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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병섭 단편소설 연재(4)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6-11-09 00:00

쌕쌕이와 사진

6.

부여에는 경찰이 먼저 철수했지만 인민군은 아직 밀려오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는 숨어 있던 좌익, 보도연맹 사람들이 뛰쳐나와 지방 치안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부여 지방은 아직 치안대가 나타나지 않아 잠시 치안 공백상태에 있는 지역이었다. 그래서 부여에 집 있는 사람들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고 잠시 몸을 다른 곳에 피하는 이도 있었다.

자기 몸 하나도 감출 곳 찾기 어려운 형편임을 잘 알고 있는 준호는 홀로 행동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다. 준호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나루터로 다시 갔다. 강물은 무정하게 흐르고만 있었고, 물새마저도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마치 세상이 텅 비어 있는 듯 했다. 준호는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준호는 임 목사의 "늘 동행해 주시고 생명을 지켜 주시옵소서"라는 대나무 숲에서의 기도를 떠올렸다. 그 기도가 왠지 힘이 됐다. 준호도 그 기도를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해가 서산에 걸렸을 때쯤 쪽배 한 척이 홀연히 나타났다. 준호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디 가시오?"
"강을 건너 남쪽으로 가려 합니다."
"강가에 누군가 혼자 서 있는 것이 보여서 혹시나 하고 온 것이오. 요즘은 세상이 험해서 돌아다니는 배도 없을 텐데,  날도 저물었고, 배에 서둘러 오르시오."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데 노인은 어쩐 일로......?"
"전쟁 통이라도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소? 물고기를 좀 잡았지"

노인은 나룻배 바닥에서 꿈틀 거리고 있는 물고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노인은 어디로 가느냐고 준호에게 물었다.

  “갈 곳이 없지만 그저 남으로 갈려고 합니다. 지금 제 수중에는 한 푼도 없으니 이 고마움을 무엇으로 갚지요?"
 "그게 무슨 말이오. 내가 무엇을 바라고 청년을 태워 주는 게 아니오. 나는 내 아들이 이 쪽배로 이 강을 건너 남으로 갔소. 내 아들을 생각하며......"
  노인은 목 메인 소리로
  "청년, 몸조심 하시오"
 "죽지 않고 살면 찾아뵙겠습니다." 
 노인은 큼직한 물고기 두 마리를 꼬챙이에 끼어 주면서
  "불빛이 보이는 저 외딴집으로 가 거기서 주무시고 가시오. 이 물고기를 주면서 내 이야기를 하시오"

배에서 내린 준호는 노인이 하라는 대로 했다. 그 고기로 찌개를 끓이고 잡곡밥으로 배불리 먹고 잤다. 

7.

준호는 다음 날 아침 일찍 황등으로 갔다.
거기에서 뜻밖에 그의 신학 동창 김득주의 동생, 연세대 학생인 한주를 만났다. 한주는 자기 형을 대하듯 반가이 맞아 주었다.  준호는 그 날 거기서 하루 밤을 지내고, 다음 날 한주의 교회 사람들과 이리를 거쳐 목포로 가기로 했다. 일행은 남녀노소 한 떼가 됐다. 황등역을 빠져 나오니 이리 쪽에서 총소리가 요란하고 시가에는 검은 연기가 여기저기서 치솟고 있었다. 인민군이 이미 앞질러 이리를 점령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생각하기를 인민군이 파죽지세로 남한 일대를 다 점령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때 거기에서 준호와 한주는 남하하는 것을 단념했다. 남한이 다 점령당했다고 생각하니 피난 갈 곳이 없어졌다. 또 부여에서와 같이 일행은 흩어졌고 준호만 혼자 남았다. 준호는 북상하기로 했다. "역 출애굽"이다.  뱀의 굴을 탈출했지만 다시 범의 굴로 들어가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황등으로 다시 들어서니 붉은 완장을 두른 사람들이 행인들을 조사 하고 있었다. 어는 사이에 치안대가 등장 했고 세상은 공산 치하가 됐다.

  "동무, 어디로 가는 사람이요?"
  "서울로 갑니다.”
  "서울엔 왜?"
  "난 서울에서 살고 있는데 빨리 돌아가서 해방 사업을 도우려 합니다."
  "그럼 왜 여기까지 내려 왔었오?"
  "친구를 만나려 이리까지 왔다가......"

그 이상은 묻지 않고 놓아 보냈다. 처음 당하는 질문이라 거짓말을 꾸며 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미처 몰랐다. 다행히 처음의 검문소를 무사히 통과 했다. '빨리 돌아가 해방 사업을 돕는다'는 말에 쉽게 넘어간 것 같다. 그때부터 준호는 거짓말을 꾸미고 지우고 하며 머리를 굴리고 또 굴리기 시작했다.

준호가 꾸민 거짓말은 대략 이렇다.

'직업은 소학교 선생, 학교는 농업학교, 고향은 서울', 소학교 선생이라고 한 것은 그가 과거에 소학교 선생을 한 경험이 있고, 학벌을 농업학교로 꾸민 것은 그가 농촌 출신이 돼서 농사일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며, 고향은 서울로 해야 무난할 것 같아서 그리했다. 그리고 그의 사상을 물으면 '철저한 공산주의자'라고 하겠고, 제일 혐오하는 사람은 '이승만'이라고 '완전 위장'을 하고 몇 곳의 검문소를 통과 했다. 그때의 치안대원들은 준호의 꾸며대는 말에 별로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았다. 대부분의 치안대 사람들은 지방에 숨어있던 빨갱이었고 이북에서 내려온 내무서 사람들은 중요한 곳에만 배치되어 있었다. 준호는 여러 번 검문을 당했다.

그 때마다 거짓말 하는 명수가 되어져 갔다. 그는 해방 후 두만강을 넘고 38선을 넘을 때도 성경책만은 가지고 다녔다. 성경책이 있으면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을 느끼며 사이사이 성경을 읽는 즐거움도 있었다. 그리고 자기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도 감춘 일이 없었다. 그것은 그의 신앙이었고 하나님께 대한 충성이었다. 거짓말은 죄가 된다는 신앙의 사람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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