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를 돕는 시민 단체가 징용 피해자들과 ‘일본 기업들에서 어떤 형태로든 돈을 받을 경우, 20%는 단체에 지급한다’는 내용의 약정을 11년 전에 맺은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피해자 유족이 최근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 해법을 수용해 판결금을 2억원 안팎 수령한 가운데, 해당 단체가 이 약정을 근거로 금액 지급을 요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22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 모임(이하 시민모임)’과 미쓰비시중공업(나고야) 징용 피해자 5명은 2012년 10월 23일 약정을 맺었다. 피해자들이 미쓰비시를 상대로 광주지법에 소송을 제기하기 하루 전이었다. A4 용지 2장짜리 약정서를 보면 “이 사건과 관련해 손해배상금·위자료·합의금 등 그 명칭을 불문하고 피고로부터 실제 지급받은 돈 중 20%에 해당하는 금액을 일제 피해자 인권 지원 사업, 역사적 기념사업 및 관련 공익 사업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모임에 교부한다”고 돼 있다.
이와 함께 미쓰비시가 법원 판결에 따라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더라도 피해자들이 아닌 수임인들이 우선 돈을 받아 20%를 지원 단체에 지급하도록 했다. “위임인들(피해자)은 수임인들이 피고로부터 직접 손해배상금을 지급받으면 정한 금액을 시민 모임에 직접 지급하는 것에 동의한다”고 돼 있다. 민변 출신으로 피해자들의 법률 대리인인 이상갑 변호사가 수임인 대표로 이름을 올렸다. 피해자들은 약정서에 도장 또는 지장(指章)을 찍어 동의를 표시했다.
피해자들과 약정을 맺은 시민 모임은 2009년 3월 만들어져 강제징용 문제 공론화, 피해자 후원과 소송 지원 같은 활동을 해왔다. 2021년 이 단체를 계승한 비영리법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출범했다. 이사장인 이국언씨는 오마이뉴스 광주·전남 주재 기자 출신으로 시민 모임 사무국장을 지냈다. 정부 해법에 반대하는 일부 피해자를 대신해 최근까지도 집회와 기자회견 등을 진행해 왔다.
지원 단체와 피해자들이 약정한 시점은 2012년 10월이다. 그해 5월 대법원이 “신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이 징용 피해자 9명에게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일제 식민 지배로 피해를 본 한국인이 일본 기업에 승소한 최초의 사법적 판단으로, 이후 각 지역에서 소송 제기를 위한 움직임이 활발했다. 약정서에 서명한 피해자들은 1992년 일본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최종 기각된 상태였다. 피해자들은 약정 체결 다음 날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2018년 11월 29일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면서 원고 일부 승소를 확정했다.
지원 단체가 교부를 약정하며 내세운 명목은 피해자 인권 지원 사업, 역사적 기념사업, 관련 공익 사업 등이다. “지급받은 돈을 정한 대로 사용하고, 위임인들이 생존해 있는 동안 매년 1회 그 구체적 사용 내역을 위임인들에게 통지하여야 한다”고 했다. 이상갑 변호사는 본지 통화에서 “금전적 배상을 받으면 여러 지원 단체 공익 변호사들의 활동 결과로 얻게 되는 건데 다른 공익 변론을 위한 재원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라며 “돈을 나누자는 취지가 아니다. 당사자들에게 다 설명했고 다들 흔쾌히 동의하셨다”고 했다. 이국언 이사장도 “약정서에 쓰여 있는 취지 그대로 이해하면 된다”고 했다.
