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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조각이 모여 행복을 만드는 조각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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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2-10-12 08:34

김진아 (사) 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외국 나와 사는 이민자가 근래처럼 한국 드라마를 원 없이 볼 수 있는 시절이 있었을까? 그런데도 한국 땅을 밟고 서 있지 않은 이상,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은 고향을 향한 향수를 달래는 유일무이한 낙이라고 할 만하다. 드라마를 보다가 가끔 이런 장면을 마주한다. 극 중 어머니가 외출하시기 전 밥상을 차려 놓고 나가시는 장면이다. 끼니를 거를지도 모르는 식구를 위해 엄마가(때론 아버지가) 차려놓은 밥상은 적어도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그림 중에 하나다. 이 장면에서 내 시선을 뺏는 소품이 있는데, 밥상을 덮어 놓은 조각보다. 알록달록 촌스러운 조각보는 주인공의 물질적 가난을 연출하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주인공이 누리는 정서적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오브제이다. 어렸을 적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은 늘 텅 비어있어서 무서웠고, 서글펐다. 하지만 식탁 위에 밥상이 차려져 있기만 하면 금세 서러움을 잊었다. 형형색색의 조각상보 아래로 무슨 반찬이 차려져 있을까를 궁금해하던 순간, 엄마의 사랑을 느꼈다. 나는 어느새 세상의 주인 같았다. 혼자 먹으면서도 여럿이 함께 먹는 기분이 들었었다. 엄마의 밥상은 그렇게 나에겐 행복한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이 장면에서 조각보야말로 약방의 감초같은 역할을 한다. 조각보가 없이 그냥 차려져 진 밥상이라면 그만큼의 설렘과 반전이 클 리 만무하다.  
 
조각보는 '조각 보자기'의 줄임말이다. 물자가 풍부하지 않았던 시절에, 손수 옷을 지어 입던 그 시절에 남은 천조각을 버리지 않고 아끼느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서민 문화다. 한 조각만을 떼어 놓고 보면 그저 보잘것없는 자투리 천일 뿐이지만 이것들은 따로따로, 차곡차곡 오랜 시간에 걸쳐 알뜰하게 모인 정성의 산물이다. 그뿐인가, 살뜰한 누군가의 손바느질을 통해 한 땀 한 땀 감침질로 연결되어, 비로소 작품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값없이 버려지지 않고, 모아져 있다가, 사람 손길이 닿아 다시금 고쳐 만들어진 조각 보자기의 의미는 바로 한국인의 지혜이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한시도 쉬시는 법이 없으셨다. 허투루 버리는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거칠고 크고 주름진 할머니의 두 손은 노는 법이 없고, 늘 뜨개질이나 바느질을 했다. 어린 나는 볼품 없는 작은 조각 천들이 엮여 점점 크게 자라 어엿한 이불로 변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세모와 네모가 번갈아 가면서 이어져 있었는데, 멀리서 보면 바람개비도 보이고 기와집도 보였다. 이민을 오고 어느 날, 할머니 조각 이불이 생각났다.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조각 이불을 만들 천을 모았다. 해진 옷들의 멀쩡한 부분을 오려서 모았다. 재봉질이 서툴러 모양이 날렵하게 빠지지는 못했지만, 삐뚤빼뚤 조각들이 맞물려졌고, 아이들은 자기가 입었던 옷이 이불로 변하자 재밌어했다. 엄마 손으로 만든 물건이라서 그 이불 덮기를 더 좋아하는 것도 같았다. 물건이 낡았을 때 단번에 버리지 않고, 적어도 한 번은 고쳐서 사용할 때면 나도 한국 사람의 지혜를 실천하는 것 같아 뿌듯한 기분이 든다. 
 
