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여행]야생의 5 종 철인 경기장 NCT (4)

글 김해영, 사진 백성현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1-09-09 16:37

3.쪽비치 파라다이스

 다행히 크리슨튼 포인트(25.5km 지점)는 검은 자갈돌 아래 잔모래알을 품고 있다. 발치까지 물이 든 줄도 모르고 팀원들은 잘 잔다.

 난 밀물과 빗줄기, 신발창 탈착증 염려에 잠 못 자 빨간 토끼눈으로 새벽에 일어나니 하늘이 울먹울먹하고 있다. 그도 밤새 고민했던 걸까? ‘괜찮아, 밑창 떨어질 때까지 가보는 거야. 포기는 언제든 할 수 있는 거잖아.’마침 가져온 반짇고리를 꺼내어 게이터 앞과 뒤에 배낭끈 두 줄을 잘라 묶는 걸로 미봉책을 삼았다. 그걸 본 성현 씨가 여유분 등산화 끈으로 신발 가운데를 야무지게 묶어준 덕에 트레킹은 진행하나 여정 내내 시한폭탄처럼 날 긴장시킨다.

 나히티 콘(Nahwitti Cone)을 둘러오며 겪은 고생에 비해 오늘은 편안한 해변길이다. 저기 보이는 케이프 서틸(Cape Sutil)까지 16.5km만 가면 화장실과 물이 있는 캠프장에 닿는다. 미끄러운 암벽도 타넘어 온 베테랑 하이커들인데 뭐가 두려우랴? 사기충천하여 거북이 등딱지 같은 배낭을 메고 첫 발을 내디딘다.

열린 해변길을 걸을 때는 눈은 호사를 하는 반면 발이 고생을 한다. 자갈과 모래, 그리고 해초넝쿨이 해빙기의 눈밭을 걷는 것처럼 힘들다. 더군다가 운동화끈으로 신발 밑창을 묶은 나는 지뢰밭을 통과하듯 걸음마다 발밑을 살피고.

 다행히 밀물 때는 아직 멀었다. 까짓 16.5 km. 기어서 가도 케이프 서틸에서 황홀한 저녁놀을 즐길 수 있겠지. 야무진 기대를 품는다. 그러나 NCT는 결코 만만한 트레일이 아니다. 곳곳에 복병을 숨겨두고 하이커들의 인내를 시험한다.

 지도에 두 줄기 물결 그려진 작은 동그라미가 숱하게 깔려 있다. 이른바 포켓 비치(Pocket Beach). 얼마나 앙증맞고 사랑스러운 이름인가. 그러나 그 쪽비치들이 베테랑 하이커들의 발목을 한밤중까지 묶어둘 줄이야.

 앞으로 걸어야 할 본 트레일은 어제 걸은 비정규 트레일과 비교해 딱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위태로운 해안 암벽을 타고 넘는 대신 해변에서 숲으로 오르내리는 수직의 밧줄을 타야 한다는 것.

블러프 구간만 잠시 숲길을 빌리고 다시 해변으로 나와 모래알, 자갈, 해초더미와 싸우며 걸어야 한다. 처음 한두 개는 재미로 건넌다. 그러나 해변을 들락거리며 지치고 힘들어진다. 쪽비치가 끝나지 않아 어느 경치 좋은 데 앉아 지도의 포켓비치를 헤아려보니 모두 9 개.

그러나 우리가 넘은 것만도 열 개가 넘으니 지도가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또 몇 개의 쪽비치가 남아 있을지. 끝없는 쪽비치를 만났다 헤어지면서 해변의 낭만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다.

 거대한 바다와 킬킬거리고 웃는 파도, 그리고 매달려야 하는 로프와 질퍽거리는 현실 앞에 이 앙다물고 마주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바탕 화면이 자주 바뀌어 지루할 새가 없다는 점. 퍽퍽한 해변길을 걷다가 질펀한 숲길이, 숲길이 지겨워질 만하면 다시 해변이 나타난다. 종달새처럼 지저귀다가 갈수록 말이 없어지는 팀원들.