다만, 이때 약정한 피해자 5명 중 3명이 세상을 떴다. 이런 가운데 유족 일부가 3월에 발표한 정부 해법에 찬성해 지난달 일제강제징용피해자지원재단에서 판결금 약 2억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소식통은 “이 때문에 지원 단체가 약정서를 근거로 판결금 교부를 요구할 수도 있다”고 했다. 정부 해법에는 반대하면서 판결금 중 일부를 요구할 경우 논란이 예상된다. 또 정부안에 반대해 내용증명까지 보낸 생존자 1명이 마음을 바꿀 것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지자 지원 단체가 수용 의사를 철회하라는 취지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 단체는 “이 싸움을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저희가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다만 이에 대해 지원 단체는 “피해 당사자들만의 외로운 싸움으로 놔두지 않으려는 논의가 있었을 뿐”이라며 반박했다.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김은중 기자의 다른 기사
(더보기.)
|
|
|
“송이·바질·참외 어떤 재료도 가능··· 김치는 창의적인 요리”
2025.11.14 (금)
53년 김치 노하우 담아 '별별김치' 펴낸 이하연 명인
이하연 김치 명인이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반값 김장 담그기’에서 갓 버무린 김장김치를 들어 보이고 있다. 그는 “50년 넘게 김치를 만들고 있지만 여전히 소꿉놀이처럼 즐겁다”며...
|
|
까도 까도 굴은 산더미처럼··· 5시간 작업해 0.5㎏ 1500원 벌었다
2025.11.07 (금)
초가을 제철 맞아 분주한 통영 박신장 굴 까기 체험
지난달 27일 경남 통영 용남면에 있는 굴 박신장에서 본지 조유미 기자가 껍데기 붙은 ‘각굴’을 까고 있다. 각굴은 까도 까도 쏟아졌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굴 껍데기와 씨름하다...
|
|
‘킬리만자로 표범’ ‘타타타’ 전국민의 노랫말 쓴 양인자
2025.11.03 (월)
400여 곡 쓴 양인자 작사가
양인자는 6년전 남편 김희갑과 함께 경기도 용인의 한 실버타운으로 왔다. “처음 방문했을 때도 가을이었는데 단풍이 작정하고 홀리더라”라고 했다. 사진을 찍던 날, 타운 내 단풍은...
|
|
“1조에도 안 판다··· 미쳤냐고? 한국 토종 AI 칩에 자신 있다”
2025.10.24 (금)
AI 칩 설계 토종 스타트업
퓨리오사AI 백준호 대표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에 있는 AI 칩 설계 스타트업 '퓨리오사AI' 서버실에서 백준호 대표가 자사 칩 제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 제품은 올해 말 TSMC에서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Furiosa.’ 스페인어·이탈리아어·포르투갈어로 ‘격노한’...
|
|
韓 방문 외국인, 해외 신용카드로 버스 탄다
2025.10.16 (목)
지하철 1~8호선은 2027년 도입
2030년엔 수도권 전역 사용 목표 수수료·환승 할인 등 숙제 산더미
내년부터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해외에서 발급받은 신용카드로 시내버스를 탈 수 있게 된다. 또 2030년에는 수도권 버스와 지하철 모두 신용카드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서울시는 16일 이 같은 내용의 ‘오픈 루프(open loop)’ 대중교통 결제...
|
|
‘선비 지조의 상징’ 한국의 갓··· 140년 5대째 만듭니다
2025.10.03 (금)
중요무형문화재 4호 갓일 입자장 박창영 父子
갓일 명가는 4대째 박창영 선생에게서 5대째 박형박 이수자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부자 앞에 놓인 완성 단계인 갓 가격이 2000만원 정도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저 검은 모자에 완전...
|
|
‘오픈런’ 하는 국립중앙박물관, 세계 톱5 꿈 아니다
2025.09.19 (금)
연 관람객 500만명 돌파 전망
국립중앙박물관 인기 비결 5
일요일이던 지난 14일 관람객 수백 명이 국립중앙박물관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다. 이제 ‘오픈런’은 국중박에서 일상이 됐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객원기자지난 14일 오전 9시 30분 서울...
|
|
한국인은 더 빨리 늙는다? 노화 앞당긴 뜻밖의 요인
2025.09.03 (수)
▲/Getty Images Bank거주하는 국가에 따라 노화 속도가 다르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회적 불평등, 정치적 불안정, 대기 오염 등이 인간의 노화를 앞당기는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미국...
