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최종수정 : 2024-03-08 10:45

최민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전지를 갈아 끼워도 가지 않는 손목시계처럼 그는 그렇게 그녀라는 위에 멈추어 있다그녀와 관련된 기억들이 그에게는 여전히 아프고 쓰리다이별의 모서리는 언제나 날카로워 돌아볼 때마다 마음이 베이지만 그녀라는 모퉁이를 통과하지 않고 우회하는 길을 알지 못한다 하였다진한 눈썹둥근 이마상큼하면서도 허스키한 탄산수 음색이 생각나 아직도 심장이 떨어져 내린다 하였다.

 

사람을 그리워할 그의 공간은 시간 속으로 압축된다아니 확장된다공간을 함께 누릴 없는 이들에게는 시간만이 공존의 장소가 된다 안의 허깨비에 끌려 다니느라 발짝도 전진하지 못하는 시간그리움이란 부재가 존재를 물어뜯는 상황이다부재하는 현존이고 현존하는 부재다태어나는 족족 새끼들을 삼켜버리는 신화 크로노스처럼 현재는 미래를 잡아먹고 과거는 현재를 끌어내리지만 시간의 지층을 뚫고 역습해 오는 과거는 현재를 일거에 돌파하고 미래까지 인질로 붙잡아 버린다.

 

그리움은 전신증후군이다살아 있음의 감각을 통증으로 일깨워 주는 풍크툼(punctum) 같은 그것은 기다림과 원망욕망과 체념의 착종 위에서 허열虛熱처럼 피고 지는 난폭한 열정이다 닿지 않는 몸속 어디감각세포와 신경줄을 이따금씩 교란하는 존재의 빗장뼈다실체는 밖으로 진즉 걸어 나갔는데 보이지 않는 그림자를 붙들고 헛되이 스파링하는 새도 복서의 시끄러운 침묵이다.

 

기억과 상상 속을 종횡무진 오가며 그는 그녀의 부재를 견딘다어떤 대체재도 소용이 없다무명無明과 번뇌 속에서 일어서다 주저앉다 그렇게 반생을 건너왔다 했다화분에 심어둔 꽃처럼 결박 당한 시간들그립다는 말은 서럽다는 말과 이음동의어異音同意語일까돌아서는 어깨가 나무 같았다이미 지난 시간들이 현재의 멱살을 쥐고 발목을 걸고 넘어뜨리는그리움의 존재 저편의 불수의근이다오직 인간만이 시간의 이빨자국에 피를 흘리고 환상의 뱀에게 살이 뜯기어 나아가지 못하고 뒷걸음질 친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수영복 입은 일기 2023.11.01 (수)
누군가 묻는다. 일기와 수필의 차이점은 무엇이냐고. 누군가 대답한다. 일기는 나만간직하고, 나만 읽을 수 있어 화장기 없는 민 낯이거나 발가벗은 나체이어도 괜찮다. 하지만수필은 남 앞에 서는 것이기에 나체의 일기에 수영복 정도 입혀 놓은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 양수에서 맨몸으로 살다, 세상에 태어나 강 보에 싸이고, 배냇저고리에서수의까지, 우리는 사는 동안 수많은 옷을 입는다. 내가 살면서 입었던 옷 중 제일 불편했던것이 정장...
허정희
풀잎처럼 살다 간 삶도 있고파도치는 외딴 바위에서홀로 외로이 살다가는 독수리처럼홀로인 삶도 있다 파도가 주름진 얼굴로바닷가에 도착하면먹으려는 새와살려고 온 힘을 다하는 물고기처럼불빛이 새어 나오는 밴쿠버 공항엔밤조차 잊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깨가 아프다고 말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말도 하지 못하고 집도 없이 집시처럼 떠도는 철새의 날개가노을 빛에 더 어둡다 어둠이 짙게 드리운 길 위를 가는...
전재민
텀블러 2023.10.23 (월)
원래넘어지는 게 정상이다날 때부터 꼿꼿이 제 발로 서는 사람은 없다어머니는 나더러 아기 적 내려놓기만 하면울음을 쏟아냈다 한다 수없이 넘어지고 굴러가며 쏟아지고 비워지고 다시 채워져 진화한 것이다 마침내 태어날 때 약하고 단순하던 홀로 서지도 못하던 그 존재는 이미 희미할 뿐 수 없이 넘어지고또 일어나며 해온 수련은 나를 단단하게 변신시켰다 뜨거운 것은 뜨거운 대로차가운 것은 차가운...
이인숙
   지난 9월 한달 여를 근 7년만에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모처럼 고국 나들이 길에 설레임과 좋은 추억들도 많았지만, 돌아와 생각해보니 가장 힘들었던 것을 꼽아보자면 단연 ‘키오스크’와의 독대(獨對)하는 시간들이었다.  팬데믹 이후 가급적 대면접촉을 피해야하고, 그만큼 인건비와 업무 부담도 줄일 수 있기에도입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순간순간 여행의 발목을 잡아오는 키오스크 복병의 매복과 공격에...
민완기
소통의 변화 2023.10.23 (월)
이상한 꿈을 꿨다. 지금도 팔과 몸 여기저기가 결린다. 꿈에서 내 방이 하나 더 새로 생겼다. 그때는 꿈인지도 몰랐다. 방 안쪽에 못 보던 문이 하나 더 있길래 살짝 열어봤더니 원래의 내 방만한 공간이 또 하나 안으로 펼쳐져 있는 게 아닌가? 그러지 않아도 집이 점점 좁아져서 고민이었는데 또 하나의 내방공간이 새로 생겼으니 이게 무슨 횡재인가? 근데 가만. 이방을 뭘로 쓰지? 나만의 서재로? 아님 응접실? 작업실? 실험실? 영화감상실?...
예종희
갈 참 냄새 2023.10.23 (월)
아버지는 우리 지붕이었다항상 지붕아래 튼튼한 울타리로 계셨다아버지 옆에 앉아 있으면갈 참향기로 다가오셨다 겨드랑이 사이사이를 이어주는 수많은 날들로열매 맺는 갈참나무로 사시며내 안에 너, 네 안에 나무 한 그루따순 숨소리 다발 묶어 등짐 지고우리들 마음에 갈참나무로 뿌리내려 사셨다 이제는 동그마니 바람으로 숨소리 내는억새가 하얀 손 사례 치는 언덕에갈 참냄새가 나는 아버지 집이 있다
강애나
한글나무 2023.10.16 (월)
어느 날 오후언어로 표현하는그대 삶의 모든 편린들이 노래로 불려질 때우리의 꿈나무에게 내림굿판을 벌여야 하지 않을까.우리는 밝힐 수 있으리라.글을 가진 세종의 자손이라는 자랑스런 핏줄들을.우리들은 쓰러진 글자를 일으켜 세우고 틀린 글자를 고치면서언어를 잃지 않는 작업이 얼마나 큰 노동이 될 것이라는 것을외면할 수는 없다.완전을 추구하는 새로운 사회라도 더불어 살면서지조 없는 슬픈 역사를 만들어 갈 수는 없으며마주보는...
송요상
    주방영양학 교실 독자님들, 평안하시지요? 주방 영양학 교실, 심 박사가 안부 드립니다."당신이 먹는 것이 바로 당신이다(You are what you eat)"라는 속담을 아직 기억하시지요? 1825년, 프랑스의 미식가 브릴라 - 사바랭 씨는 그의 걸작 『미각의 생리학』(Physiology of Taste)라는 저서에, "네가 무엇을 먹는지 말해 주면 네가 누구인지 말해 줄게"라는 말에서 시작됐습니다. 이 주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심정석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