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의정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이제 캐나다 밴쿠버 생활 6년 차에 접어든 나는 캐나다 운전에도 얼추 익숙해졌다. 아주 많이 다른 건 아니지만, 한국에서 20년 가까이 운전했던 것에 비해 처음 밴쿠버에 도착해 운전 문화가 아주 약간 다르다고 느꼈다. 한국,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바쁘게 하루를 살고, 또 거기에 맞춰 움직이는 것은 무척 익숙했기 때문에 늘 쫓기는 듯 살았기 때문이다.
마흔이 가까워 왔던 캐나다 밴쿠버는 조금 달랐다. 물론 밴쿠버는 캐나다의 또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조금 더 바쁜 모습이라는 것에 이견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북적대고 빠르기만 하던 서울의 그것과는 조금은 다른 곳이다. 또 그 도시의 도로 한복판에서 운전하며 일종의 편안한 기분을 느꼈던 것도 같다. 그래서 나에게 캐나다 식 운전은 약간 천천히 가더라도 양보하거나 배려를 해주는 것이라고 각인된 것 같다.
하지만, 이제 거의 6년이 넘어가, 이곳에서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이곳 캐나다도 조금씩 변화가 일어서 다른 분위기를 갖게 된 것인지. 최근에는 그렇게 느꼈던 안락함이 조금 옅어지기도 했다. 어떠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에게서 여유로움이 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는 운전을 하며 크게 느끼는 바인데, 전에 없던 경적도 잦아지고, 쉽게 양보 받아 차선을 바꿀 수 있던 것과는 미세하게 차이가 있기도 하다.
특히 얼마 전엔 운전하며 잊지 못할 경험을 하기도 했다. 큰 도로 가로 진입하기 위해 오른쪽 등을 켜고 잠시 대기 중이었는데, 뒤에 한 차가 멈춰서더니 그때부터 경적을 계속 울려 댔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빠르게 가는 것보다 안전이 더 중요하다는 운전 습관을 지니게 되어 기다렸다. 말 그대로 캐나다에서 익혀온 방식대로 모든 차가 다 지난 후에야 이동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차가 내 옆 차선으로 위협적으로 따라붙었다. 그리고 창문을 열며 온갖 욕설을 해 댔다. 아주 젊은 남자 운전자였다.
당시 길에 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도로 한 가운데서 위협 운전을 당하는데 무섭지 않다면 거짓이겠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순간 나는 마치 영화를 보는 듯 객관적이고 관조적인 자세를 갖게 되더라. 저렇게 어린 사람이 무엇이 급해서 다른 이들을 위협하며 화풀이하는가 바라보며 딱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은 누구보다 빨리 달리는 것이 운전을 잘하는 것이라 느끼는가 보다 싶기도 했다. 언뜻 보기에 내 운전 경력만큼 나이가 들어 보였는데, 앞으로 기쁜 날들이 훨씬 많이 남았을 청춘인데.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며 온갖 화를 다 내는 운전자에게 대꾸하지 않고 묵묵히 내가 하던 대로 운전하자 제 풀에 지쳐서 먼저 휙 달려가더라. 그렇게 상황이 마무리되자 스스로 나에게 칭찬의 말을 작게 해주기도 했다. 한국에서 운전하던 젊은 시절의 나였다면 아마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지도, 아마 같이 빠르게 달리며 화를 냈을지도 모르니까. 이건 사는 곳이 달라져서라는 단순한 논리가 아니라, 나이와 경험 등이 쌓여서 나 자체도 조금 바뀌어서 그렇게 된 것일는지 모르겠다. 불혹(不惑)이 지나자, 대부분에 현혹되지 않고, 단단한 주관이 생기기도 했으니까.
어쨌든 그렇게 한 젊은 운전자를 보내고 여유롭게 운전하며 집으로 돌아와 그날의 일기를 정리했다. ‘운전을 잘한다는 것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화를 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등의 그 짧은 경험에서 온 기억과 감상을 메모해 두었다. 무엇보다 같은 경험을 한동안 겪지 않다가 전혀 다른 장소에서 전혀 다른 나이 대에 맞닥뜨렸을 때 나 자신의 자아가 바뀐 것처럼 다른 생각과 자세를 갖는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그렇게 나이가 든다는 것, 경험을 쌓는다는 것, 거기에 더해 다른 나라와 문화에 산다는 것은 사람을 바꾸는 큰일이다. 더불어 가장 좋았던 건 화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내년, 십 년 혹은 그 이상 멀리서 만날 내 모습이 또 기대되고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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