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일하며 생각하며

반숙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3-10-16 11:47

반숙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나는 흙 내음이 좋아서 농촌에 산다. 값도 안 나가는 토종사과를 가꾸며 이웃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자연의 아낙으로 살며 글을 쓴다.
어떤 이는 이런 나를 신선이라 부러워하고 어떤 이는 못난이라 비양을 한다.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시멘트 정글속에 갇혀 마음의 고향인 흙을 그리며 사는 도시인들이고 후자는 도시로만 나가면 뼈 빠지게 일 안하고 편히 살 수 있다고 그곳을 동경하는 가난하고 순박한 내 이웃들이다.
나는 그 틈에서 머리는 사람이고 꼬리는 물고기인 인어 아가씨를 흡사한 아픔을 느낄 때가 많다. 사실 나는 먹지 않고 사는 신선도 아니고 생각조차 없는 못난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올 가을은 예년에 없이 농산물마다 풍년이었다. 채소, 과일, 고추, 벼농사도 대풍이라지만 풍년속에 찌들어 가는 농민의 빈혈은 누가 짚어줄 것인지. 김장시장에서 바구니마다 싼값에 장보기를 한 주부들이 행복한 얼굴로 돌아가는데 따라서 즐겁지 못함은 어인 일인가.
무우 몇 단을 앞에 놓고 앉은 촌로의 주름진 얼굴이 지워지지 않아서 일까. 내일의 농어촌 후계자의 양성도 시급한 일이지만 당면하고 있는 농촌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방도는 없는 걸까.
하필이면 농산물만 ‘반 자리 숫자’에 머물러야 하는지. 농가마다 무리를 해서 구입한 농기계는 좀더 내실을 기하여 해마다 부품 고장으로 겪는 경제적 시간적 낭비를 줄일 수 없을까.
의료 보험도 그렇다. 가난하고 현금 없는 농민들은 엄청난 의료비에 치료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불행을 수없이 당하면서도 아무도 원망할 줄 모른다. 이러한 농민들에게 의료 시혜를 베풀 날은 아직 더 요원한가.
연말이 가까워지면 농민들은 농협 채무로 혹한보다 더 무서운 마음의 추위에 떤다. 과감한 정책으로 농민들이 발 붙이고 살 여건이 마련 된다면 따로 떼어서 후계자를 양성하지 않아도 고향에 머물러 젊음을 사를 인재는 많아질 것이다.
지난 가을 풍요로운 사과 밭에 친구들이 찾아왔다. 아름다운 자연에 매료된 친구들은 저마다 환성을 지르며 내가 사는 삶이 부럽다고 야단이었다. 나는 그들 속에서 아무도 모를 나만의 눈물겨운 기쁨을 간직했다.
내 기쁨은 손가락 마디마디 흙에 절인 노동과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밤 잠을 못 자는 걱정과 힘겨운 가지를 받쳐주는 세심한 애정이 한데 어우러진 소중한 기쁨이다. 더러는 세상사 심기가 편치 않으면 시골 가서 농사나 지으며 살리라는 이야기를 한다. 반가운 말씀이다.
그래서 대지는 우리들의 영원한 고향이라 하지 않던가. 다만 잠깐 쉬었다가 떠나가는 간이역이 아니라 흙을 사랑하고 그 흙 속에 땀과 노력의 뿌리를 함께 내려 결실을 얻는 종착지로서 선택되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농사를 짓고 살면서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파 한 뿌리. 과일 한 개에 농부들의 수고가 담겼듯이 성냥 한 개비, 생선 한 토막에도 누군가의 수고가 있다는 생각, 그러고 보면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는 감사하지 않을 것이 하나도 없다. 누구라도 다 사랑하는 마음, 이것이 우리 조상들이 살아온 농심의 씨앗이고 열매인 것이다.
창문을 연다. 눈길 닿는 곳마다 과수원은 허허롭다. 무성한 나뭇잎도 달콤한 열매도 모두 돌려주고 나무는 처절한 자태로 겨울 하늘을 우러른다. 앙상한 가지 끝 빨간 사과 서너 알이 보인다. 사과를 따는 마을 아낙네들은 해마다 여기저기 까치밥을 남겨둔다.
텅 빈 잿빛 겨울 과수원에 덩그마니 매달린 까치밥은 정겨운 기쁨이고 반가움이다. 나는 여기에 토종 사과와 살면서 까치밥을 남겨두는 넉넉한 마음으로 글을 쓰리라.
때로는 흙처럼 무던하게, 때로는 푸성귀처럼 풋풋하게 우리의 삶을 가꿔 가노라면 농촌은 멀지 않아 비옥한 안식처가 될 것을 믿기 때문이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후미진 주방에서연기와 인연으로가슴에 폐암을 잉태하였다생 살을 후비는 산통을 겪으며사이렌 울리는 앰블런스에 실려야간 응급실 도착하여환자들 속에 던져 저 묻히었다알량한 베니핏은퇴 후 핑크 빛 헛꿈을 꾸며잔 기침과 허리 병을 견디어이어진 미련한 삶의 질긴 악연건강한 암을 가슴에 품었다생전 아내의 음식 속에 살아온 이가냉장고 앞에서 하얀 머리를 하고멍하니 서 있다난 육신의 고통을 겪고당신은 마음의 고통을 겪으리창가에 서서...
