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엄마 손은 약손

윤의정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2-12-14 08:41

윤의정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최근 한동안 감기가 유행했다. 이 감기라는 놈이 얼마나 독했는지, 코로나보다 더 오래 여러 아이가 멈추지 않는 기침과 고열에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 중에 우리 아이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일주일 내내 기침하느라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 갇혀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래도 더디게 조금씩 회복되더니 어느새 큰 아이는 깨끗이 나아 다시 학교에 나가고 친구들을 만나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반면 좀 더 어린 둘째 아이는 쉽사리 낫지 않아 본인은 물론 우리 가족 모두 함께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런데 처음엔 감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다른 증상들이 또 나타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온몸이 가렵다고 긁길래 살펴보니 빨갛게 두드러기가 여기저기 일어난 상태였다. 그러더니 또 배가 아프다고 먹은 것을 다 게워내고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너무 걱정되었다. 그저 감기로 아픈 줄 알았는데, 이건 또 무슨 병일까? 패밀리 닥터에게 만나자고 약속했는데, 그 시기로부터 2주가 지난 후에나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급히 워크인 클리닉을 검색해서 찾아갔더니, 더 이상 대면 워크인 클리닉은 운영하지 않는다고 했다. 온라인으로만 만날 수 있으니, 집에 가서 다시 온라인으로 접속해 만나라는 것이다. 아이는 당장 아프다고 난리이고 나는 지금 의사를 봐야만 했다. 그런 심정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응급 케어 센터 (Urgent Care Centre)로 향했고, 4시간 반을 기다린 끝에 의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아이는 의사를 만나는 그 순간 너무 멀쩡해 보였다. 몇 시간을 내내 아프다고 보채던 기세는 온데간데없고, 차분하고 편해 보였다. 심지어 대기 중 복통을 호소하며 화장실을 자주 오가던 아이는 그 마저도 없다며, 아무렇지도 않은 이유로 쓸데없이 시간만 낭비한 모양새였다. 결국 우리는 소득 없이 집에 돌아와야만 했다.

하지만 그날 밤, 아이는 또 밤새 잠을 자지 못하며 복통을 느꼈고, 나도 아이 곁을 지키며 아이를 돌봐야 했다. 어디가 아픈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없는지. 별다른 도움이 되진 못하지만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러면서 어려서 엄마가 나에게 해주던 것을 아이에게도 똑같이 해주었다. 손을 비벼 따뜻하게 만든 후, 아이의 배에 대고 문지르며 아주 단조로운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엄마 손은 약손, 아들 배는 똥배.”

예전 노래는 희한하게 모든 멜로디가 하나다. 자장가도 그렇고, 아플 때 부르던 노래도 그렇고, 일하며 힘들 때 부르던 노래도 그랬다. 엄마 뿐만 아니라, 어려서 엄마가 일을 가면 우리 남매들을 돌 봐주시던 할머니가 종종 저렇게 불러 주셨는데, 아주 단순하고 약간은 음치가 부르는 듯한 그 음을 따라 작은 목소리로 부르며 아이를 달랬다. 한국어로 대화하지만, 조금은 어색한 억양을 구사하는 아들도 그 노랫소리가 좋은 지 작게 따라 웃더라. 그리고 묻더라 자기 배는 왜 똥배냐며.

“이렇게 아픈 배는 똥배인 거야. 그래서 아픈 거야. 엄마 손이 약이니 문지르면 나을 거야.”

그렇게 한 시간을 같은 자세로 문지른 것 같다. 어깨가 조금씩 아려 오는데 아이가 스르르 잠들더라. 나도 너무 지친 하루였 던지라 옆에서 조용히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나보다 먼저 일어난 아이가 멀쩡한 듯 뛰어다니고 형하고 장난도 치고 싸움박질도 하더라. 안도의 숨이 나왔다. 나았나 보다. 진짜 엄마의 손은 약손인지, 약을 써도 아프다고만 하던 아이가 씻은 듯이 나은 모습에 고맙기도 하고, 다행스러움을 크게 느꼈다. 동시에 나 한테 엄마가 이렇게 해 줬었는데 하는 그리움도 느꼈다. 그때도 엄마의 손은 만능 약손이라 어떤 병도 낫게 하곤 했는데, 지금 나의 손이 아이를 낳게 하는 손이 되었나 보다.

