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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레몬 사로잡은 ‘비주류 스펙’··· 트렌드를 읽는 기획자로

최희수 기자 ch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6-06-19 11:49

스포츠웨어 브랜드 룰루레몬의 기획 MD
비주류 경험을 무기로 바꾼 박주인 씨
흔히 취업 시장에서는 성공으로 향하는 ‘정석 코스’가 있다고 여겨진다. 인기 전공을 선택하고, 인턴십을 거쳐, 관련 업계로 진출하는 일종의 성공 공식이다. 하지만 모든 기업이 같은 이력서만 찾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에서 쌓은 경험이 더 강력한 경쟁력이 되기도 한다. 밴쿠버 룰루레몬(Lululemon) 본사에서 기획 MD(Merchandise Planner)로 일하고 있는 박주인(39) 씨가 그런 사례다. 

그의 커리어는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와는 거리가 멀다. 대학에서 비주류인 중동학을 전공했고, 아프리카 현지 삼성전자 법인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밴쿠버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건 서른 무렵. 물류 업계를 거쳐 룰루레몬 기획 MD로 자리 잡기까지 그의 남다른 현장 경험과 독학으로 쌓은 데이터 기술 역량이 든든한 기반이 됐다.

그 과정 끝에 그는 룰루레몬에 2개월 단기 계약직으로 입사해 4년 만에 북미 시장의 매출과 유통 전략을 좌우하는 기획 MD로 성장했다. 비주류 스펙을 자신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바꿔낸 것이다. 그는 “남들과 똑같은 스펙을 쌓기보다, 내가 확실히 잘할 수 있는 능력치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가 걸어온 커리어 여정과 성장의 비결을 자세히 들어봤다.

Q. 본인 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박주인입니다. 열 살 때인 1997년 가족과 함께 아보츠포드로 이민을 와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토론토 대학교에서 아랍어와 히브리어 그리고 유대교와 이슬람을 공부했습니다. 현재는 밴쿠버 룰루레몬 본사에서 기획MD(Merchandise Planner)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Q. 전공이 독특합니다. 중동학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고등학생 때 혼자 이집트로 배낭여행을 다녀왔어요. 저희 아버지께서 독립심과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셔서, 고등학교 졸업 전에 혼자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집안의 통과 의례였죠. 친형은 유럽을 다녀왔는데, 다음 해에 저는 형과 똑같은 곳을 가기 싫어서 이집트를 선택했습니다. 사실 대학에서 학문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해 전과를 여러 번 하다가,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던 중동지역학을 선택하게 되었죠. 이집트 배낭여행의 영향이 컸습니다.

Q. 졸업 후 첫 직장도 남다르시더군요.

학교 졸업하고 캐나다 내에서 취업이 너무 어려웠어요. 중동학 같은 분야는 최소 석사학위를 요구하더라고요. 대학원과 로스쿨 지원 준비도 조금 했다가 학교 밖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포기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리크루터의 연락을 받고 삼성전자 아프리카 법인에 지원했고 아프리카 수단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동·아랍어 문화권에서 살아보는 좋은 경험이 된 것 같습니다.

Q. 그곳에선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아프리카에 있었습니다. 북수단의 수도카르툼에 상주하며 관할국인 북수단과 에티오피아, 그리고 지부티의 오더 관리가 주업무였어요. 삼성전자는 수직 계열화 기업이기 때문에, 공장이 멈추지 않도록 각 지역의 수요를 정확히 예측하고 재고를 관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한국 본사와의 소통이 자유로운 한국인 직원들이 꼭 필요했죠. 소비자에게 제품을 판매하는 건 현지 통신사와 유통업체(캐나다의 로저스나 베스트바이 같은 개념)가 맡고, 저희는 유통업체의 오더를 받은 뒤 마케팅과 재고 관리를 서포트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Q. 20대 중반의 나이에 아프리카에서 일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모험적이고 뭐든 빨리 질리는 제 성격에 정말 잘 맞는 다이나믹한 직장이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현장에서 시키는 일은 직무 경계 없이 다 했습니다. (웃음) 수단, 에티오피아, 지부티, 케냐, 남아공을 바쁘게 오가며 현지 유통업체와의 계약 체결부터 현지 조립공장의 설비 설치, 그리고 직원 교육 조율까지 주어지는 대로 했었죠. ‘월화수목금금금’ 딱 그렇게 3년을 살았습니다.

