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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한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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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8-07-23 08:58

하태린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하늘에서 
수직으로 
뿌려지는 빗물,
일종의 씨앗이다
땅 위에 닿은
그 작은 물방울 씨앗들을 
새가 부리로 쪼면
얼마나 시원하고 가벼운지 참, 새는 날 수 있고
혹은 젖어있던 안개 속
스스로 햇볕에 말려 싹을 틔우면
아른거리듯 날아오른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살아있는 빗물의 뿌리들이다
산과 들, 강과 바다, 땅 위아래, 심지어 허공에도 
물은 꿈틀거리며 뿌리를 뻗는다
의심할 바 없이 
나무들은 그 물 뿌리들의 후손이자 변신자 들이다
땅속 깊숙이 고여있는 물의 뿌리를
지상으로 끌어올려 하늘을 향해,
여차, 하고 힘차게 뻗어 나간다
빽빽한 허공 틈새만 노려
파고드는 송곳 끝,
집요한 변신자다
물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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