교 현장에서 나는 늙음의 멋을 찾고 싶다. 우리 속담에 “노인의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했다. 집안에 노인이 없으면 이웃에 가서 빌려라도 오라는 서양 속담도 있다. 사람은 늙어 갈수록 지혜와 경륜이 차고 넘친다. 시니어 선교사는 가진 것(What you have) 없어도, 잘하는 기술(What you do best) 하나만 있으면 족하다. 선교지에 나가서 가진 것을 나누어(Share)주는 축복의 통로가 돼라. 그래서 본래의 자신을 훨씬 넘어선 (Life Above Self) 복된 삶을 살다 가자. 늙었다고 주눅 들지 말자. 내 나이가 어때서, 웃음이 나네요, 선교하기 딱 좋은 나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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