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이민 온 나에게 주어진 숙제, 그 무게를 말하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5-05-08 13:13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4 한국전통예술원 한창현 원장
고된 길인 줄 뻔히 알면서도 행군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연극 무대만을 동경하는 무명의 배우, 팔리지 않을 시집에 애착을 보이는 시인, 쾨쾨한 냄새가 배어있는 작업실과 연애 거는 화가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세상의 일방적인 찬사에 결코 익숙하지 않다. 오히려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될 때도 있다. 그런데도 행로를 바꾸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한국전통예술원의 한창현 원장(사진) 역시 그들 중 한 명이다.




사진 제공=한국전통예술원




이것이 진짜, 한국전통문화의 참맛

한창현 원장의 인생은 한국의 전통 탈과 춤 그리고 음악이 어우러지는 산대놀이와 함께였다. 아마도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부친은 송파산대놀이(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49호) 인간문화재 고(故) 한유성 선생이다.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길을 걸었다. 삶의 터전을 이곳 밴쿠버로 옮긴 후에도 그 길은 사라지지 않았다. 정확히 15년 전 낯선 땅 밴쿠버에 한국전통예술원을 세웠는데, 그 이유는 뻔했다. 한국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한 원장의 이 소원은 2년에 한번씩 무대를 통해 이곳 사회에 알려져 왔다. 그는 지금 오는 6월 11일(목) 오후 7시 30분 노스밴쿠버 센테니얼극장(Centennial Theatre)에서 열릴 공연을 앞두고 있다.


어떤 사람들이 이번 무대에 오를 예정인가요?
매번 공연을 준비할 때마다 한국 전통문화의 진수를 보여주자고 다짐합니다. “진짜”를 경험해야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쉽게 실감할 수 있을테니까요. 이번에도 그런 생각으로 무대를 채울 생각입니다. 우선 김덕수씨의 최초 제자로 꾸려진 “사물광대”(팀의 이름이 사물광대다)가 흥을 돋을 겁니다. 이후에는 산대놀이와 살품이춤 등을 차례로 소개할 계획이에요.

사물놀이에 대해선 독자들 대부분이 알고 있을 테지만, 산대놀이는 약간 낯선 감이 있습니다. (국어사전은 산대놀이를 “탈을 쓴 광대가 산대에서 풍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재담을 하는 가면극”라고 정의한다.)
탈춤을 생각하면 친숙하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탈춤은 고려시대 말에 시작됐다고 해요. 태조 이성계가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면서 이곳저곳에 탈춤을 만들었다는 설도 있어요. 탈춤을 추면 잡귀가 한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어찌됐건 송파, 양주, 노량진, 애오개 등 각 지역의 이름을 딴 산대놀이가 생겨났죠. 지금까지 제대로 맥이 이어지고 있는 건 송파 산대놀이와 양주 별산대놀이가 전부지만요.

그 중에서 송파 산대놀이의 인기는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송파에서 장이 서면, 산대놀이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다른 산대놀이패와의 교류도 활발했던 시절이었지요. 그러다가 1925년 대홍수가 나면서 산대놀이가 쇠퇴의 길을 걷게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네요. 그 많던 산대놀이가 단 두개만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도 그렇고….
그렇죠. 하지만 희망은 있어요. 복원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거든요. 이번 무대에 초대될 송파 산대놀이 이수자들이 이미 몇 년 전부터 애오개 산대놀이를 재현하려고 애써 왔습니다.

6월 공연에서 그 결과를 볼 수 있을까요?
예, 맞습니다. 애오개 산대놀이의 두 마당이 무대에 오르게 되고, 나머지 마당은 송파 산대놀이의 “취발이마당”이 될 겁니다.




사진 제공=한국전통예술원  




주저앉을 순 없어요, 제가 가야 할 길이니까

그 내용이 궁금한데요.
송파 산대놀이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직접 출연하니까요. 원래 산대놀이라는 게 해학을 그 밑바탕에 두고 있어요. 파계한 승려나 양반에 대한 풍자가 특히 송파 산대놀이의 주된 내용이지요. 취발이마당은 자신이 모시던 노승을 마구 혼내주는 취발이의 모습을 담았어요. 이 승려가 술과 여자를 가까이 하게 됐다는 게 취발이가 성난 이유였죠. 직접 보시면 산대놀이의 해학과 흥을 체감할 수 있을 겁니다.

