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숲을 바라보며 사는 멋

반숙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2-10-17 09:11

반숙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나무는 혼자 섰을 때 아름답다. 나무는 둘이 섰을 때는 더욱 아름답다. 둘과 둘이 어우러져서 피어났을 때 비로서 숲을 이룬다. 숲이 아름다운 것은 서로를 포용하는 특성 때문이다. 공동체를 이루는 한 덩어리의 밀집성, 그 따뜻함이다. 건축예술이 잘 발달하여 거대한 도시를 건설했다 쳐도 거기 도시와 숲의 조화 없이는 생명이 없는 도시다.
기차나 버스로 여행을 하다 보면 유독 마음을 끄는 도시를 만난다. 초록빛 분지를 깔고 앉은 조그마한 도시의 평화로움은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금가루를 뿌린 듯한 오월의 햇빛이 뒷산 관목 숲에 내려와 일렁일 때면 아카시아는 수천 수만의 희디 흰 연등을 밝히고 서서 향기로운 기원을 햇살에 꿰인다. 나는 새벽이 오는 길목에서 숲을 바라보며 마음의 연등을 밝혀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위를 빈다.
나무는 가만히 서서도 우주를 포옹한다. 이슬이 내려 잎을 적시면 가슴 열어 목 축이고 먹구름 천둥 속에서도 미동하지 않는다. 하늬바람이라 얕잡지 않고 폭풍우라 두려워하지 않는다. 뿌리 내린 겸허로 대지를 파고 들며 허세를 부리거나 시기하지 않는다. 이 숲에서 맞는 나의 사계(四季)는 우리들 인생의 모습을 묵묵히 보여 준다.
메마른 바람이 쓸고 간 봄의 숲에는 유년의 꿈이 있다. 끝내 침묵하고 말 것 같던 적막의 대지에 술렁이는 빛의 말씀으로 생명은 충만해 진다. 옥색 물기가 감돌며 감추어도 솟아나는 어린 싹, 거기에는 소망스러운 설레임과 기대가 있다.
내일이 캄캄해 괴로운 이는 봄이 다가서는 숲에 서 보라. “겨울의 추위가 심할수록 오는 봄의 나뭇잎은 한층 푸르르니 사람도 역경에 단련되지 않고서는 큰 인물이 될 수 없다.(푸랭크린)” 분명코 삶의 의미가 무엇인 줄 조금씩 감지하게 될 것이다.
게으르고 미련한 이는 여름 숲으로 가라. 생의 찬가가 우렁찬 짙푸른 수해(樹海)에 몸을 담그면 풋풋한 삶의 열기에 감전 되어 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심장의 동계를 느낄 것이다. 그것은 선의 의 투쟁이며 근면이며 성실의 모습이다.
나는 때때로 욕망의 늪에 빠져 초라해질 때 가을 숲을 산책한다. 사철 푸른 나무 곁에서는 교언영색(巧言令色) 하지 않는 그 청청한 기개에 용기를 얻고 빨갛게 타며 아낌없이 떨어지는 낙엽에 흥망성쇠의 인간사 부질없음을 생각한다.
그러나 겨울 숲을 보라. 야윌대로 야윈 겨울 숲은 진실 아닌 것이 없다. 꽃도 아니요, 잎도 아니요, 오로지 빈 가지인 그대로의 참모습을 바라볼 수 있음이요, 부귀영화를 나누어 주고 입성 한 벌 걸치지 않았으면서도 간결한 생략의 아름다움을 입고 섰는 겨울 숲, 거기 빈자(貧者)의 머리 위로 내려지는 백설의 은총. 눈가루를 덮어쓰고 선 설원의 숲은 예지의 칼날이요 은자의 안식처다.
