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구 / 사)한국문협캐나다밴쿠버지부 회원
나는 평범한 유교 집안에서 태어나, 비교적 순탄하게 성장하였다. 위로 누님이 넷이 계셨고, 막내로 태어났다. 누이가 네 분이라 내가 성장하면서 누님들의 여성적인 면이 영향을 끼쳤겠지만 이와는 달리 어렸을 때는 개구쟁이면서 골목대장이었다. 중학교 때는 반에서 오락부장을 지내면서 놀기도 좋아 하였다. 아마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철이 들기 시작하였던 것 같다.
사춘기가 무르익어가면서 고교 2학년쯤 될 무렵에는 사회, 정치, 문화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때가 1969년 제 3공화국 시절이었고 집권정부의 삼선개헌으로 국내에는 이를 반대하는 정치권과 국민들의 투쟁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상업고등학교 진학 반에 재학하고 있었다. 나는 진학 반 선후배간의 친교 클럽인 ‘백진회’의 멤버였다. 친교클럽인데도 모였을 때, 삼선개헌 반대투쟁에 참가하자는 모의를 하였다. 그리하여 나의 반 친구들 여러 명이서 구체적으로 의논하였다. 나는 삼선개헌 반대를 영어로 첫 글자를 따서 ‘TERLO’*라고 적었다. 그것을 검은 마분지에 흰 글씨를 써서, 교복 왼쪽 주머니에 차고, 운동장에 나가 전체 투쟁모임에 참석하기로 하였다. 운동장으로 막 나가려는 도중에, 선생님들이 각반으로 올라 와 우리반은 운동장에도 나가 보지도 못하고 말았다. 일부 저학년을 동원한 다른 학생들만 나갔으나 끝내 전체모임은 하지 못하고 수포로 돌아갔다.
나는 그 일이 있은 뒤 학생부로 불려가서 진술서를 쓰고 일주일 정학처분을 받았다. 나는 내가 관여한 내용만 서술하고 주동에 가담한 선배나 친구의 이름은 쓰지 않았다. 학생부 주임 선생님이 내가 묵비권을 주장한다고 나의 따귀를 때렸다. 나는 평생 부모님한테나 누구한테도 맞지 않고 자랐다. 따귀를 맞고 나서 나의 내면에 커다란 화산이 터지듯 ‘두고 보자’ 라는 모진 마음이 가슴에 새겨졌고, 그때부터 열심히 공부에 매진하였다.
원래 나는 반에서 중간 성적을 맴돌았으나 공부에 집중한 까닭에 학년말에는 1등을 하게 되었다. 그 뒤에도 대학에 진학했을 때 학생들의 데모는 그치지 않고 계속 되었으나 결코 가담하지 않았고, 학업에만 열중해 대학에서도 장학금을 받았다.
이것이 나의 인생에 첫 번째 마중물이었다. 그 당시 데모에 가담한 친구는 외아들로써 6개월 또는 병역면제를 받을 수도 있었으나 군대에 강제 입대하게 되어 최전방으로 배치를 받았고, 독자의 병역의무 6개월 동안 고생하였다고 한다. 괘씸죄였다고나 할까.
그 다음 마중물은 대학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이 만든 ‘흥사단’이라는 동아리 모임에 가입해 적극적으로 참석하고 활동하였다. 나는 이 모임을 통해 국가관과 주인정신 그리고 시간엄수 등 많은 사상을 배운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마중물은 나의 신앙생활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과외선생님이자 전도사님의 권유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유교 집안으로 제사를 지냈고, 불교를 열심히 믿는 어머니께서는 아무런 반대의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교회를 다닐 수 있게 해주셨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주신 부모님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수요예배도 참석하고 주일에는 열심히 교회를 다니다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는 대입준비로 잠시 쉬었다. 대학 입학 후에는 집에서 가까운 성당을 나가기 시작하였다. 예비자 교육을 받고 초등학교 동창, 고등학교 동창 등 3명이서 같이 영세를 받았다. 성당에 다니면서 성가대, 빈센시오회 등 가톨릭의 봉사단체에 가입해서 활동도 열심히 하고 결혼식도 명동성당에서 했다.
졸업 후에 나는 미국으로 유학을 갔는데, 그 당시 유학생으로 온 신부가 매주 고스톱을 즐기는 것을 보고 실망하여 다시 귀국해서는 성당을 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종교생활이 몸에 배어있었기 때문에 캐나다의 밴쿠버 아일랜드의 빅토리아 시로 이민 와서 다시 천주교 생활을 하려고 했으나, 그 당시 한인수효가 적어 한인 천주교회가 없었다. (이민 후 4년 지나고 생김) 그래서 개신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였다. 다니긴 했지만 여전히 바람직한 신앙인은 아니었고 세상 속에 사는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늦게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은 잠시 서울로 가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 성남 시의 선한목자교회를 다니면서 부터였다. 그 뒤 다시 빅토리아로 돌아오면서 하나님과 좀 더 가깝게 지냈고, 밴쿠버 시로 이사 온 뒤에는 나의 내면으로부터 하나님의 빛 가운데 살아 가야한다는 생각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이 글이 내 인생의 자서전은 아니지만, 나의 인생이 ‘끽끽’ 거리는 물 펌프에서 위의 세가지 마중물 덕분으로 생수가 ‘콸콸’ 흐르는 삶이 되지 않았는가 싶다.
( 마중물: 펌프에서 물이 안나올 때에 물을 이끌어 내기 위하여 위로부터 붓는 물 )
*TERLO (Three Election Reform Law Opposition의 첫글자를 따서 ‘삼선개헌반대’를 뜻함)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이종구의 다른 기사
(더보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