이 모퉁이 넘으면 셔틀워스 바이트이니 거기까지 가서 더 갈지 말지 결정하자는 말에 무거운 몸들을 일으킨다. 사람은 아무리 짙은 어두움 속에서도 희미한 빛 한 줄기에 기대어 살아갈 희망을 갖는다. 내가 병석에 누워 시로 시름을 토하고, NCT 트레킹을 꿈꾸며 희망의 군불을 지폈던 것처럼.

 하늘이 희끄무레해지고 바다물빛도 암회색으로 기울어간다. 마지막 쪽비치를 벗어나려면 둥근 부표 매달린 바위틈새를 기어 올라야 한다. 몸을 45 도로 기울여  좁은 바위틈에 발을 꽂아 네 발로 기어 언덕에 오르면 나무뿌리 엉킨 언덕이 나오고, 그것을 오르려면 굵다란 밧줄에 몸을 실어야 한다. 자기 체중에 배낭 무게까지 가세하니 그 무게가 장난이 아닌데 이제 그만한 모험은 무리없이 소화해 낸다.

 연녹색 수림을 즐길 만할 즈음 진흙 잔뜩 묻힌 하이커들을 만난다. 30분 후에 나올 메도우에 흑곰 두 마리가 있으니 주의하란다. 야생지에서 아직 동물을 못 보았으니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이 앞서지만 성미 급한 곰들이 우릴 기다리지 못하고 이동하는 바람에 볼 수 없었다.

 스탠바이 강(Stanby River, 30.6km 지점)에 케이블 카가 기다리고 있다. 모처럼 만나는 놀이동산이다. 배낭과 사람 둘을 태운 후 제 무게에 강 중간까지 스르르 미끄러져 가다가 멈추면 밧줄을 당겨 반대편 플랫홈에 이른다.

주의할 점은 케이블 카 밖으로 배낭 끈이나 하이킹 스틱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과 밧줄을 잡아 당길 때 도르래에 손이 끼지 않도록 거리를 두는 것. 시원하게 강물 위를 나르며 땀을 식히고 강물을 정수해 물병에 담는다. 한 500m 정도 숲길이 더 이어지고 다시 해변으로 뚝 떨어진다.

 셔틀워스 바이트(Shuttleworth Bight,35km 지점)는 끝없는 백사장이다. 쪽비치가 궁에 갓 들어온 생강각시 같다면 흰 모랫결 남실대는 백사장은 대례복 입은 황후다. 바다와 하늘을 아우르는 자태가 우아하고 기품있어 강팍한 삶의 내를 건너온 사람까지 넉넉히 품어줄 만하다. 게다가 얄팍하지만 널찍한 내가 흐르고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엮은 움막까지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쉼터가 된다.

 오후 세 시가 되어 이른 셔틀워스 바이트가 그랬다. 기울어진 나무 걸상에 앉아 비를 그으며, 한데서 간식을 먹는 서양 하이커들을 측은히 바라볼 수 있는 작은 행복을 맛본다. 오후 세 시에는 돌멩이라도 소화시킬 만한 시간. 고추장에 굴린 멸치를 꽂은 김밥, 꿀맛이다. 야영을 하기엔 천혜의 절경. 예정대로 진행했다면 둘째 날의 야영지인데. 아웃 오브 트레일을 후회, 또 후회한다. 이 멋진 야영지만 놓쳤는가?