나무나 숲은 자고로 위대한 인물을 배출한다. 이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는 지존의 몸임에도 베들레헴 가난한 말구유에서 첫 고고성을 지르고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마지막에 나무 십자가 위에서 희생의 변제물로 자신을 바쳤다. 어디 그 뿐인가. 석가모니의 어머니는 무우수(無憂樹) 나무 밑에서 석가를 낳았고 고행 끝에 그가 해탈한 곳도 나무 밑이었으며 열반한 곳도 보리수나무 밑이었다고 한다.
나는 숲이 내리는 오솔길에서 인류를 구원한 성자들이 왜 아무나 숲을 사랑했는지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숲은 인간을 사색하게 하고 침묵하게 하고 안으로 안으로 충일케 하기 때문이다.
밀림의 성자 슈바이처 박사는 과거 3백 6십년 동안 을 백인들에게 학대와 착취를 당한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하여 백인을 대표해서 그들의 노예가 되어 속죄하고 봉사한 사랑의 일생을 살았다. 흑인과 밀림밖에 없는 그곳에서 그는 과연 숲의 자비로 인술을 베풀었을 것이다. 노예 해방을 이룩한 아브라함 링컨의 순수한 평등애 역시, 그가 자란 가난한 통나무 오두막집에서 싹텄다는 사실을 간과 할 수 없다. 숲에 안겨 있으면 사람은 신의 품에 안기기 전에는 참 평안이 없다고 한 어거스킨의 말씀이 살아 온다.
나는 나무를 바라보며 바람 맞는 모습에도 곧잘 감동한다. 은사시나무 잎에 햇살이 부서지는 황홀한 슬픔을 사랑한다. 달빛 켜 들고 술렁이는 밤이면 사무치게 맑은 숲의 노래가 내 영혼을 적신다. 나는 사람 틈에서 더욱 외로워 질 때 숲을 찾아 나선다. 나무들도 혼자 섰기는 너무 외로워 이마를 맞대고 서로 껴안고 살지 않는가.
숲에 싱그러운 젊음의 향기가 있듯이 지성의 숲에는 그윽한 향기가 있다. 물질만능의 현대 사회 속에 지성인 이야말로 살아있는 정신이며 사회의 호흡창구라 생각한다. 숲이 탄소동화작용을 통해 맑고 신선한 공기를 내어주듯이 지성인은 사회를 정화하고 선도하는 양심의 창이어야 한다. 숲이 없는 도시가 삭막하듯이 지성이 도태된 사회는 죽은 사회이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밟아라 2024.04.15 (월)
 서울에 사는 영적 동반자가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영화 <사일런스>를 꼭 보라며 청주 상영관까지 알려줍니다. 그때부터 제 머릿속은 영화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래전에 그 영화의 원전인 『침묵』이라는 소설을 감명 깊게 읽고 가끔씩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더니 충북 내 영화관이 똑같이 종영하는 날, 가까스로 진천에 가서 영화를 보았습니다.실화를 바탕으로 한 엔도 슈사쿠의 소설...
반숙자
서울 나들이 2024.01.08 (월)
   충청도 시골에 살고 있는 우리는 가끔씩 서울 나들이를 한다. 서울에서 생활하고 계시는 부모님을 뵙고 또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모처럼 가는 길이니 으레 올망 졸망 보따리를 거느리고 가야 하기 때문에 싸움터에 나가는 비장한 각오로 서울 행 직행 버스에 오른다.  며칠 전부터 들기름 참기름을 짜고 콩이며 팥이며 골고루 챙겨 들다 보면 보따리는 서 너 개가 넘게 마련이다. 그러나 서울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이 가까워 오면...
반숙자
일하며 생각하며 2023.10.16 (월)
  나는 흙 내음이 좋아서 농촌에 산다. 값도 안 나가는 토종사과를 가꾸며 이웃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자연의 아낙으로 살며 글을 쓴다.어떤 이는 이런 나를 신선이라 부러워하고 어떤 이는 못난이라 비양을 한다.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시멘트 정글속에 갇혀 마음의 고향인 흙을 그리며 사는 도시인들이고 후자는 도시로만 나가면 뼈 빠지게 일 안하고 편히 살 수 있다고 그곳을 동경하는 가난하고 순박한 내 이웃들이다.나는 그 틈에서 머리는...