김철훈
수다 2023.11.01 (수)
안녕 인사와 함께 이리 저리 말을 던진다 탐색전도 끝이 나면 너무, 진짜, 어우, 그니까이런 걸 막 갖다 넣어주면서 말의 요리를 만들어 나보고 먹어 보라 하지 하지만 먹기 싫은 수다다다다다거기에 더해서 자낳괴, 찐, 불소, 밈 등 젊은 세대를 본뜬 각종 인스턴트의 맛이 내 앞에 차려지고 나는 그걸 먹어야 한다 그것도 맛있게 그래? 야, 음, 대단한데, 정말? 하하하시시때때로 유발 하라리, 알랭 드 보통...
박락준
시골집을 비워두고 여름의 끝자리를 서울서 지내다 왔다. 불과 보름 남짓 비웠을 따름인데 작은 텃밭이 정글이다. 호박, 여주, 수세미 같은 넝쿨은 주인 없는 제 세상을 만난 냥 사방팔방으로 뻗치고 타고 올라 울과 나무들을 다 덮었다. 마당가의 나팔꽃 유홍초도 마찬가지다. 들깨와 고추, 가지는 키를 넘겼고 마당의 잔디는 발목을 감는다. 이런 초록 마당에 나비와 잠자리까지 가득히 너울거려 정신마저 아득해진다.예초기로 잔디를 깎고 낫으로...
바들뫼 문철봉
수영복 입은 일기 2023.11.01 (수)
누군가 묻는다. 일기와 수필의 차이점은 무엇이냐고. 누군가 대답한다. 일기는 나만간직하고, 나만 읽을 수 있어 화장기 없는 민 낯이거나 발가벗은 나체이어도 괜찮다. 하지만수필은 남 앞에 서는 것이기에 나체의 일기에 수영복 정도 입혀 놓은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 양수에서 맨몸으로 살다, 세상에 태어나 강 보에 싸이고, 배냇저고리에서수의까지, 우리는 사는 동안 수많은 옷을 입는다. 내가 살면서 입었던 옷 중 제일 불편했던것이 정장...
허정희
풀잎처럼 살다 간 삶도 있고파도치는 외딴 바위에서홀로 외로이 살다가는 독수리처럼홀로인 삶도 있다 파도가 주름진 얼굴로바닷가에 도착하면먹으려는 새와살려고 온 힘을 다하는 물고기처럼불빛이 새어 나오는 밴쿠버 공항엔밤조차 잊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깨가 아프다고 말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말도 하지 못하고 집도 없이 집시처럼 떠도는 철새의 날개가노을 빛에 더 어둡다 어둠이 짙게 드리운 길 위를 가는...
전재민
텀블러 2023.10.23 (월)
원래넘어지는 게 정상이다날 때부터 꼿꼿이 제 발로 서는 사람은 없다어머니는 나더러 아기 적 내려놓기만 하면울음을 쏟아냈다 한다 수없이 넘어지고 굴러가며 쏟아지고 비워지고 다시 채워져 진화한 것이다 마침내 태어날 때 약하고 단순하던 홀로 서지도 못하던 그 존재는 이미 희미할 뿐 수 없이 넘어지고또 일어나며 해온 수련은 나를 단단하게 변신시켰다 뜨거운 것은 뜨거운 대로차가운 것은 차가운...
이인숙
   지난 9월 한달 여를 근 7년만에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모처럼 고국 나들이 길에 설레임과 좋은 추억들도 많았지만, 돌아와 생각해보니 가장 힘들었던 것을 꼽아보자면 단연 ‘키오스크’와의 독대(獨對)하는 시간들이었다.  팬데믹 이후 가급적 대면접촉을 피해야하고, 그만큼 인건비와 업무 부담도 줄일 수 있기에도입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순간순간 여행의 발목을 잡아오는 키오스크 복병의 매복과 공격에...
민완기
소통의 변화 2023.10.23 (월)
이상한 꿈을 꿨다. 지금도 팔과 몸 여기저기가 결린다. 꿈에서 내 방이 하나 더 새로 생겼다. 그때는 꿈인지도 몰랐다. 방 안쪽에 못 보던 문이 하나 더 있길래 살짝 열어봤더니 원래의 내 방만한 공간이 또 하나 안으로 펼쳐져 있는 게 아닌가? 그러지 않아도 집이 점점 좁아져서 고민이었는데 또 하나의 내방공간이 새로 생겼으니 이게 무슨 횡재인가? 근데 가만. 이방을 뭘로 쓰지? 나만의 서재로? 아님 응접실? 작업실? 실험실? 영화감상실?...
예종희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