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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온 것 후회는 없어요, 앞으로가 더 중요하니까…”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5-04-24 12:34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2 바이올린 연주자 겸 동요 작곡가 박혜정씨
순탄대로만 걸어왔다는 고백은 흔치 않다. 세간의 부러움을 사는 누군가의 삶 속에서도 크고 작은 걸림돌을 찾아보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성공했다는 혹은 그런대로 잘 살아왔다는 사람들의 삶을 보면, 중요한 건 난관과 맞부딪힌 이후인듯 보인다. 도덕 교과서 혹은 처세술 책에서나 나올 법한 식상한 얘기겠지만, 고비를 만난 다음의 태도에 따라 한 사람의 삶이 유쾌해질 수도 혹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박혜정씨와 차 한 잔을 함께하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아이들의 눈높이를 이해하려 했다”
박혜정씨는 즐거운 사람이다. 사람들로 붐비는 자리에서도 그녀의 웃음소리 만큼은 선명하게 들린다. 자신이 누구인지 바로 확인시켜줄 수 있는, 마치 신분증처럼 사용할 수 있는 그런 웃음소리다.

이처럼 에너지가 넘치다 보니, 하고 싶은 일들도, 남들에 비해 월등히 잘하게 된 일들도 많아진 모양이다. 박혜정씨는 여러 직함이 있다. 이화여자대학교와 대학원에서 각각 바이올린과 음악교육을 전공한 그녀는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레슨 교사로 활동 중이다. 불가리아 소피아 국립음악원에서 지휘를 공부했던 그녀는 한국에서부터 아동과 청소년들을 위한 오케스트라를 꾸려왔고, 현재는 밴쿠버 뮤즈청소년 교향악단의 단장이다. 그녀를 소개하느라 호흡이 좀 가쁘긴 하지만 한 가지 더 언급할 게 있다. 그녀는 동요 작사·작곡가다. 1985년 MBC 창작동요제가 아이들 노래의 창작자로서 가진 첫 무대였다. <구름에 꿈을 싣고>, <크레파스의 꿈> 등이 박혜정씨의 곡이다.









이력이 다양합니다. 바쁘게만 살아왔다는 느낌이 드는데, 혹시 휴식을 위해 캐나다 이민을 결심하게 된 건가요? (그녀는 한반도 남쪽이 “대~한민국”이라는 함성으로 흔들렸던 2002년 월드컵 당시 밴쿠버에서의 삶을 선택했다고 했다.)

이민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을 때였어요. 상투적인 말이지만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들 하잖아요. 친한 친구 한 명이 뉴질랜드 이민을 계획 중이었는데, 그 친구와 함께 이주 대행업체를 찾았다가 바로 그 자리에서 캐나다 이민을 신청하게 됐어요. 그곳 직원 말이 제 경우엔 뉴질랜드보다는 캐나다 이민이 더 수월할 거라고 해서…. 어쨌든 그 말이 틀리진 않은 모양이에요. 서류 접수한 지 반 년도 채 안돼 영주권이 나왔거든요.

얼떨결에 이민 온 셈이군요. 준비할 겨를이 없었겠어요. 이민가서는 이렇게 살아야겠다 혹은 저렇게 살아야겠다,  뭐 이런 식의 생각을 보통은 다들 하잖아요. 
그랬지요. 이민 신청했으니 답사나 한번 갔다 와 볼까… 그렇게 마음 먹고 있던 차에 모든 일이 결정되어 버린 셈이니까요.

아무런 계획 없이 온 이민이라…, 처음엔 꽤 심심했을 것 같습니다.
아니요, 전혀요. 제가 성격상 가만히 있질 못해요. 뭐라도 해야지요. 말 그대로 오자마자 아이들을 가르칠 기회를 갖게 됐습니다. 나중에는 오케스트라로 꾸려졌는데, 그건 원래부터 제가 관심을 갖던 일이었어요.