Q. 그 곳에서의 일상은 어땠나요.

매일매일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었어요. 소말리아 해적에 컨테이너 뺐긴 적도 있고, 미국의 경제 제재로 은행계좌가 다 막혀 수 억원의 현금 다발을 인편으로 전달한 적도 있었습니다. 한 번은 한 현지 직원이 내전 지역인 고향에 내려갔다가 수개월 동안 연락이 두절 되었다가 피골이 상접해 나타나기도 했고요. 그럴 때 마다 현지 친구들은 만트라처럼 한마디 했습니다. “TIA - This is Africa.”

Q. 지금의 룰루레몬 커리어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서른 즈음 밴쿠버로 돌아와 한국 물류 대기업의 밴쿠버 지점에 입사하면서 이곳에서의 첫 커리어를 시작했어요. 물류회사에서 일할 당시 데이터를 입력하는 수작업 업무가 너무 힘들어 코딩(파이썬 등)을 독학하여 업무 자동화를 했었는데, 2022년 무렵 제품 수요 예측과 데이터 분석 경험을 가진 인재를 찾던 리크루터의 연락을 받고 룰루레몬으로 이직하게 되었죠. 당시 팀에서는 데이터 기반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인재를 찾고 있었는데, 저의 삼성 경력과 물류 현장 경험, 그리고 독학으로 쌓은 코딩 역량이 그 조건에 부합했던 것 같습니다.

Q. 처음에는 2개월 계약직으로 입사하셨다고요.

네, 재고 분석가(Inventory Analyst)라는 포지션으로 두 달 정도 급하게 대체하는 역할로 시작했습니다. 남자 반바지 재고 관리와 제품을 스토어에 배당(allocation)하는 업무를 맡았죠. 나중에 알고 보니 단기 계약직으로 일단 사람을 뽑고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룰루레몬의 흔한 채용 방법이었습니다.

Q. 룰루레몬에서는 어떤 역할들을 맡아오셨나요.

북미 지역 상품기획 부서 안에서 재고 분석가, 그리고 부상품기획자(Associate Merchandise Planner)를 거쳐 입사 4년 만에 기획 MD가 되었습니다. 계속 같은 부서에 있었지만 담당 제품군은 남성복 반바지, 남성복 바지, 헤드웨어 순서로 옮겨왔고, 현재는 미국, 캐나다, 멕시코 세 나라의 이큅먼트(Equipment; 요가 매트, 러닝 장비, 트레이닝 장비, 텀블러 등) 제품 매출 계획 및 유통과 재고 전략 수립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Q. 룰루레몬 기획 MD는 정확히 어떤 일을 하나요. 

담당 제품군과 지역 내 매출 타겟을 세우고, 각 시즌별 제품 라인업 구성과 유통 전략, 그리고 재고 관리 업무를 합니다. 흔히 ‘작은 사장’이라 불리는 직군인데, 일선에서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죠. 실제로 매장과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제 담당 제품은 다 저의 손을 거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색상 다양성, 실루엣 종류, 제품 판매 사이클, 브랜드 방향성과 생산성을 고려하여 선택을 하게 되고, 저의 결정이 실제로 매출에 그대로 반영되는 재미가 있어요.

Q. 예상보다 좋은 반응을 얻었던 제품이 있었나요.

최근 북미 시장에서 가장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러닝 베스트(조끼)’와 ‘러닝 벨트’ 같은 런닝 기어 라인업이 기억에 남습니다. 1~2년 사이에 전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러닝 열풍과 맞물려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죠. 고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꾸준히 관찰하고, 그 수요에 맞춰 룰루레몬만의 강점을 담아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기획 MD로서 고객들이 원하는 제품을 시장에 선보이고 좋은 반응을 얻을 때 큰 보람을 느껴요. 

