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은 다시 뛰었다. 발바닥이 아파 멈칫했지만, 젖 먹던 힘을 다했다. 동굴을 쳐다보니 박쥐는 이미 굴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동굴 천정에 꽉 달라붙기 전에 잡아야 했다. 방학이 끝나가는 오늘은 잡아야 내일 학교에 가져갈 수 있었다. 그는 동굴 앞에 와서야 달리기를 멈추었다. 안으로 들어가 물이 있는 곳까지 걸었다. 발바닥 상처를 씻고 싶었으나, 박쥐부터 찾았다.
잠시 후 동굴 안으로 다른 박쥐들이 길게 줄지어
들어왔다. 몇 번 천정을 배회하더니 굴 천정에
거꾸로 매달렸다. 포유동물 중 유일하게 날 수 있는 그들이 또 다른 재주를 갖고 있었다. 발을 공중에 묶고 매달리는 서커스 단원 같았다. 윌리엄이 순식간에 조약돌 하나를 천정으로 날렸다.
한 박쥐의 한쪽 날개가 축 늘어졌으나 그대로 붙어있었다. 그는 다시 또 하나의 돌을
가운데 손가락으로 몰아 힘껏 위로 날렸다. 박쥐 하나가 휙 소리를 내며 물에 떨어졌다.
돌멩이에 정통으로 맞은 것 같았다. 선생님이 이렇게 잡은 줄 알면 혼낼 게 분명했다. 큰 상처가 없기를 바라며 윌리엄은 물에 뛰어들었다. 두 손을 동굴 물에 담갔다가 오므려 박쥐를 떠내서 살펴 봤다.
다행히 숨도 쉬고 눈도 뜨고 있었다. 돌멩이에 발가락이 맞아 부러져 있었다.
천정에 매달리지 못할 정도였다.
박쥐에게 미안하다고 하며 윌리엄은 제비 다리 고쳐준
흥부나 된 듯이 속옷을 찢었다. 박쥐 발을 감싸고는
보릿대 줄기를 다듬어 만든 여치 집에 넣었다. 윌리엄은 여치 집 두 개를 양손에 들고 동굴에서 걸어 나왔다.
해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차가운 물에 담갔던 발의 물기를 말끔히 닦아내지 못해 발가락이 부르틀
것 같았다. 연거푸 박쥐에게 미안해하면서도 그는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했다. 이제 학교에 갈 날이 기다려졌다.
그의 바지는 공중에 뜬 채 꿀을 빨고 있던 벌새를
잡느라 가시덤불에 뜯어졌다. 땅을 보지 않고
박쥐만 보고 달리다 돌부리에 발목을 찍혀 오른발을 절룩거렸다. 깜깜해지기 전에 집에 들어가기 위해 마지막
힘을 내 달렸다. 양손에 매달린 여치 집 때문에 생각만큼 빨리 달리지는 못했다.
윌리엄은 집에 돌아와 캐롤라인에게 자랑하지 않았다. 그녀는 몹시 궁금해했다. 윌리엄은
동생이 여치 집
안에 있는 동물들을 꺼내 볼까 봐 조심했다. 벌새와 박쥐가 날아가 버릴까 불안했다.
여치 집을 처마 밑에 대롱대롱 매달아 놓았다. 거기까지는 동생의 키가 닿지 않아 안심이 되었다. 보여달라고
떼쓰는 캐롤라인에게 학교에 가져갔다 와서 보여주겠다며 달랬다.
야행성 동물이니 불빛이 창밖으로 여치 집을 비추지 않도록 캐롤라인에게 전깃불을 끄라고 했다. 촛불을 켜고 숙제나 하라고 하니 여치 집 안을 공개하지 않으면 끄지 않겠다고 버텼다. ”집에 와서
보니까 그것들이 조금 다른 것 같아.“ 윌리엄이 말했다. ”7학년 마지막 방학 숙제라고 했지?“ 캐롤라인이 물었다. ”응
벌새와 박쥐를 잡아 오라고
했거든.“오빠가 대답했다. ”그런데
달라?“ 동생이 물었다. ”박쥐는 확실한데.“ 윌리엄이 말했다.
”그러니까 또 하나가 뭐야?“ 캐롤라인이 답답해하며 물었다. ”벌새를 잡아 오라고 했는데 인터넷 사진의 벌새와 좀 달라.“ 윌리엄이 대답했다. 그는
쪼그려 앉아 생각에 잠겼다. 친구들의 벌새와 다르면 웃음거리가 될 것 같았다. 다시 잡으러
갈 시간도 없었다. 개학은 바로 내일이었다. 다음부터는
숙제는 미리미리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빠, 좀 보여줘 봐.“ 캐롤라인이 말했다.
윌리엄은 동생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벌새가 날아가 버리면 아예 숙제하지 않은 거였기 때문이었다.
벌새 비슷한 거라도 가지고 가면 숙제 절반은 마친 것이었다.
