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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날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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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1-08-09 08:34

정재욱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지난 달 열 돔 현상으로 이곳 밴쿠버 날씨가 사상 최고로 45도 이상의 폭염을 기록했다. 에어컨이 있는 곳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고, 그늘이 있는 곳에서도 바람 한점 불지 않는 열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밤에도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한국으로부터 더운 날씨에 괜찮냐고 안부를 묻는 전화에 내 생애에 이런 더위는 처음이었고, 밴쿠버가 예년 날씨 같지 않다고 대답했다. 폭염과 비가 내리지 않는 날씨 속에서 우리 집 앞 잔디는 봄날 푸른 색에서 황금색으로 변해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우리집 정원의 꽃들과 야채들은 용하게도 이 고비를 넘기고 잘 자라 주었다.


내가 살고 있는 타운하우스 내 같은 동에 사는 할아버지 집 앞 정원은 꽃이 많기로 유명하다. 지난 번 단지 내 아름다운 정원 자랑하기 콘테스트에서 예쁜 정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할아버지네 정원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가던 걸음을 멈추고,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바람개비와 주변 장식물을 더해 정원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부지런하신 할아버지는 매일 물도 주고, 잡초도 뽑고, 정성을 다해 정원을 돌보고 가꾸셨다. 지금은 할머니가 몸이 안 좋으셔서 요양원에 계시긴 하지만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위해 아름다운 꽃들로 정성스럽게 정원을 꾸미셨다. 단지 내 쓰레기 통과 분리 수거함이 놓인 곳을 걸이 용 꽃 화분으로 장식했다. 더럽다고 여겨지는 공간이 완전히 바뀌었다. 집 앞에는 비치 파라솔처럼 햇빛 가림막이 쳐진 벤치가 있어서 시원한 쉼터를 제공하기도 한다. 할아버지네 정원에 비해 우리집 정원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매년 상추나 깻잎 모종으로 먹거리를 조금씩 수확하긴 했지만 꽃 화분은 그리 많지 않았다. 몇몇 남지 않은 화분도 물을 제대로 주지 않거나 햇빛을 너무 많이 받아서 제대로 자라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올해는 걸이용 화분도 사고, 장미와 금잔화, 국화등 여러 종류의 꽃을 사서 화분에 심었다. 아내가 학교에서 모금활동으로 구입한 금잔화와 토마토, 호박, 상추, 케일 모종도 심었다. 내가 한 화분에 4개의 토마토 모종을 한꺼번에 심었더니, 지금은 무성히 자란 화분에는 콩나무 시루처럼 토마토들이 힘들게 자라고 있다. 처음엔 아무 생각없이 심었는데, 토마토가 이렇게 크게 자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나마 아내가 한 화분에 넓직하게 옮겨심은 호박은 여유를 갖고 토마토에 비해서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다만 깻잎 모종은 영양분이 부족 했던지 더 자리지 못하고 점점 시들어가고 있다. 작년엔 열리지 않았던 블루베리 화분에도 파란 블루베리 열매가 열려 처음으로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가 있었다. 수국은 여전히 꽃을 피우지 못한 체 초록 잎들만 풍성했다. 상추와 케일, 파는 이제 씨를 받을 준비가 되었고, 돈나물과 참나물은 화분을 빽빽하게 덮고 있었다. 그 밖에 지난 봄 모종으로 처음 심었던 고추에도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하얀 나비 한 마리와 꿀벌 한 마리가 날아와 우리 정원을 방문했다. 옛날엔 흔하디 흔한 나비와 꿀벌이지만 이젠 귀한 손님이 되어버렸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도 4년내 멸망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하는데, 그만큼 꿀벌이 우리 생태계에 크나큰 영향을 준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정원에 물을 주다가 꿀벌 한 마리가 방울 토마토 꽃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물끄러미 한참을 바라보았다. 이제 곧 더 많은 열매가 달릴 거라는 생각이 드니까 뿌듯했다.


해거름 해가 서산으로 질 때, 호스에 연결된 수도 꼭지를 열고 오늘도 어김없이 정원에 물을 준다. 정원에 쏟는 정성의 시간만큼 화분에 심어진 꽃들과 채소들도 성장할 거라 믿는다. 사람도 한낮 무더위에 목이 마른데 하물며 하루 종일 강렬한 햇빛과 장시간 대적하며 지친 여기 정원 친구들에겐 이 물 한줄기가 얼마나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일까. 화분들로 구성된 작은 정원이지만 한여름 날의 이곳은 내가 주는 물로 더위를 식힌다. 내일은 지금 보다 좀 더 자라 있을 거라고, 열매가 더 영글어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 물줄기를 힘껏 내뿜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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