|
|
식당 일 하기 싫다고 울던 소년 여경래, 50년 뒤 中食 거장이 됐다
2025.08.29 (금)
요리 경력 50주년 맞은
중식 요리사 여경래
여경래 셰프는 “본래 ‘칼판’(재료 손질 담당) 출신이지만, 방송에서 ‘불판’(웍으로 음식을 만드는 파트)만 나오는 걸 보고 웍 다루는 법을 배웠다”며 “칼판과 불판 양쪽을 알았기...
|
|
“한국 사랑한 안동의 사위, 南北을 시원하게 달렸죠”
2025.08.22 (금)
한반도 스페셜리스트 32년
콜린 크룩스 주한영국대사
콜린 크룩스 대사가 서울 중구 주한영국대사관저 앞마당에서 영국의 사랑스러운 곰 '패딩턴'처럼 포즈를 취했다. 유니언잭이 그려진 우산은 대사 부인 김영기씨가 "이걸 들면 어떻겠냐"며...
|
|
카톡, 내달부터 인스타그램처럼 바뀐다
2025.08.19 (화)
초기 화면 ‘친구 탭’ 변화
카카오가 다음 달부터 카카오톡 초기 화면인 ‘친구’ 탭을 인스타그램처럼 바꾼다. 지금은 전화번호부 형식으로 가나다순으로 이름을 보여주는 ‘나열식’ 형태지만 앞으로는 친구로...
|
|
이재명 대선 승리 “대통령 책임은 국민 통합”
2025.06.03 (화)
제21대 대선에서 승리··· 3년 만에 정권 교체
행정·입법부 절대 우위, 사법부도 영향권에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무대에 올라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첫째, 내란을 확실히 극복하고 다시는 군사 쿠데타가 없게 하겠다....
|
|
中·홍콩·태국 코로나 확산···한국도 위험한 3가지 징후
2025.05.21 (수)
교류 많은 중화권·동남아서 증가세
재접종률 낮고 냉방에 환기도 줄어
중국·홍콩·대만 등 중화권과 태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급속히 번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코로나 확산세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감염병 전문가들은 “7~8월이 되면 재유행할...
|
|
6월 3일 대선 유력··· 60일 레이스 시작됐다
2025.04.04 (금)
선관위, 예비후보자 등록 시작
韓대행 8일 선거일정 확정할 듯
▲헌법재판소가 4일 재판관 8명 전원 일치로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했다. 문형배(왼쪽에서 다섯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선고 요지를 읽고 있다. 왼쪽부터...
|
|
헌재, 尹 대통령 탄핵 결정···전원일치 인용
2025.04.03 (목)
5개 탄핵 사유 모두 인정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위해 헌법재판관들이 입장하고 있다./김지호 기자헌법재판소가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을 헌법재판관 8명...
|
|
尹대통령 구속··· 법원 "증거 인멸 우려"
2025.01.18 (토)
현직 대통령 구속, 헌정 역사상 최초
지난 15일 헌정 사상 처음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조사를 받은 후 경호처 차량을 타고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장련성...
|
|
법원 "尹대통령 체포, 문제 없다"··· 체포적부심 기각
2025.01.16 (목)
공수처에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밤 경기도 과천 공수처에서 조사를 마치고 경호 차량에 탑승해 서울 구치소로 가고 있다. 2025.1.15 / 장련성 기자윤석열 대통령이...
|
|
尹 10시간여 공수처 조사 종료··· 서울구치소에 구금
2025.01.15 (수)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오후 경기 과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서 조사를 마치고 차량으로 서울구치소로 이동하고 있다./장련성 기자윤석열 대통령에...
|
|
법원, '내란 혐의'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발부··· 현직 처음
2024.12.30 (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법원이 ‘12·3 비상계엄’ 사태로 수사 받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
|
韓대행 탄핵안 본회의 통과··· 초유의 '대행의 대행' 체제로
2024.12.27 (금)
헌정사 첫 대통령·대행 연속 탄핵소추
찬성 192표로 가결... 與 "원천 무효"
27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에 대해 우원식 국회의장은 한 권한대행 탄핵소추안 가결 요건을 151석으로 정했다. /국회방송한덕수...
|
|
|










김은중 기자의 다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