반숙자
가난한 부자 2023.08.21 (월)
 지난 여름. 마치 홍역을 치르고 난 아이처럼 휘청거리는 다리로 과수원을 한 바퀴 돌았다. 아침 이슬이 파랗게 내린 풀 섶은 영롱한 구슬이 구을고 엊그제 씨를 넣은 열무 밭엔 씨를 물린 열무 잎이 속속 솟아나고 있다. 내가 아팠던 며칠, 상치는 냉큼 커서 꽃망울을 줄줄이 달고 섰고 땅을 기던 호박 넝쿨은 어느새 기어 올라 아카시아 나무 기둥을 칭칭 감았다.  가슴을 활짝 편다. 기지개를 켠다. 푸성귀 냄새 같은 바람이다. 달그므레한 젖 내...
반숙자
5월이 오면 2023.05.15 (월)
  해마다 봄이 오면 친정 집 뒤뜰에 붓 끝 모양의 푸른 잎이 무더기 무더기 돋는다. 아버지는 생전에 이 꽃을 유난히 사랑하고 상사화(想思花)란 세칭을 피하여 당신만은 모사화(母思花)라 이르셨다.  해토(解土)가 되기 무섭게 지표를 뚫고 용감한 기세로 돋아나는 모사화 잎은 오직 잎만 피우기 위한 듯 무성하게 자란다. 그리고 어느 날 무더위가 시작 될 즈음 초록빛 융성한 잎은 모두 죽어 거름이 되고 거기 죽음 같은 꽃 잎을 물고 연보라 빛이...
반숙자
화음(和音) 2023.04.03 (월)
   텃밭에 봄 채소 씨앗을 다독 다독 뿌려 놓고 밭 둑에 앉으니 햇살이 눈부시다. 여기저기 검 불 속에서 지난 겨울을 이겨낸 잡초들이 다투어 돋아 난다.봄은 그래서 자애로운 어머니. 꽁꽁 얼어붙은 대지를 따뜻이 녹여 서로 화해의 손을 잡게 한다.자연의 섭리란 참으로 신비하고 위대하다. 꽃 다지는 작은 키를 돋보이려 애쓰지 않는다. 양지 쪽 어느 곳이든 조촘 조촘 돋아나서 제 나름의 작고 노란 꽃을 피우기에 여념이 없다. 아무도 보아...
반숙자
 나무는 혼자 섰을 때 아름답다. 나무는 둘이 섰을 때는 더욱 아름답다. 둘과 둘이 어우러져서 피어났을 때 비로서 숲을 이룬다. 숲이 아름다운 것은 서로를 포용하는 특성 때문이다. 공동체를 이루는 한 덩어리의 밀집성, 그 따뜻함이다. 건축예술이 잘 발달하여 거대한 도시를 건설했다 쳐도 거기 도시와 숲의 조화 없이는 생명이 없는 도시다.기차나 버스로 여행을 하다 보면 유독 마음을 끄는 도시를 만난다. 초록빛 분지를 깔고 앉은 조그마한...
반숙자
두 바퀴의 수레 2022.07.07 (목)
  아침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서울 변두리 어디에 산다는 이들 부부는 새벽이면 싱싱한 채소를 한 수레 싣고 골목을 누비며 파는 평범한 상인 들이다. 그런데 내가 유독 이 부부에게 정이 가고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는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다.서른을 넘어 보이는 남자는 그저 쑬쑬하게 생겼는데 여인은 그렇지 못하다. 오른쪽 볼은 갸름하고 눈이 맑은 것이 삽상하나 왼쪽은 벌거죽죽하고 번쩍번쩍 하며 아래 입술은 일그러져 있는 것이 꽤...
반숙자
광고문의
ad@vanchosun.com
Tel. 604-877-1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