나는 매주 토요일이면 한글학교에서 어린 한인 2세, 3세들을 가르치고 있다. 세모, 네모가 들어있는 우리의 조각보는 캐나다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에게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릴 흥미로운 교육 교구가 된다. 조각보로 모양을 가르치면 제격이다. 그뿐 아니다. 조각들의 색깔들은 원초적이어서 거의 빨강과 초록, 노랑과 하얀 색이 들어가 있다. 거기에 검정 색을 곁들이면 동서남북 그리고 중앙의 방향과 상징을 나타내는 한국의 오방색을 설명하기 좋다. 한국의 모양과 색깔을 아우르는 전통문화 배우기가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다.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조각보다.
 
조각보는 복잡한 사회를 추상화로 그려 놓은 것 같다. 몬드리안의 강렬한 구성처럼 말이다. 조각들은 각기 다른 모양과 다양한 색깔이 모여 있다. 캐나다는 전 세계에서 모인 이민자로 구성된 나라다. 다양함을 뜻하는 다이버시티(Diversity) 사회, 또는 모자이크(Mosaic) 사회라고 일컬어진다. 다민족이 각 문화를 존중하고 저마다의 색깔을 지키도록 정책적으로 독려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이를테면 유치원에 들어가는 아이가 한국말만 할 줄 알아서 걱정이라고 하면, 선생님은 집에서는 계속 한국어로 말하고 한국 문화를 가르치라고 조언해 준다. 모자이크가 매력적일 수 있는 것은 가까이서 보면 성거워도 멀리서 보면 그림이 되기 때문이다. 조각들의 모양은 제각각인데 크게 한 덩어리가 되면 조화로움 자체가 된다. 조각 하나가 제 혼자서 빛을 발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여러 조각이 모이면, 그 모양이 다양할수록, 그 색깔이 다채로울수록 모자이크의 가치는 높아진다. 수많은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면서도 어울려 상생하는 사회의 모습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가. 얼마나 건강한가. 소수 집단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모습은 마치 작은 조각들이 제각각 타고난 색깔로 빛나는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반짝인다. 
 
자투리지만 버려지지 않고 그럴듯한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는 조각보에 대한 나의 사랑은 유난하다. 그 이유는 조각보 때문에 깨달은 바가 있어서다. 조각 보자기 속에 행복의 비밀이 숨어 있다고 할까 보다. 누구든지 낡은 물건을 버릴까 말까 망설였을 때가 있을 것이다. 망가진 물건을 다시 한번 고쳐서 쓸 때, 한 조각만큼 행복해지는 느낌이 있다. 절약하는 마음에는 정성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절약의 정신은 물건을 소중히 다루는 습관을 키울 수 있다. 물건을 귀하게 다루는 동작은 움직이는 속도를 느리게 할 뿐 아니라 마음가짐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차분해진 마음가짐은 큰 욕심을 바라기보다는 작은 소유에도 만족할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준다. 작은 것에 감사하는 것이 행복 아닐까? 우리 삶에 큰 행복은 자주 오지 않지만 작은 행복은 매일 느낄 수가 있다. 감사할 작은 일들은 어디서든지 찾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복을 불러다 준다고 하여 '복(福) 보자기'라는 별명이 붙은 조각보다. 검소한 정신에서 탄생한 존재이니 왜 하늘에서 복이 아니 내려올까. 
 
조각조각이 모여 행복을 짓는 조각보를 정성스럽게 하나 지어야겠다. 한 조각만큼씩 느긋하게, 한없이 바쁘기만 했던 내 생활 한 귀퉁이에 한 조각만큼의 여유를 부려 봐야겠다. 등잔불을 연상시키는 캐나다의 백열등 아래로 몇 달 동안 모은 천들을 어질러 놓고, 바늘 귀에 실을 꿰어 엮어 보아야지.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 일터로 나가기 전 식구들을 위해 정성들여 밥상을 차리고는 내가 만든 조각보로 밥상을 덮어 놓아야겠다. 아이들이 일어났을 때 엄마가 차려놓은 밥상을 보고 한 조각만큼 녀석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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