그 흥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선 소리, 그러니까 음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밴쿠버에서는 이것이 실현되기 좀 어려워 보입니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부분에도 많은 공을 들였거든요.송파 산대놀이 이수자 여덟 명과 함께 다섯 명의 악사가 한국에서 초대됐습니다. 장고, 대금, 해금, 피리 등 구색이 완벽히 갖추어진 상태에요.

“사물광대”까지 합치면 얼핏 봐도 스무 명 가까운 인원이 한국에서 초대되는 건데, 관련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좀 힘들지만 어쩌겠어요. 제가 해야 할 일인 걸요. 우여곡절 끝에 항공료 지원은 받았지만, 나머지는 저희가 다 알아서 처리해야 할 상황입니다.

지난해 한국 정부로부터 해외 명예전승자로 지정되지 않았습니까? 당시 이에 따른 지원이 있을 거라는 발표가 나온 바 있습니다. 그래서 케이팝 뿐 아니라 전통문화에 대한 정부 지원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는데요. 실제로는 예전과 별 차이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주무 부처인 한국의 문화체육관광부에 도움을 구했더랬어요. 하지만 해외 명예전승자에 대한 경제적 지원은 없다는 답변만 들었습니다. 말 그대로 그냥 “명예”인 것 뿐이지요. 그 점이 좀 씁쓸했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공연을 꾸릴 계획인가요? 지원이 없다면 힘들텐데….
우선 여성 출연진은 저희에서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어요. 나머지 사람들은 호텔에서 지내야 하는데, 거기에 대한 부담이 있긴 하죠. 하지만 예전 공연 때와 마찬가지로 그저 다 잘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식상한 질문일 테지만, 돈도 안 되는 일에 왜 이리 집착하세요?
나이 들어서도 연극 무대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돈도 명예도 기대하기 힘들지만, 그 일을 계속하는 사람들. 저도 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선 제가 하는 일이 너무 좋고, 선친이 했던 일을 이어가야 한다는 의무, 캐나다 사회에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도 있습니다.

한인 2세들도 한국 전통문화를 접할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그런 의견도 많습니다.
저도 같은 바람이에요.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것은 다문화사회인 캐나다에서는 큰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 문화가 우수하다는 인식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겠지요. 


그 우수성을 보여주겠다는 것이 한 원장의 다부진 각오다. 이번 공연은 광복 70주년과 한국전통예술원 창단 15주년 등을 기념해 오는 6월 11일(목) 오후 7시 30분 노스밴쿠버 센테니얼 극장(Centennial Theatre. 2300 Lonsdale Ave. North Vancouver.)에서 열린다. 출연진은 송파 산대놀이 이수자와 사물광대 등으로, 이들은 한국 전통문화의 진수를 이곳 밴쿠버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입장권은 노스밴쿠버 라슨마켓, 버나비 오늘의 책, 다운타운 덴만 마켓에서 미리 살 수 있다. 한국어 학교 학생들의 단체 관람 문의도 기다리고 있다. 입장료 20달러, 15인 이상 단체 15달러. 문의 한국전통예술원 (604)790 -8762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사진 제공=한국전통예술원



