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협 밴쿠버 지부회원/수필
캐나다 뮤즈 청소년 교향악단 지휘자
한 달 전쯤부터 우연히 자폐아를 가르치게 되었다. 처음에는 자폐아의 특징도 잘 모르겠고, 어떻게 학생을 대하면 되는지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있는 그대로 그 학생의 눈높이에 맞추어 가르치면 될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손을 둥글게 만들어 보라고 하면 감이 바로 안 오는 것 같아 “손을 동물의 손(paw)처럼 해봐” 라고 하면 좀 더 잘 알아듣고 등등. 나이는 조금 많아도 그냥 그 학생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니 잘 받아들였다. 또 잘 했다고 칭찬해 주면 오히려 나에게 고맙다고 내 등을 토닥토닥해 준다. 얼마 전부터는 자기 사촌 같다고 내가 엄청 좋다고 하면서 안아 주기도(Hug)도 하고 천진난만하게 웃는다. 오히려 내가 그 아이에게 인정받은 것이 좋고 고마웠다.
얼마 전 발달장애인만으로 구성된 하트하트 오케스트라가 밴쿠버에서 연주를 했다. 한국에서 오기 때문에 연주 시에 필요한 것을 미리 체크하기 힘들어서 내가 도와주게 되었다. 발달장애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 하지만 내 제자를 먼저 경험해 보게 되어 조금은 이해가 갈 것도 같았다.
“음악으로 세상과 소통합니다. Heart to Heart Concert” 라는 조금은 색다른 연주 팸플렛을 받고 리허설 하는 것을 도와주러 일찍 가게 되었다. 리허설이 끝나고 본 공연 시작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있었다. 그래서 관악 앙상블 담당 선생님과 이야기를 할 시간이 있었다. “보기에는 정상인 같은데 어떤 문제가 있나요?” “장애등급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예를 들면 누가 옆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고 해도 별 관심이 없이 그냥 지나친다던가, 갑자기 샴프 병이 마음에 들면 돈이 있는 만큼 막 사기도 하고, 그렇지만 남을 해치지는 않고 화가 나면 자해를 하기도 합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 “그럼 어떻게 고쳐야 하나요?” 라고 물었을 때 충격적인, 한 번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한 대답을 들었다. “고쳐지면 병이지요. 고치기 못하기 때문에 ‘장애’ 라고 합니다.” ‘아, 그렇구나!’
장애라는 뜻을 제대로 알고 연주를 보니 리허설에서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런데 일반 아이들과 다를 것이 없이 생각보다 너무 잘했다. 나중에 물어 보니 단원 중에는 일반인도 가기 어려운 한국예술종합학교에 3명이 입학하여 전문 음악인의 길을 걷는 단원들도 있었다. 보기에는 다 정상인들이 하는 연주 같았다. 그런데 중간 중간에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보니 말을 더듬거나 하는 모습이 정상 아이들과는 달라 보였다.
연주를 시작하려는데 바이올린 파트 중 한 곳의 보면대 위에 악보가 없었다. 연주는 시작해야 하고. 그 학생이 다른 단원들과 같이 악보를 보는데 굉장히 불안해 보였다. 단원들은 같은 곡을 거의 1000번을 연습하기 때문에 곡을 다 외운다고 하는데도 굉장히 불안해해서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도 중간에 악보를 구해 와서 연주를 잘할 수 있었다.
연주 순서 중에 단원 한 명의 생활에 대해 다큐를 찍은 것을 보았다. 연주 날을 준비하는 모습이 감동스러웠다. 예를 들면, 연주 날 관객을 만나는 것에 대한 설렘, 기대감에 차서 엄마와 함께 연주 복을 준비 하는 모습 등.
연주 중에 플루트하는 학생이 졸고 있었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자기 파트가 나올 때는 천연덕스럽게 연주를 했다. 나중에 너무 신기해서 선생님께 물어보았더니 종종 그런 일이 있는데 본인도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단원 중 가장 인상 깊었던 학생은 팀파니를 치는 학생이었다. 지휘자를 뚫어지게 보면서 악보에서 자기가 쉬는 마디를 손가락으로 계속 세고 있다가 자기 차례가 되면 열심히 연주하고, 또 앤딩 부분은 지휘자 하고 똑같이 팔을 들곤 했다. 그 집중력에 놀라웠다. 마지막 순서로 아이들의 반주에 어머니들이 합창단을 만들어 노래 하였다. 듣는 우리도 그동안의 수고가 느껴졌고 어머니들도 감격에 겨워하셨다.
다음 날 뒤풀이를 하는데 선생님, 스텝들이 한 마디씩 소감을 말하면서 전부 감동의 눈물바다였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이 아이들과 함께 오케스트라를 만드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해서 단장님께 여쭈어 보았다. “처음에는 공예, 미술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해 보았지만 별로 발전이 없었어요. 10년 전부터 오케스트라를 시작했는데 아이들이 많이 달라졌어요. 오케스트라는 하모니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자기 파트가 없으면 남이 연주하는 것을 기다려야하고 또 나만 크게 해도 안 되고 그런 여러 가지가 아이들을 변화시켰습니다.” 또 연주를 도와준 분들에게는 가슴에 빨간 색 하트 모양 안에 Heart to Heart 라고 쓰여 있는, 곰돌이를 안아줄 때 곰돌이의 심장이 몸에 닿으면 심장이 뛰는 하트 베어를 선물로 주셨다.
이번 하트하트 오케스트라를 보면서 장애인들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고, 베네수엘라의 빈민과 범죄로 만연한 곳에서 자라는 아동들을 구해낸 기적의 오케스트라 엘시스테마처럼 사람을 변화시키는 음악의 놀라운 힘과 어려운 처지의 아이들을 위해 수고하는 선생님들에 대해 감사함도 갖게 되었다. 지금도 심장이 뛰는 하트베어를 안아보면서 ‘이 사회에서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이렇게 마음으로 안아주고 감싸주면 함께하는 사회, 좀 더 따뜻한 사회가 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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