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관 20세도 되지 않은 나이에 김두한은 주먹세계를
통일했다. 전국의 내로라 하는 주먹들을 찾아다니며 이른바 도장 깨기를 시도한 끝에 주먹 황제로 등극했다. 그런 김두한도 이기지 못한 상대가 한 사람 있었으니 바로 시라소니라 불리는 이성순이다. 만주를 평정하고 내려온 시라소니가 김두한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그러나 이 대결은 성사되지 않았다. 시라소니를
처음 본 김두한은 결투하지 않고 바로 형님이라고 불렀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일설에 의하면 김두한은 많이 고민했다고 한다. 승산은 반반이었지만 김두한으로서는 실익이 없는 싸움이었다. 이미 전국을 제패해 거대 조직의 보스가 된 그는 이겨봐야 본전이고 패하게 되면 개망신은 물론 조직 전체가 와해 되어 부하들의 생계가
막막해지는 실정이었다. 쿨하게 시라소니를 형님으로 모시며 소모적인 싸움 대신 실익을 선택한 것이었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했다.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한국만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지정국가이었는데 이를 철회하고 수출심사를 엄격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일본과는 스포츠는 물론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 된다는 인식이 한국인에게 깔려있다.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웃이라 모든 것을 잘 알고 있을 듯하지만 실상 우리가 모르는
것도 많다. 우선 한국과 일본사람들은 책을 얼마나 읽을까? 2017년 문화체육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 성인은 일 년 동안 8권, 일본은 40권이다. 일본은 우리보다 5배나 더 많은
책을 읽고 있다.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60권으로 세계 일 위다. 더구나 한국 성인들 중 40%는 일 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1901년부터 시작돼 2017년에 이르는
노벨상 역사 중에서 일본은 비 구미 국가 중에서 가장 많은 26명의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21세기 이후, 자연과학 부문에서 나라별로 보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이에 비해 한국은 평화상 수상자가
한 명 있을 뿐 기초과학 분야는 전무하다. 한국의 모든
고급기술이 거의 일본에 의지해 경제성을 유지하고 있다. 더구나 일본은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다. 이런 나라를 세계 최빈국
북한과의 경협으로 단숨에 따라잡겠다고 한다. 전문가들 말에 의하면
기초과학은 5년 또는 10년안에 따라 잡을 분야가 아니다. 최고 선진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과
손을 잡아도 될까 말까 한 일이다.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이 힘을 합쳐 대학생을 따라잡겠다는 발상이다.
최근에 아일랜드에 관한 신문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아일랜드는 이웃 나라
영국에게 700년이나 식민지배를 받았던 국가다. 한국의 일본에 의한
식민지배 36년에 비하면 실로 장구한 세월이다. 아마도 반영국 감정이 우리의 반일 감정보다 몇 배는 더 깊을 것이다. 영국보다 항상
못사는 나라이었지만 최근 1인 당 국민소득이 영국을 앞질렀다고 한다. 흥미로운 건 아일랜드가 영국보다 못살았을 때는 반영국 감정이 심각했는데 영국을 추월한 지금은 반 영국 감정이
오히려 현저히 줄었다고 한다.
일본뿐이 아니고 외국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항상 우리 분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도한 민족주의로 허상을 만들어선 안 된다. 국민의 자존심을 높여주는 것은
좋지만 수준 높은 정치 지도자라면, 또 국민이라면 실상과 허상을 정확히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일본이 가진 힘, 국민의식, 학문적 수준 등은 그것대로 인정하면서 버릴
것은 버리고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또한 자기와 의견이 다르다고 친일로 매도하지 말아야 한다. 감성보다는 이성에 호소 하고 맹목적인
반일 보다는 아일랜드의 경우처럼 극일을 위해 나아 가야 한다.
1894년 충남 공주에서 벌어진 우금치전투의 전사자는 동학군이 2만여 명, 일본군은 단 1명이었다. 우금치 전투에서 동학군은 왜 그렇게 많은 전사자가 발생하며 대패를 당했을까? 간단하게 말하면
화력이 병력을 압도해버린 것이라고 말 할 수가 있다. 개틀링으로 무장한 일본과
화승총및 죽창으로 무장한 동학군은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개틀링 기관총은
여섯 개의 총신 다발이 축을 따라 회전하면서 총알을 연발로 발사하는 기관총이다. 한 번에 200발을 발사한다. 살상력이나 유효사거리는 현대의 기관총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첨단
무기인 개틀링 기관총으로 무장한 관군, 일본군과 1분에 1발씩 발사되는
구식 화승총과 죽창으로 무장한 동학군은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 비극이었다. 이러한 비극을
다시 되풀이할 수는 없다.
손자병법엔 "백 번 싸워서 백 번 이기는 것은
최상의 용병술이 아니다. 적과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의 용병술이다. 전쟁의 목표는 승리에
있다. 싸우지 않고 이긴다면 서로에게 피해도 가지 않고 갈등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상책이며 싸워서 이기는 것은 하책이다. 화가 난다고 승용차로 덤프트럭을 들이받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트럭에 약간의 대미지는 입힐 수 있겠지만
승용차는 박살이 나고 안에 있던 승객들은 전원 중상 내지는 사망할 것이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국가는 무한하다. 정부가 국민을 걱정해야지 국민이 정부를 걱정해야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진정한 고수는 지는 싸움은 시작
하지 않는다. 12척의 배로 상대방을 이기겠다는 결기도 좋지만, 더 바람직한 것은 12척의 배만 남기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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