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황혼의 찬미

이종구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4-01-22 11:34

이종구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J 에게,

엊그제 이민 온 것 같은데 어언 30년이 훌쩍 지나고 이제는 성숙한 디아스포라의 길을 가고 있는 중이네. 내 인생에도 황혼의 자유가 찾아온 셈일세.

자네가 보내 준 ‘황혼의 자유’ 라는 글 속에 보면 나이가 들어가면 노숙해지는 것도 있어 참 좋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글픈 일도 있다네. 오미크론이 지난 이즈음 아는 목사님의 거동이 불편한 모습을 보면서……

그렇지만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고, 웃고 싶으면 웃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느낄 때가 되어있지 않았나 싶네. 은퇴 이후가 아니면 어찌 누릴 수 있으리. 일하기 싫으면 놀고, 놀기 싫으면 일하고, 머물기 싫으면 떠나고 떠나기 싫으면 머물고, 바람처럼 살 수 있는 이 행복한 자유가 노년이 아니면 어찌 맛보리오. 그러나 맞벌이 부부로 생활하는 딸이 바쁘니 손자 좀 봐 달라 부탁이 있으면 그것은 예외가 될 것일세.

이제 나도 계절로 치면 가을이라 풍성한 수확의 계절이고, 하루로 치면 아름다운 석양쯤에 있는데 여기서 무얼 더 바라겠는가? 그렇지만 2년간 내가 돌본 외손자 대학가는 대견스런 모습을 보는 것도 보아야 나의 기쁨의 일면이 되는 것이지.

이제 즐거워지는 나이일세. 더 나이 들기 전에 울긋불긋 봄꽃 보러 배낭 하나 둘러메고 산에도 가고, 절친들과 바다도 가보고, 옛 동아리 친구 내외와 식사도 하고, 해외여행도 같이 가고, 이것 또한 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온 것이 공자가 말한 군자의 한가지 즐거움이 아니던가? 아, 노년의 나들이가 참 좋아지네. 모처럼 고국을 방문하니 조카가 외삼촌 왔다고 일류호텔에서 식사도 사주고, 청평 근처 좋은 찻집도 구경시켜 주고(한옥에 옛 장독이 많은), 시루떡과 커피도 사주니 이 또한 노년의 즐거움이 아니던가? 어찌했든 멋지게 살다가 훌훌 털고 미련없이 살다 가는 것이 최상의 낙이 아니겠는가.

아, 석양의 황금빛이여, 황혼의 영광이여! 이를 위해 무슨 때가(결혼기념일, 배우자 생일날, 금혼식 등)되면 가고 싶은 곳에 떠나가야 하지 않을까?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고운 빛깔로 익어가는 홍시 같은 그런 황혼으로!

현명하고 명랑한 노인이 되라는 중국의 저명한 작가이며 수필가인 임어당이 얘기한 대로 죽으면서 “세상 구경 한번 잘했다”라고 말하며……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황혼의 찬미 2024.01.22 (월)
J 에게,엊그제 이민 온 것 같은데 어언 30년이 훌쩍 지나고 이제는 성숙한 디아스포라의 길을 가고 있는 중이네. 내 인생에도 황혼의 자유가 찾아온 셈일세.자네가 보내 준 ‘황혼의 자유’ 라는 글 속에 보면 나이가 들어가면 노숙해지는 것도 있어 참 좋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글픈 일도 있다네. 오미크론이 지난 이즈음 아는 목사님의 거동이 불편한 모습을 보면서……그렇지만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고, 웃고 싶으면 웃고 내...
이종구
명상을 통한 단상 2023.01.23 (월)
새해 들어서 무언가 계속 실행하고 싶은 계획이 있다면 오래전에 가끔 시도했던 명상이다. 하루에 한 10분이라도 명상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경우에는 신체적 통증을 완화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한데 불교에서의 참선이며 천주교에서 얘기하는 향심기도의 기본자세이다.  나는 인간의 발달단계를 생각해 보았다.  스위스의 발달심리학자인 장.피아제의 인지발달이론을 말하지 않아도 사람은 출생해서 영아.유아기를...
이종구
속이 빈 조가비 2022.09.19 (월)
  최근에 읽은 프랑스 소설 ‘안남’(安南)을 읽고 종교와 인간에 대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이 소설의 원저자는 크리스토프 바타유이고, 이 책을 번역한 이는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화영 명예교수이다. 이분은 원제인 ‘안남’을 ‘다다를 수 없는 나라’라고 명명하였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베트남의 노동운동이 일어난 1787년의 “떠이썬 운동’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프랑스 대혁명(1789년)과 루이...
이종구
이번에 내가 걸린 코로나의 시초는 딸에게서 부터 시작되었다.아파트에서 함께 살고 있는 나이가 적당히 든 딸이 최근에 프랑스 문화 축제에 자원봉사로 참여했다가 비를 맞고 오더니 감기 기운이 엄습한 것 같다.함께 자원 봉사하는 동료들과 지내면서 또 많은 사람들과 접촉해서 감기에 걸렸는데, 그렇게 2-3일 앓고 난 뒤 우리 부부에게도 전염이 되었다.나는 기저질환자로 평상시 감기를 의식해서 생강과 대추 끓인 물을 2-3년 전부터 마신 탓인지...
이종구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떠올려 본다. 나는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서 태어나, 세 살 때쯤 되었을 때 부모님께서 서울 용산구 후암동으로 이사를 했다고 한다. 초등학교를 (내가 다닐 적에는 국민학교라고 지칭했다) 후암동에서 다녔다. 그 시절에는 거주 지역에 따라 초등학교를 배정받는 것이 중요했는데 지역별로  학교 차이가 있었다. 나는 평판이 좋고 역사가 있는 삼광초등학교에 입학해 졸업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 운동회가 열리면...
이종구
내가 친하게 알고 지내는 그는 통역전문가인데 밴쿠버에서 신용과 신뢰가 기본이며 제일 저렴하게 통역료를 받고 있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캐나다에 거주하는 18세 이상의 주민이라면 예외 없이 매년 1회 세금을 신고 보고서를 국세청(RevenueCanada)에 제출해야 하는데 수년 전 나에게 한국에서 발생한 세금 자료를 영어로 번역해서 제출해야 했다. 전문 번역가의 도움이 필요했을 때 우연히 그를 알게 되었다. 이 보완 서류의 번역은 일반적인...
이종구
이 종구 / (사) 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을 주위에서 자주 듣게 된다. 이 글귀가 너무도 유명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를 소재로 시를 짓기도 하고, 노래를 만들기도 한다. 현실에 처한 가장 큰 관심사가 지나고 나면 얼마 안가 잊어버리고 별 것도 아니었다. 라고 무심하게 지나치기도 한다. 이글에 얽힌 구약성경을 잠시 살펴본다. 어느 날 다윗 왕이 반지를 하나 갖고 싶었다. 그래서 반지...
이종구
이종구 /  사)한국문협캐나다밴쿠버지부 회원나는 평범한 유교 집안에서 태어나, 비교적 순탄하게 성장하였다. 위로 누님이 넷이 계셨고, 막내로 태어났다. 누이가 네 분이라 내가 성장하면서 누님들의 여성적인 면이 영향을 끼쳤겠지만 이와는 달리 어렸을 때는 개구쟁이면서 골목대장이었다. 중학교 때는 반에서 오락부장을 지내면서 놀기도 좋아 하였다. 아마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철이 들기 시작하였던 것 같다.사춘기가 무르익어가면서 고교...
이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