사진제공=한국전통예술원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11 밴쿠버에서 사제 서품 받은 구장한 신부
한때 그는 세상의 기준에 맞는 성공을 원했다. 빠른 속도로 저축 잔고를 늘리고 싶었고, 은퇴 후에는 세계 곳곳을 한적하게 여행하는 삶을 꿈꿨다. 그는 이 목표대로 충실히 살아왔다....
"지금도 몸이 떨려..." 연평도 포격의 영웅, 해병대 정상헌씨
2010년 11월 23일. 조용하고 한적하던 대한민국 서해의 작은 섬 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졌다. 갑작스런 북한의 포격으로 군인은 물론이고 민간인 사상자까지 발생한 처참한 사건이었다....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10, 6·25참전유공자회, 박영길옹
전쟁의 참혹함을 기억하는 건 그의 몸이었다. 60년도 더 지난 일인데 그는 그 때의 혈투를 떠올리면 여전히 구역질이 난다고 했다. 세월도 그의 상처를 온전히 보듬지 못한 것이다. 전쟁...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9 김지한·수 김 부부
이민의 목적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그 내용은 대개 “다름”과 “싶음”으로 간단하게 정리되곤 한다. “각박함을 벗어나 뭔가 다른 삶을 살고...
"돈은 잃어도 친구는 못 잃어" 고교 동창과 17년째 동업, 고승범씨
랭리의 유명 아이스크림 전문업체 배스킨라빈스(Baskin Robbins). 프레이저 하이웨이(Fraser Hwy.)를 지나가면 특유의 화사한 분홍색 간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이 가게가 관심을 끄는 더...
모두미술인협회 고요한·김희정 화가 부부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8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내 마음 속 세계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화폭에 옮기고 싶었다. 그래서 이민을 결심했다. 낯선 땅에서라면 작품 활동에 더욱...
모텔운영 9년차 베테랑의 여유가 묻어나는 이중헌씨
1999년 밴쿠버로 이민 온 이중헌(58)씨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사업가다. 20년 가까이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했던 이씨는 바쁜 일상에 가족과 사이가 멀어지자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7
몇몇 이민자들에게 있어 캐나다는 때론 외사랑의 대상이다. 자신의 애타는 마음을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어서다. 이처럼 침묵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민자가 캐나다와 연애할 가능성은...
"서커스할 때 살아있음 느껴요"
짙은 어둠 속에서 작지만 단단한 체격의 청년이 저글링 연습에 한창이다.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간간이 보이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유독 눈에 띈다. 태양의 서커스...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6 늘산 박병준
2015년은 그에게 밴쿠버에 정착한 지 정확히 만 40년이 되는 해다. 그 세월과 함께 어느새 팔순을 앞두게 된 그는 예전과 지금의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 무덤덤하게 고백한다. 우선...
에버그린컵 18세 이하 男단식 우승
미래의 테니스 황제를 꿈꾸는 한인 유망주가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은 버나비 알파고등학교(Alpha Secondary School) 9학년에 재학 중인 앤드류 오(한국명 오승환·15)군. 오군은 지난 15일부터...
“내게 주어진 시간은 모두 내 것이다”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5
몇몇 처세술 책들의 주장처럼 성공을 위한 공식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람마다 성공에 대한 정의가 제각각인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 친구 딸이...
웨스트젯 인턴 사원 이동근씨
밴쿠버 국제공항에서 항공권을 발권하는 고객들을 도와주는 말끔한 차림의 한국인 남성이 눈길을 끈다. 주인공은 웨스트젯(WestJet) 인턴 사원 이동근(26)씨. 이씨의 부드러운 말투와 친절한...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4 한국전통예술원 한창현 원장
고된 길인 줄 뻔히 알면서도 행군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연극 무대만을 동경하는 무명의 배우, 팔리지 않을 시집에 애착을 보이는 시인, 쾨쾨한 냄새가 배어있는 작업실과 연애...
친절한 미소가 아름다운 바틀디포 김병수씨
버나비 메트로타운 인근 바틀디포(Bottle Depot) 가게. 가게 안을 들어서자 특유의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더러운 빈병들 사이에서 시종일관 웃으며 구슬땀을 흘리는 이가 눈에 띤다....
외국인도 인정한 빵맛, 빠리아저씨 임종주씨
버나비 노스로드(North Rd.) 한인 상가에 빠리아저씨가 산다. 올해로 5년째 이곳에서 빵집을 운영하고 있는 임종주씨(62)가 바로 빠리아저씨다.빠리아저씨 빵집에서는 매일 새벽 4시가 되면 빵...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3 “운동이 보약, 피클볼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운동은 이름난 보약이다. 이미 그 약효를 경험한 사람들의 증언만 봐도 그렇다. 운동으로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묵은 때를 벗겨낸 듯한 개운함을 느낄 수 있다고, 트랙 위의 사람들은 막힘...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2 바이올린 연주자 겸 동요 작곡가 박혜정씨
순탄대로만 걸어왔다는 고백은 흔치 않다. 세간의 부러움을 사는 누군가의 삶 속에서도 크고 작은 걸림돌을 찾아보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성공했다는 혹은 그런대로 잘...
20대 청년사업가 김진기 정진트레이드 대표
학창시절 겁 없이 뛰어든 인형 판매. 호기심에 처음 시작한 일이 10여년이 지나면서 어엿한 직업이 됐다. 정진트레이드(JungJin Trade) 김진기(29) 대표. 김 대표는 올해로 벌써 13년째...
요들송의 대가, 김홍철
써리에 위치한 성 김대건 천주교회 부설 대건문화센터는 “문화센터”라고 불리기에 전혀 민망하지 않은 장소다. 그 이유는 이 곳이 진행 중인 혹은 진행할 예정인 프로그램만 슬쩍 봐도...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