Q. 매출 책임에 대한 부담도 크시겠어요.

기대했던 유망주 제품의 실적이 안 나오거나 재고가 누적될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또 담당 제품 전략에 대한 리더십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때로는 뚝심 있게 제 생각을 관철시켜야 하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매우 중요해요. 다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서 정확한 표현과 순발력이 부족해 아쉬울 때가 있죠.

Q. 또 업무적으로 쉽지 않았던 부분이 있다면요.

리테일과 의류업계 생리를 몰라 적응에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딱히 의류나 쇼핑을 좋아하던 사람이 아니었어서 의류 소비 패턴과 제품 주기 그리고 계절성 같은 상식들을 익혀야 하는 점이 어려웠죠. 무엇보다 제게 가장 큰 도전은 프레젠테이션이었습니다. 기획 MD는 담당 제품 매출에 대한 전략을 전달하고 동의를 얻어내야 하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매우 중요하거든요. 다만 발표가 아니라 ‘대화’라고 생각하면 부담이 많이 줄어들더라고요. 나름의 팁입니다.

Q. 룰루레몬의 사내 분위기나 문화는 어떤가요.

현재는 웰니스 중심의 사내 문화 속에서 만족스럽게 일하고 있어요. 매달 운동비 지원이 나오고, 근무 시간 중에도 드롭인 할 수 있는 클래스가 매일 있습니다. 운동과 아웃도어를 좋아하는 직원들이 모여 있어 근무 시간 외에도 같이 운동하는 모습이 흔하다고 볼 수 있죠.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에 모여 밴쿠버 다운타운 씨월(Sea Wall) 6K를 달리는 ‘사내 런클럽’을 가장 좋아합니다. 날씨 좋은 날 사무실을 나와 해변을 달릴 때, 내가 잘 살고 있구나 생각이 듭니다.

Q. 룰루레몬이 원하는 인재상은 뭘까요.

너무 당연한 거지만 많이들 모르시는 입사 비결이 있습니다. 리테일은 매장이 제일 중요합니다. 매장에서 고객과 제품을 배울 수 있고 사내 문화를 경험할 수 있거든요. 특히 엔트리 레벨 잡 경우 스토어 경력이 엄청난 가산점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룰루레몬이 본사를 헤드 오피스(Head office)라고 하지 않고 매장 지원 센터(Store Support Centre)라고 부르는 것도 그 이유죠.

Q. 퇴근 이후 시간은 주로 어떻게 보내고 있나요.

보통 운동을 많이 하고 틈틈이 그림을 배우러 다니고 있어요. 복싱을 4년 정도 했고, 작년에는 BC주 아마추어 복싱 대회에 나갔다가 1전 1패로 링에서 내려왔습니다. 세상에 강자는 많더군요. 하지만 복싱을 통해 3분 3라운드를 소화할 수 있는 체력을 얻었고, 몸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과 힘을 쓰는 원리를 배웠습니다. 덕분에 신체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어요.

Q. 앞으로 커리어적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요.

우선은 제가 몸담고 있는 테크니컬 어패럴(기능성 의류) 산업과 비즈니스를 더 깊이 있게 공부해보고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밴쿠버는 세계 기능성 의류 시장의 본고장이자 트렌드 세터잖아요. 룰루레몬과 아크테릭스의 글로벌 본사가 모두 이곳에 있죠. 이런 환경에서 실무 경험을 통해 얻는 시장 인사이트를 더 넓혀가고, 이를 개인적인 투자 활동에도 자연스럽게 접목해보고 싶어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제가 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인사이트를 주변과도 기꺼이 나누는 역할도 하고 싶습니다.

Q. 전공이 비주류라서, 혹은 이력이 남들과 달라서 고민하는 청년들이 많습니다. 후배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신다면.

제 개인적인 경험과 직관에 비추어 보면, 취업 시장에서 대부분의 지원자는 남들과 비슷한 스펙을 쌓고 평균적인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반대로 접근하는 것이 훨씬 경쟁력 있다고 봐요. 남들이 다 하는 평범한 스펙을 채우기보다, 본인이 확실히 잘할 수 있는 분야의 ‘스텟(능력치)’을 쌓는 것이 취업에 더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의 분야에서 전문적인 스킬을 쌓고 이력을 관리하다 보면, 타이밍 좋게 내 역량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기업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최희수 기자 chs@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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