문득 한국에 계신 엄마가 보고 싶은 날이었다. 난 유독 복통이 잦아 엄마는 약손으로 내 배를 문지르며 밤을 지새우곤 하셨는데. 그때 엄마의 간절함 크기는 어땠을까? 그때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걱정스럽고 괴로웠을까? 이제서야 보이는 것들이 아쉽기만 하다. 늘 다짐하듯, 오늘도 다짐한다. 더 자주 연락 드리고 찾아봬야지. 지켜질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면 또 다짐하고 또 다짐하리라. 엄마의 약손에 감사함을 전하지 못한 걸 반성하면 말이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매주 토요일 새벽이면 줌으로 기도회를 마치고 등산 준비한다. 며칠 전 내린 첫눈이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우리의 마음과 발걸음을 붙들어 놓는다. 시시각각 예보되는 날씨를 점검하면서 과연 이번 주말에 걸을 수 있을까 생각하는 중에 메시지가 날아왔다. 날씨는 쨍하지만 나를 포함해 함께 걷는 회원의 연륜이 높아져서 그냥 카페에서 만나 커피 타임만 갖자는 마음이 쌩하다.   이십 여 년 전에 여러 명의 교우와 건강 이야기를...
김진양
암각화 2022.12.19 (월)
영혼의 뼈 마디 하나 떼 내어만든 피리로불어보는 그리움눈물 있는 대로 빼내빈 적막오장육부썩을 대로 썩고뼈만 남아혼자 내는 인광燐光누군가등불 들고만 년 어둠 밟고 오는가
정목일
하필이면 월드컵 첫 경기 우루과이 전날 어찌 몸이 으슬으슬하니 안 좋았다. 새벽 4시반에 일어나 중계를 본다고 옷을 얇게 입고는 아래층, 위층을 왔다 갔다 한 것이 화근이 되었는지… 골문이 열릴 듯 열릴 듯 결국 게임은 0:0 무승부로 끝이 나고 축구해설가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총평을 하였지만, 개인적으로는 총체적 난국의 시발점이었다.사실 이민을 와서 맞게 되는 월드컵은 참 각별하게 다가온다. 아쉽게도 2001년에 캐나다 랜딩을 하게 되어,...
霓舟 민완기
십일월이 가고 어느덧 십이월이 오고또 한해가 기우는 적막 강산 새벽 녘 문득 백설 만건곤(滿乾坤) 한 세상별유천지(別有天地) 비인간(非人間)을만드신위대하신 시성(詩聖) 하나님의 손길 ! 저 눈꽃송이들 난분분(亂粉粉) 난분분서로가 서로의 등에 업고 업혀서지난 날의 모든 염려와 걱정 근심들사랑과 미움의 응어리진 마음의 상처들 마저 토닥 토닥 서로의 등 정답게 두드리며죄다 덮고 지우시라는 듯  ....... 그리하여 밝아 오는...
남윤성
엄마 손은 약손 2022.12.14 (수)
 최근 한동안 감기가 유행했다. 이 감기라는 놈이 얼마나 독했는지, 코로나보다 더 오래 여러 아이가 멈추지 않는 기침과 고열에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 중에 우리 아이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일주일 내내 기침하느라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 갇혀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래도 더디게 조금씩 회복되더니 어느새 큰 아이는 깨끗이 나아 다시 학교에 나가고 친구들을 만나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반면 좀 더 어린 둘째 아이는 쉽사리 낫지...
윤의정
눈 내리는 풍경 2022.12.14 (수)
참나무는 참나무에게대추나무는 대추나무에게소나무는 소나무, 까치는 까치에게소리 없이나누는빛나는 속삭임보아라시방법계(十方法系) 가득 찬순결한 이 사랑의 밀어(密語)를
임완숙
사는 집을 떠나 가장 편안한 장소를 꼽는다면 단연코 목욕탕이 아닐까. 타국에서 오래 머물다 고국에 들어가면 어색한 부분들이 많은데, 그런 이질감을 금시 씻어 주는 곳이 목욕탕이 으뜸이다.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피부로 느끼고 한국문화에 금방 동화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한가한 시간, 적당히 뜨거워진 탕에 목만 내 놓은 채, 한 사람씩 들어오는 모습을 관찰해 보는 것이 여간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사람 얼굴만큼이나 신체 부분도 제 각각이고...
자명
후회 2022.12.05 (월)
나 아주 어렸을 적에 한 번수수밭 가에서 놀다가수숫대 위에 쉬는 잠자리 한 마리 잡아서발버둥질 치는 가녀린 꽁지에강아지풀* 한 줄기 꽂아주고는휙ㅡ 먼 하늘로 날려 보낸 적 있었네.오랜 세월 흘러가고이따금 찾아와 내 가슴을 콕콕 찌르는시간 저 너머의 기억 하나ㅡ그날그 필사의 발버둥질 아, 나 정말로옛날의 그 수수밭 가에 돌아갈 수만 있다면!  *강아지풀: foxtail: 볏과의 한해살이 풀   Remorseful         ...
안봉자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광고문의
ad@vanchosun.com
Tel. 604-877-1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