한국에 있을 때부터요?  청소년 오케스트라에 눈을 돌리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성남시에서 공연을 하던 때였어요. 연주 중이었는데 객석에 있던 몇몇 아이들이 뛰어다니더군요. 그게 제 눈에 보였어요. 당시만 해도 놀랄만한 일이었지요. 클래식은 엄숙해야만 한다, 라는 의견에 다들 수긍하던 때였으니까요. 어찌됐건 그때 생각했어요. 아이들 눈높이에서 클래식을 해석하고, 아이들 스스로 연주의 기쁨을 맛보게 할 그런 방법은 없을까…. 
(그 고민의 결과가 성남청소년교향악단이었고, 지금의 밴쿠버 뮤즈 청소년교향악단이다.)



“이민 온 것, 후회한 적은 없었나요?”

조심스러운 질문인데요. 음악만으로는 생계를 꾸리기가 좀 어려웠을 것 같아요. 한국에서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렇지요. 그래서 돈되는 일을 한번 시작해 봤지요. 결과적으로는 살림에 큰 보탬이 되지 않았지만.

어떤 일이었죠?
카페였어요. 음악가가 연주할 수 있는, 화가가 자신의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있는 카페를 운영했어요. 일종의 문화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오래 버티진 못했어요. 채산이 맞지 않았거든요.

실패했다는 건데… 그런 얘기를 너무 담담하게 하는 것 아닌가요?
지나간 일이잖아요. 저는 지난 일을 붙들고 후회하거나 탄식하거나 그러지 않아요. 누군가 내게 상처를 입혔다 해도, 그걸 끄집어 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앞으로가 훨씬 중요한 거니까요.

긍정의 힘, 뭐 이런 건가요? 지금 사는 삶에 대한 일종의 불만 같은 것도 전혀 없다는 얘긴가요?
저 같은 경우엔 불만이라기보다는 제가 넘어야 할 어떤 벽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 자신에 대한 냉정한 평가일 수도 있는데, 밴쿠버에서 음악을 하다 보면 내가 주변인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가끔 갖곤 해요. 내가 속한 지역사회에 내가 온전히 헌신하고 있는지, 내 모습이 과연 그런지… 아직도 이런 고민은 하고 있습니다.

교육 분야에 남다른 관심이 있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그럼요. 한국에서부터 아이들을 가르쳐 왔으니까요. 지금은 2학년에서 7학년 한인 학생을 대상으로 합창단을 한번 꾸려볼까 구상 중이에요. 노래를 통해 한국의 언어나 정서 등을 자연스럽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죠. 물론 바이올린도 더 열심히 가르쳐야겠지요. 
(박혜정씨의 독특한 레슨 방식은 꽤 유명하다. 자신이 직접 교본을 만들고 그것이 시중에 출판됐을 만큼 그녀는 가르치는 일에 남다른 열정을 보여 왔다.)

마지막 질문이에요. 당연히 “아니오”라고 할 것 같지만 그래도 물어볼께요. 이민 온 것 후회한 적은 없었나요?
음… 글쎄요. 앞서 얘기한대로 전 과거에 연연하진 않아요. 후회 같은 것도 잘하지 않지요. 제 아이들도 잘 자라줬다고 생각하고, 남편도 저도 열심히 살고 있다고 자부해요. (박혜정씨의 큰 아이가 밴쿠버에 정착한 건 고등학교 때. 그전까지 공부와는 그닥 친하지 않았다는데, 이곳 학교생활에는 완벽히 적응했다. 그리고 지금은 미국 LA에서 치과의사로 일하고 있다. 둘째는 UBC에서 오보에를 전공한 음악인이다.) 그런데 뭔가 부족함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아까 얘기한 대로, 지역사회에 내가 깊숙히 뿌리 내리고 있는지 그런 고민을 할 때에요. 지역사회에 헌신하기, 이건 제게 주어진 어떤 숙제 같은 느낌이에요. 이 숙제를 해내기 위해서라도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용준 기자 myj@vanchso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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