이미 오후 네 시가 다 되어가는데 걸어야 할 길이 8km나 남아있다.
 깊은 한숨 머금은 구름이 하늘을 가로질러 바다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어머님전상서 2012.05.11 (금)
어머님, 이렇게 속히 제 곁을 홀연히 떠나시게 될 줄 정말 미처 몰랐습니다.지금 생각하니 회한뿐입니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드리지 못한 불효여식을 용서해주세요. 회한으로 오열합니다. 정말 죄송하단 말밖에 드릴 말이 없습니다. 이제 7월부터는 함께 다니자고 새로 갱신한 새 여권을 가슴에 안고 어린애같이 좋아하시던 어머님. 이제 어머님 보고 싶으면 저는 어찌해야 하나요? 어머님은 이 세상에서 제가 가장 존경하던 분이셨습니다. 평생을...
오유순 밴쿠버 한인회장
캐나다 서북부 광활한 대평원 한복판에 자리 잡은 에드몬톤은 사방이 까마득한 지평선으로 둘러싸여 시야(視野)가 180도에 달한다. 온 천지가 한없이 넓게 펼쳐져 보인다. 그래서 이곳의 스산하도록 높고 짙푸른 늦가을 하늘이 담아내는 희고 투명한 구름결의 향연은 더없이 감동적이다. 한편에는 새털구름(卷雲)이 수평방향으로 넓게 퍼져 너울대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는 비늘구름(券積雲)이 물고기가 유영하듯 떠 있다. 면사포 같은...
灘川 이종학
거대한 몰(Mall) 속에 자리 잡은 휴처 숍(Future Shop) 혹은 런던 드럭(London Drug)에 가면 삼성이나 LG TV 영상모니터가 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한국제품이 캐나다 본토 중앙에서 광채를 발하고 있지 않은가. 언젠가부터 우리는 뿌듯한 마음으로 서양 백화점을 걷게 됐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한 사람의 정신이, 하나의 회사가 전 세계를 향해 품은 비전이 온 인류를 편리한 길로 안내하고 기쁨을 선사하게 된 것이다. 스티븐 잡스가 며칠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김영기 작곡가·시인
산은제 마음을 비워야풀꽃들의 이야기가 들리고산새들의 울음결에 울리어아니 보이던 곳을 볼 수 있게 한다산 오름은본디 제 마음을 찾아 드는 일상한 가슴에 하늘빛이 내리어무엇이우리를 괴롭히고 서글프게 하는 지스스로 알게 한다물과 바람과 빛과 시간모든 흐름의 섭리가 스승이 되어 우리를 풀어 준다다시 밝는 여명의 하늘처럼<▲ 사진= 늘산 박병준 >
유병옥 시인
트레킹 마지막 날 아침, 산새소리에 일어나니 캠프 패드가 촉촉하다. 간밤에 비가 밀사처럼 다녀갔나 보다. 우리를 문명세계로 실어내갈 보트 닿는 선착장(Wharf)이 아침 안개에 싸여있다. 입 떡 벌린, 게다가 젖기까지 한 등산화를 다시 발에 꿰고 싶지 않아 샌들 신고 내려갈 만한지 하산길을 들여다본다.  시작부터 가파르다. 45도 경사진 기슭에 도끼질 몇 군데 해놓은...
글: 김해영 ∙사진:백성현
낭만주의 화가로 알려진 로제티(D.G.Rossetti)는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풍자한 적이 있다. ‘무신론자에게 최악의 순간은 그가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길 때라고.’ 무신론자의 가장 나쁜 순간은, 진실로 감사하고 싶은 데 감사할 대상이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감사는 먼저 하늘에 향해 하기 때문이다. 무신론자들에게 불편한 마음을 줄 수 있는 표현이겠다. 그렇다면, 신을 믿는 종교인들, 신자들의 최악의 순간은 뭘까? 진실로 감사해야...
석창훈
 스키나 크릭에서 수셔티 베이까지 8.6km를 남겨둔 마지막 날 아침. 늦잠 늘어지게 자고 11시 출발!을 선언했는데도 야성이 밴 팀원은 새벽 5 시부터 일어나 부산을 떤다. 허니문 중인 신랑과 새색시 깨지 않게 살짝 몸을 일으켜 발개진 모닥불 앞에서 오늘의 일정을 점검한다. 5 시간 걸리는 구간이라 말하지만 분명 쉽지 않은 길이리라. 우리와 반대쪽을 걸어온 젊은...
글: 김해영 ∙사진:백성현
그 산에 가려거든진달래 작은 씨를 들고 가시라산 굽이굽이 봄그림을 그릴 것이니그 산에 가려거든 단풍나무 씨를 들고 가시라 하늘이 노을을 내리어 가늘 산을 그릴 것이니그 산에 가려거든솔씨 한 톨 들고 가시라 벼랑끝 절경으로 키울 것이니그 산에 가려거든 머루 알을 모아들고 가시라산도 그 뜻을 기리어 흐뭇해 하리니그 산에 가려거든소쩍새와 함께 하시라그 울음...
유병옥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