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재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얘 입술이 왜 이래?”
화장실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달려가 보니 손주의 윗입술이 벌겋게 부풀어 올랐다. 처음엔 깨문 줄 알았다. 그런데 약식을 먹은 것이 화근이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먹었다기보다는 입에 넣었다 바로 뱉었다고 한다. 약식에 호두가 조금 들어가 있었고 손주는 호두에 알레르기가 있는 것을 깜박했다. 큰 딸은 사색이 되어 가방을 뒤적이며 비상용으로 갖고 다니던 알레르기 주사기를 찾고 있었고 사위는 근처 약국을 수소문했다. 1 월 1 일 저녁 시간이라 문 연 약국이 없을 줄 알았는데 운 좋게 한 군데를 발견한 사위가 눈썹이 휘날리게 뛰어나갔다. 잠시 후 사위가 물약 두 병을 들고 나타났다. 약을 먹은 손주의 입술은 얼마 후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새해 첫날의 작은 소동이었다.
한국에서 은행에 근무할 때에 수시로 거래처 심방을 했었다. 어느 추운 겨울 날이었는데 친하게 지내던 거래처 사무실에서 쌍화차 한잔을 내왔다. 거래처가 익살스럽게 말했다.
“귀한 손님에게는 쌍화탕을, 덜 귀한(?) 손님에게는 녹차나 커피를 대접하지요…… 하하”
돌아오는 길에 얼굴이 화끈거리고 목과 겨드랑이 주변에 가려움을 느꼈다. 난로 옆에 오래 앉아 있어서 그런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시간이 갈수록 화끈거림이 심해지고 가려운 증상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마침 은행 이층에 병원이 있어 진단을 받으러 갔다. 진료를 마친 의사는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 물었다. 조금 전에 쌍화차 한잔을 마셨다고 하자 의사는 쌍화차 알레르기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쌍화차를 마시고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예전에도 감기 기운이 있으면 따끈한 쌍화탕에 감기약을 복용하곤 했었다. 이런 사실을 얘기 하자 의사는 체질은 변할 수 있으며, 어떤 성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쌍화차에 들어간 어느 한 가지 재료가 내 몸에 독이 된 것이라며 해독제 주사를 처방했다. 해독제 주사를 맞고 잠시 후 증상이 가라앉았다. 귀한 손님 대접 두 번만 받았다가는 죽었겠구나 싶었다. 아마도 지난 몇 달간 거래처 부도로 신경을 많이 썼더니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아 체질이 변한 것 같았다.
나는 소음인 체질이고 아내는 소양인 체질에 가까웠다. 가까웠다고 하는 것은 체질감별을 한 한의사도 100% 완전하게 확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소음인과 소양인에게 이로운 음식이 상극에 가깝다는 점이었다. 소음인에게 좋은 음식은 소양인에게 나쁘고, 소양인에게 좋은 음식은 소음인에게 안 좋았다. 둘 다 좋은 음식으로 식단을 짜기가 매우 어려웠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소음인의 체질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소음인이란 속이 냉하고 차가운 체질을 가진 사람이며 소화기관이 약해서 손발이 찬 사람이 많다. 조금씩 여러 번 먹어야 하며 과식은 금물이다. 찬 음식이나 밀가루,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소화 장애를 겪을 수 있다. 성격은 꼼꼼하고 합리적이며 내성적이고 다정다감하다. 새로운 사람과의 소통보다 잘 아는 사람과의 관계에 능하다. 신경이 예민하고 감정의 변화가 빠르다. 비뇨생식기의 기능이 강하고 소화기의 기능이 좋지 않다. 체격이 호리호리하고 아담한 사람이 많으며 이목구비가 작고 단정하다. 손발이 차며 몸이 냉하기 쉽고 땀을 많이 흘리면 체력소모가 커서 좋지 않다.’
소음인은 대체로 위가 작은 편이라 음식을 많이 먹을 수가 없다. 그래서 평생 살쪄본 적이 없다. 군대 있을 때 60kg을 넘어 보고 그 후로는 한 번도 60kg을 넘어본 기억이 없다. 다이어트가 일반인들 대부분의 과제이지만 나는 살 한번 쪄보는 것이 소원이다. 그래서 다이어트 지침과는 반대로 해보기도 했지만, 살은 찌지 않았다. 어느 설문 조사를 보니 여자들 비호감이 대머리에다 기름진 얼굴의 배 나온 남자라고 한다. 비호감이라도 좋으니 배 한번 나와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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