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숙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나는 흙 내음이 좋아서 농촌에 산다. 값도 안 나가는 토종사과를 가꾸며 이웃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자연의 아낙으로 살며 글을 쓴다.
어떤 이는 이런 나를 신선이라 부러워하고 어떤 이는 못난이라 비양을 한다.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시멘트 정글속에 갇혀 마음의 고향인 흙을 그리며 사는 도시인들이고 후자는 도시로만 나가면 뼈 빠지게 일 안하고 편히 살 수 있다고 그곳을 동경하는 가난하고 순박한 내 이웃들이다.
나는 그 틈에서 머리는 사람이고 꼬리는 물고기인 인어 아가씨를 흡사한 아픔을 느낄 때가 많다. 사실 나는 먹지 않고 사는 신선도 아니고 생각조차 없는 못난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올 가을은 예년에 없이 농산물마다 풍년이었다. 채소, 과일, 고추, 벼농사도 대풍이라지만 풍년속에 찌들어 가는 농민의 빈혈은 누가 짚어줄 것인지. 김장시장에서 바구니마다 싼값에 장보기를 한 주부들이 행복한 얼굴로 돌아가는데 따라서 즐겁지 못함은 어인 일인가.
무우 몇 단을 앞에 놓고 앉은 촌로의 주름진 얼굴이 지워지지 않아서 일까. 내일의 농어촌 후계자의 양성도 시급한 일이지만 당면하고 있는 농촌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방도는 없는 걸까.
하필이면 농산물만 ‘반 자리 숫자’에 머물러야 하는지. 농가마다 무리를 해서 구입한 농기계는 좀더 내실을 기하여 해마다 부품 고장으로 겪는 경제적 시간적 낭비를 줄일 수 없을까.
의료 보험도 그렇다. 가난하고 현금 없는 농민들은 엄청난 의료비에 치료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불행을 수없이 당하면서도 아무도 원망할 줄 모른다. 이러한 농민들에게 의료 시혜를 베풀 날은 아직 더 요원한가.
연말이 가까워지면 농민들은 농협 채무로 혹한보다 더 무서운 마음의 추위에 떤다. 과감한 정책으로 농민들이 발 붙이고 살 여건이 마련 된다면 따로 떼어서 후계자를 양성하지 않아도 고향에 머물러 젊음을 사를 인재는 많아질 것이다.
지난 가을 풍요로운 사과 밭에 친구들이 찾아왔다. 아름다운 자연에 매료된 친구들은 저마다 환성을 지르며 내가 사는 삶이 부럽다고 야단이었다. 나는 그들 속에서 아무도 모를 나만의 눈물겨운 기쁨을 간직했다.
내 기쁨은 손가락 마디마디 흙에 절인 노동과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밤 잠을 못 자는 걱정과 힘겨운 가지를 받쳐주는 세심한 애정이 한데 어우러진 소중한 기쁨이다. 더러는 세상사 심기가 편치 않으면 시골 가서 농사나 지으며 살리라는 이야기를 한다. 반가운 말씀이다.
그래서 대지는 우리들의 영원한 고향이라 하지 않던가. 다만 잠깐 쉬었다가 떠나가는 간이역이 아니라 흙을 사랑하고 그 흙 속에 땀과 노력의 뿌리를 함께 내려 결실을 얻는 종착지로서 선택되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농사를 짓고 살면서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파 한 뿌리. 과일 한 개에 농부들의 수고가 담겼듯이 성냥 한 개비, 생선 한 토막에도 누군가의 수고가 있다는 생각, 그러고 보면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는 감사하지 않을 것이 하나도 없다. 누구라도 다 사랑하는 마음, 이것이 우리 조상들이 살아온 농심의 씨앗이고 열매인 것이다.
창문을 연다. 눈길 닿는 곳마다 과수원은 허허롭다. 무성한 나뭇잎도 달콤한 열매도 모두 돌려주고 나무는 처절한 자태로 겨울 하늘을 우러른다. 앙상한 가지 끝 빨간 사과 서너 알이 보인다. 사과를 따는 마을 아낙네들은 해마다 여기저기 까치밥을 남겨둔다.
텅 빈 잿빛 겨울 과수원에 덩그마니 매달린 까치밥은 정겨운 기쁨이고 반가움이다. 나는 여기에 토종 사과와 살면서 까치밥을 남겨두는 넉넉한 마음으로 글을 쓰리라.
때로는 흙처럼 무던하게, 때로는 푸성귀처럼 풋풋하게 우리의 삶을 가꿔 가노라면 농촌은 멀지 않아 비옥한 안식처가 될 것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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