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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병섭 단편소설 연재(2)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6-10-26 00:00

쌕쌕이와 사진

북한강 상류에 놓여 있는 강언덕교회는 한강을 옆에 끼고, 높은 산을 배경으로 길게 누어 천수에 의존하고 있는 농촌이었다. 준호가 그곳에 갔을 때, 그곳 사람들은 3년이나 천수의 혜택을 얻지 못해 벼농사는 거의 못하고 밭농사에서 얻은 곡식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니 쌀밥은 먹을 수 없었고, 떡 같은 것은 더욱 귀했다. 준호는 이런 상황을 보며 점심 식사는 안 하기로 하고 하루 두 끼로 견디며 생활했다. 농민과 함께 허리띠를 졸라 맨 셈이다.

준호는 한강 물을 퍼 올려 밭이 논이 되게 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는 도지사를 만나 자신의 꿈을 전달하고 싶었다. 하지만 일개 전도사로 도지사를 만나는 일이 그리 쉬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교회의 원로로 고위직에 있는 심계원장과 고시원장에게서 추천장을 얻었다. 추천장이 도움이 되었는지, 도지사는 몸소 나이 25세 약관인 준호를 직접 만나겠다고 대답했다. 도지사 앞에서 준호는 '수리 시설'에 대해 또박또박 설명했다. 도지사는 준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한 번 방법을 모색해 보겠다고 말했다.

준호는 희망을 가득 안은 채 강언덕교회로 돌아오자 곧 '수리조합 기성회'를 조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청 직원들이 현지답사를 하고 뒤이어 측량 기사들이 내려 왔다. 준호도 자주 도청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준호가 도청에 다녀오는 날에는 이장이 마중을 나오고 면장이 자기 집에서 저녁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이 소문이 양평군 전체에 퍼지면서 한 선생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점심을 안 먹는다,' '강 언덕 마을에 수리조합이 세워진다'는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준호의 이름이 널리 퍼지게 됐다. 그러던 중 제2대 국회의원 선거 일정이 발표됐다. 1950년 5월 30일, '530총선'이었다.

'준호를 국회로 보내자' 이 제안은 양평읍교회의 강창진 목사가 했고, 선거운동은 군내의 모든 교회가 앞장서서 했다. 그러나 준호는 망외(望外)의 득표는 했지만 낙선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준호는 돈 한 푼 없이 선거를 치렀기에 빚은 없었다.  그러나 정신적인 빚은 많이 지고 있었다. 특히 강언덕교회 교인들, 시찰장 강창진 목사를 비롯한 여러 교회 목사들과 교우들의 헌신적인 후원과 사랑을 갚을 길 없어 먼저 감사장을 보내기로 준비 하고 있던 차다.

3.
 
하루가 지났는데 김 순경이 다시 준호를 찾아왔다.

"한선생님,  빨리  떠나세요. 교회의 전도사에다 더욱이 국회의원에 입후보까지 하셨는데, 게다가 월남한 분이시고....... 그냥 놔두겠어요?"

"교인들을 두고 떠나다니 말도 안 돼요. 어찌 목자가 양을 두고 떠날 수 있겠어요?"

준호가 말했다.

"양을 떠나보내야 할 때가 있는 법이고, 목자가 떠나야 할 때가 있는 법이에요. 한 선생님은 빨리 이곳을 떠나서야 해요"

"하하, 김 순경님은 양을 떠나보내는 목자나 다름없군요."

준호가 농담처럼 이렇게 말하자, 김 순경은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때 교회 홍 영수 김 권사 박 집사 몇 분이 준호의 방으로 들어와 빨리 피난 준비를 하라고 했다. 준호는 그제야 사태가 정말 심각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준호는 김 순경의 손을 꼭 잡았다.

"부디 큰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한 선생님도 몸조심하세요."

준호는 꼭 잡은 김 순경의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손을 놓으면 김 순경을 영영 보지 못할 것만 같았다.

"식구들이 기다릴 테니 빨리 가보세요."

준호는 김 순경의 손을 놓으면서 말했다. 김 순경은 고개를 꾸벅 하고는 이내 방 밖으로 나갔다. 준호는 피난 보따리를 챙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먼저 성경을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앨범에 붙어 있는 사진을 한 장씩 떼어내기 시작했다. 사진을 한 장씩 떼어낼 때마다 그 사진에 묻어 있는 추억이 한 꺼풀 씩 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준호는 일제 강점기에 만주에 있다가, 해방 되던 해에 두만강과 38선을 넘어 남한으로 올 때 사진을 한 장도 가져오지 못한 것이 늘 후회스러웠기에 이번에는 잊지 않고 사진을 챙기기로 했다. 사진이 없으면 왠지 과거의 기억이 잘려 나가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안개에 휩싸이듯이 기억이 조금씩 지워지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사진과 성경책을 챙기고, 옷 몇 가지를 주섬주섬 배낭에 넣으니 더 이상 가져갈 것이 없는 것 같았다. 독신인 몸이니 밥은 얻어먹고 방이든 마루든 마당이든 잠자리가 주어지면 어디든지 자면 된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새벽, 준호는 정들었던 강언덕교회를 마지막으로 바라봤다. 언덕에 우뚝 솟아 크고 듬직해 보이던 교회가 아들을 떠나보내는 아버지의 모습을 닮고 있었다. 아니, 양을 떠나보내는 목자처럼 보였다. 준호를 보내는 교인들은 교회에 모여 홍영수가 대표로 기도했다. 목자를 보내는 양들의 기도, 양들을 두고 피난 떠나는 목자의 기도 "'무사를 빌며", 다시 만나게 해 달라는 눈물의 기도를 드렸다.

준호는 시야에서 멀어지는 강언덕교회를 몇 번씩이나 뒤돌아보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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