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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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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1-08-03 08:37

정목일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나비는 타고난 천상의 예술가. 몸매 자체가 신의 예술품이다.

가느다란 몸체는 연약하지만, 양 편으로 두 쌍 씩, 네 장의 날개는 색채 미학의 결정체이다.

좌우의 날개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대칭 무늬로 황홀감을 준다.

나비는 타고난 패션 디자이너일 뿐 아니라 무용가이다.

나비의 행보는 우아한 춤이며 사랑과 평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내 초등학교 시절의 여름방학 숙제엔 ‘곤충 채집’과 ‘식물채집’이 있었다.

다른 숙제는 개학일 앞두고 벼락치기로 후딱 해치울 수 있지만,

이 두 가지 숙제만은 채집물이기 때문에 산에 들에 나가 실제로 며칠간이나 헤매이며 애타게 찾아 나서야 하는 일이었다.

숙제이긴 했지만 가슴이 짜르르 울리는 일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식물채집보다 곤충 채집에 더 열을 올리곤 했다.

곤충의 맥박과 날개와 지느러미가 손아귀에 전해와 가슴이 콩당 콩당 뛰고 마음이 달아올랐다.


매미 소리를 들으며 나무 위로 한 걸음씩 눈치 채지 않게 올라가는 안타까움과 짜릿한 흥분…

떨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드디어 손아귀에 매미를 잡았을 때의 솟구치는 기쁨은 세상을 얻은 듯했다.

손바닥에서 까칠까칠한 매미의 몸에서 터져 나오는 매미의 음성이 가슴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나는 매미보다 나비에 더 홀려 있었다. 눈앞에 나풀나풀 날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 모든 것을 잊고 나비를 따라 나서고 있었다.

새들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지 않고,

한 발자국 앞에서 손이 닿을 듯한 공간에서 날고 있는 나비의 아름다움에 홀려서 붙잡지 않고선 견딜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 어느 날, 산에서 호랑나비를 발견하고 뒤따르기 시작했다.

호랑나비의 산뜻한 채색 무늬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정신없이 뒤를 밟았다.

손에 닿을 듯 말 듯 숨 졸이며 덮치면 호랑나비는 용케도 비켜나가 한 걸음 앞서 나르고 있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번엔!’ 하고 뒤쫓았다.

얼마 동안이나 정신없이 나비에게 홀려 시간을 보냈던 것일까. 어느새 산속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울면서 헤매다가 등산객을 만나 내려오면서 놓쳐버린 호랑나비의 아름다운 영상이 사라지지 않았다.

소년기의 나는 한 마리 곤충이었다. 아름다운 나비였으면 했다.

봄이 왔음을 알리는 전령사는 꽃들이지만, 봄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나비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일지라도 나비가 오지 않는다면, 생동감을 느낄 수 없다.

나비야 말로 봄이 왔음을 알리는 진정한 전령사이다.


나비는 몸체보다 몇 배나 더 큰 날개를 달고 있다. 나비가 미와 사랑의 수호자임을 말해준다.

생존경쟁을 위한 그 어떤 공격과 방어 장치도 갖지 않고, 다른 생명체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는다.

생존을 위해서 먹느냐 먹히느냐의 관계 속에서 사랑을 전파하는 나비야 말로, 평화의 사절사임을 말해준다.

나비는 꽃의 색깔과 향기를 알아내는 최고 감별사이다.

형형색색의 꽃모습과 갖가지 향내를 알아내고 우아한 날갯짓으로 꽃에게 간다.

나비는 기막힌 후각과 미각의 소유자이다.

꽃들이 빛깔과 향기로 보내는 사랑의 편지를 받고, 춤추면서 임에게로 다가간다.

나비의 머리엔 한 쌍의 촉각과 두 개의 겹눈이 있다.

예민한 한 쌍의 촉각은 안테나처럼 솟아올라 꽃이 보내는 사랑의 음파를

감지해 내고 두 개의 겹눈으로 꽃들의 모습을 식별해 낸다.

생명체들은 먹이사슬 속에서 끊임없는 생사의 순간을 겪으면서 살아간다.

동물의 경우엔 약자를 잡아먹어야 생존이 가능하기에 사냥감을 노려야 하고, 강자의 동태를 살펴야 한다.


나비의 생존은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에서 벗어나 있다.

꽃에서 꿀을 얻는 대신 꽃가루 받이를 해줌으로써 식물의 번식을 도와주는 협력자가 된다.

꽃과의 밀월 같은 공생은 전 생태계를 유익하게 작동시키는 힘을 보여준다.

사자나 호랑이, 코끼리보다도 나비의 꽃가루 받이 역할은 더 힘이 세다.

꽃들은 나비를 통한 꽃가루 받이로 더 많은 종을 번식시켜 열매를 맺게 한다.

나무의 열매들은 동물들에게도 먹이가 되며 인간에게도 식량이 되어준다.

모든 생명체를 유익하게 만들고 식량을 제공하는 나비의 힘은 평화, 사랑, 번영, 화해, 축복의 의미로 다가온다.


나비는 하늘이 보낸 천사이다. 애벌레는 식물의 해충이지만, 나비가 되고부터는 다른 생명체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

꽃과 나비는 이 세상의 아름다움과 행복, 사랑의 상징이다.

예로부터 꽃과 나비를 그림과 문학작품으로 많이 남겨 놓은 데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계이고

생태계에도 축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나비의 삶은 이채롭고 은혜롭다.

가장 연약한 곤충인 나비가 불어넣는 공존과 평화의 메시지는 생태계 전체에 희망과 평온을 안겨준다.

날개를 모으고 꽃에게 내려 앉아 꿀을 빨아들이며 미래를 약속하는 나비의 밀어가 들려오는 듯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달콤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나비 같은 삶을 살 수는 없을까.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축복과 번영의 씨앗을 심어줄 수는 없을까.

갈등, 대립, 장애, 다툼, 증오를 없애고 공존, 화해, 평화의 길은 없을까.

각박한 삶의 현장 속에 나비 효과를 불어넣을 순 없을까.

나비가 지닌 아름다움과 평화의 은유법을 익힐 수 있으면 좋겠다.

착함과 도움, 희생과 봉사는 나비 효과가 될 수 있다.

연약한 나비에게서 가장 위대한 힘을 발견하고,

아무 생존의 무기가 없음에도 만물에게 아름다움과 행복을 제공하는 비법을 본다.

나비는 하늘이 보낸 아름다움과 축복의 천사이며 실천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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