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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그림자 3 2024.02.05 (월)
하태린 / 캐나다 한국문협 회장
한여름 고산의빙하를 감상하고내려오다 길을 잃었다초저녁부터브랜디와 와인을 걸친 산의 양 어깨는더욱 무거워 보였다어둠 속에서 혼자 싸우다 먹칠하다무사히 내려왔다​라면 끓여 허기 채우고산짐승 공포와 습기를 머금었던이슬 친 옷가지며 어두웠던...
[기고] 자화상 2023.12.04 (월)
하태린 / 캐나다 한국문협 부회장
1 비춰보면스스로만 늘 추해 보이는모습이 있었다흰 여백으로 가득 찬언덕 위생명과 목숨이라는 두 인간이겹치듯 어른거렸고시작도 끝도 없는 기호들이표면에 기재되었다가물가물 아지랑이로피어나고 있었다 2 허기진 배물 채우듯냄새도 색깔도...
[기고] 화산석 2023.02.06 (월)
하태린 / 캐나다 한국문협 부회장
솟구친붉은 핏줄​바늘 끌연흔일까​그림자새기면서​굳어버린주름살​거미 귀엿듣는 듯​초 침 소리기울이면​기나긴씨 날 줄 찾아​은빛 침핥고 간다
[기고] 놀이공원 풍경 2022.10.12 (수)
하태린 / 캐나다 한국문협 부회장
대관람차가 돌아간다둥그렇게 말린 뭉게구름들막대기에 나란히 꽂혀 있다엄마, 솜사탕 먹고 싶어응 그래, 참 푸짐하게 부풀었구나아빠 털보 수염도 저랬지​아니,난 어제 다듬어서 오늘은 뭐...​그러니까 하나 사서 애 좀달달하게 해줘 봐요​갈래 땋은...
[기고] 선인장 2022.05.25 (수)
하태린 / 캐나다 한국문협 부회장
거칠어도 속이야늘통통 탱글탱글​하지만수십 년 여름 내내어둠을 멀리하고태양의 뿌리만핥아온 대가갈증과 원망이라는가시 옷만 걸치게 되었다​해가 뉘엿뉘엿 기울자때를 기다려 지금그간 벼리고 벼려왔던독기 서린 침을저 푸르딩딩한 살갗에 갖다...
[기고] 해후 2022.02.09 (수)
하태린 / 캐나다 한국문협 부회장
1세톤 호수를 지나이제 막 도착한 흰가면 열차안개 눈꽃 흩뿌리는창가에 멈춰섰다불빛 안고 기대앉은 그림자들밤길 먼 빙판 호수를 건너가듯시름 삭히며 졸고 있을 때시린 꽃들이 창문을 두드린다한쪽에선 말 없는 눈빛의 대화나는 가고너는 남고붉은 뺨...
[기고] 7월의 러셋 레이크 2021.10.19 (화)
하태린 / 캐나다 한국문협 부회장
휘슬러 인근 해발 2,000m고원의 한 호수 새벽 연주회야생 악사 기러기들호면의 리라 현(弦)을 뜯으며 윤슬 가락 탄주한다새벽 조각달 물 위에 뜬 월광 3악장잔월은 부서지며조각 건반 이어진다  늦잠 자던 태양귀를 쫑긋 세우며 손을 움직인다삐거덕...
하태린 / 캐나다 한국문협 부회장 ​육신은 시간이 흐를수록 탄력을 잃고 땅 표면에가까워진다 그리고 흙에 묻힌다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단 하나의 방법은 불굴의영웅과 천사가 만들어낸 묘약을 마셔야 한다는 것죽은 자의 시신 옆에는 파릇파릇 로제트...
하태린 / 캐나다 한국문협 부회장파동에 진동에 울려오는 빗소리, 몰아치는 빗줄기…줄기차게 내리는 비는 천 년 동안 멈춤이 없다종말이 가까워졌다고 다들 허겁지겁 방주를 붙잡으려달려든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은 물에 녹거나 모조리휩쓸려 떠내려갔다...
[기고] 풍경 1 2021.01.18 (월)
하태린 /캐나다 한국문협 부회장바람이 분다나뭇잎 간질인다햇살에 나뭇잎 서넛 잎사귀거미줄에 얼비쳤다 거미 한 마리선풍기에 붙어있다선풍기에 바람이 들이닥쳤다날개를 돌리는 바람그 바람에 돌아가는 선풍기거미는 선풍기에 붙어바람을...
[기고] 감쪽 같은 사랑 2020.08.10 (월)
하태린 / 캐나다 한국문협 부회장
COVID - 19지난 일은 잊기로 하자그럼,아예 기억조차 지워줄 게​그래서 기꺼이당신을 사랑하기로 했다당신의 배후엔바람의 뒤꿈치가 보인다찾아간 곳은푸른 물방울 위에오톨도톨수없이 많은 바벨탑이 세워진 곳사람들은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고 있었다신에게...
[기고] 삶과 죽음 2020.04.27 (월)
하태린 / 캐나다 한국문협 부회장
긴 그림자 타박타박 신께서 걷는다 지글거리는 복사열 넓게 펼쳐진 물 파도 지평선에 떠 있다 ​굴절된 빛은 바람이 걸어 놓은 일종의 마법 사람들은 종종 이 마법에 걸려 목숨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애초부터 낙타는 사막의 항해사이자...
[기고] 밀도 높은 소나무 2020.01.16 (목)
하태린 / 캐나다 한국문협 부회장
1껍질은 중심에서 밀려 터져 나왔다아무리 중생대 백악기 공룡 피부라지만스킨로션이 필요했다오늘도 예의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소나무는 거친 껍질 위에 천연수 로션을 발라피부를 깨끗이 닦는다나는 이것을 허공에 채워잘 보존하기로 했다그러면 어떤 지평선...
[기고] 환생 1 2019.12.03 (화)
하태린 / 캐나다 한국문협 부회장
 싱겁게 끝났다질펀한 침 범벅으로 끝난한판 대결은​상추의 익숙한 꺾기 조르기 기술로고추, 마늘, 쌈장으로 무장한 삼겹살 도전을보기 좋게 물리쳤다​도전자는 푸른 치마폭에 질식당한 채앙~하니공룡 이빨의 어두컴컴한 동굴 속으로곧바로 던져졌다잘게...
[기고] 비장(悲壯)한 맛 2019.08.26 (월)
하태린 / 캐나다 한국문협 부회장
돌격 앞으로! 와 하는 함성이 들렸어요겨우내 잠만 자던 풀들이 일제히 푸른 머리를 풀어 헤치고언덕을 빠르게 점령하면서 내지르는 소리예요​배추는 양지 켠 아늑한 땅에서 노래나 부르며흰나비가 곱게 접은 꽃 편지를 읽고 있었어요룰루랄라 세월 가는 줄...
[기고] 콩나물 2019.05.30 (목)
하태린/ 캐나다 한국문협 부회장
쪽진노랑머리가지런히​하늘하늘흔들리듯곤두서는​춤사위늘씬 날씬허리 다리매끈한 몸매​찬물 먹고속 차리던들뜬 냉가슴​긴긴밤낮잠을한숨 두 숨 잔끝에허리째 송두리째 내어주는​가녀린아니하니 오동통튼실한
[기고] 동치미 2018.11.29 (목)
하태린/ 캐나다 한국문협 부회장
침채沈菜가 오랜 세월 숙성되는 동안딤채, 김치로 변했지동침은 동침冬沈, 그래 동침이 한겨울에 무끼리 동침同寢하여드러낸 잠자리깨어난 그 얼굴, 민 얼굴로쳐다보니 흰 얼굴 그 매무새소박하고 다정한그래 동침이  추운 겨울 긴...
[기고] 견고한 뿌리 2018.07.23 (월)
하태린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하늘에서 수직으로 뿌려지는 빗물,일종의 씨앗이다땅 위에 닿은그 작은 물방울 씨앗들을 새가 부리로 쪼면얼마나 시원하고 가벼운지 참, 새는 날 수 있고혹은 젖어있던 안개 속스스로 햇볕에 말려 싹을 틔우면아른거리듯 날아오른다하지만 변하지 않는...
[기고] 알파벳 배우기 2017.11.08 (수)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 하태린
내일은 금요일, 컨테이너 한 대가 들어온다. 태평양을 건너온 온갖 물건이 실려 있다.받아들이고 풀고, 제 자리에 놓기 위해서는 오늘 미리 창고를 정리해야 한다.사이다와 소금도 구분하고막 된장과 고추장도 여기서 저기에에이스, 카땅, 허니 버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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