“글쎄 보여줘 봐.” 캐롤라인이 계속 보챘다. “만약 벌새가 아니라면 친구들 웃음거리가 될 거야.
박쥐만 가져갔다가 핑계를 대. 동생이 여치 집 문을 여는 순간 날아가 버렸다고.” 동생이 제안했다. “솔직
해야 해.” 윌리엄이 대답했다. “그런 거짓말도 못 해? 여러 사람 앞에 웃음거리가 되겠다는 거야?“ 캐롤라인이 따지며 물었다.
윌리엄은 흔들리지 않았다. 거짓말한 후 계속 후회하는 것보다 한순간 웃음거리가 되고
마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녀에게 대답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가
전깃불을 끄고
촛불을 켰다.
윌리엄은 야행성 동물이 잠을 잘 수 있도록 도와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잠이 오지 않았다. 캐롤라인의
제안이 방 천장을
맴돌았다. 아침이 되었다. 윌리엄은 여치 집에 다가가서 조용히 귀를 댔다.
두 소중한 생명이 살아 있음을 느꼈다. 오늘 학교에 가서 일어날 일에 대해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해결할 수 없는 고민거리는 흘러가는 시간에 맡겨야 한다는 아빠의 말씀이 떠올랐다.
모두가 종이 상자에 방학 과제물을 넣어왔다. 여치 집을 만들어 온 학생은 윌리엄 혼자였다. 신기한 물건을 처음 보듯이 다가와 만지는 친구들도 있었다. 선생님이 한 사람 한 사람 불러
확인하며 꺼내 보였다. 벌새는 확실히 윌리엄 것과 다른 학생 들 것에 차이가 있었다. 크기는 비슷했다. 윌리엄은
그의 차례가 가까이 오자 가슴이 두근두근 띄었다. 이윽고 윌리엄의 벌새를 선생님이 높이 꺼내 들어 올렸다.
선생님이 다른 친구 들 것은 슬쩍 꺼내 보이기만 했었는데 윌리엄의
것은 긴 장대 같은 팔로 높이 들었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선생님은 윌리엄의 과제물을 보고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번쩍 들어 올렸다.
곧이어 앞자리에 앉은 친구가 “에계계 저게 뭐야,
벌새가 왜 저래”라고 큰소리로 웃었다.
윌리엄은 자기를 비웃는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모든 학생들의 시선은 한곳으로 모였다. 하나둘 웃음이 보태졌다. 삽시간에 교실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었다. 모두의 시선은 윌리엄을 향해 있었다.
대담해지려고 해도 윌리엄의 고개는 자꾸만 책상 밑을
향했다. 그 순간 “자, 주목!” 선생님이 더 큰 소리로 웃음들을 잠재웠다. “잘
봐요, 분명히 다르지요? 이건 특별히 윌리암에게 주문한 거예요.” 두 손에 두 생물을 들고 있던 선생님이 윌리엄의 숙제를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이게 뭔지 아는 학생 손들어!” 선생님이 다시 윌리엄의 벌새를 높이 들어 올리며 물었다. 교실은 갑자기 조용해졌고 아무도 손을 든 학생은 없었다.
“이 녀석의 이름은 박각시나방이에요.
여러분들에게 비슷한 두 동물을 확실하게 구분 짓게 하기 위해 윌리엄에게는 박각시나방을 잡아 오라고 한 겁니다. 알겠지요?” 선생님이 시선을 학생들 눈에 하나하나 맞추며 말했다.
“구분 대상으로 주어진 숙제는 박쥐와 벌새가 아니었어요?” 선생님들 사이에 약방의 감초 학생으로 별명이 붙은 학교 방송부장인
친구가 말했다. 잠시 안도의 한숨을 조용히 쉬고 난 후 곧이어 윌리엄에게 다시 찾아온 긴장의 순간이었다.
“선생님은 박쥐와 박각시나방의 같은 점과 다른 점,
그리고 벌새와 박각시나방의 같은 점과 다른 점,
이 두 가지에 대해 각자가 선택해서 리포트를 쓰도록 하는 데 이 숙제의 목적이 있었다.” 선생님이 좀 얼버무리는 말투로 말했다.
“동물 산채로 잡아 오라고 하실 때에 이 세 동물 중 선택해 두 동물을 잡아 오라고 했어야 했네요.” 윌리엄에 이어 성적이 반에서 2등을 달리는 부반장이 말했다.
그는 친구들로부터는 인기도가 가장 높았으나 선생님들로부터의 신뢰도에 뒤져 부반장이 되었었다. “아 생각해보니 그렇구나. 박각시나방 찾기가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렇게 했어야 너희에게 준 선택권이 완전한
것이었겠구나.” 선생님이 자신의
오른쪽 귀 볼을 만지며 말했다.
“잡기 어려운 동물은 왜 윌리엄에게만
잡아 오라고
하셨어요?” 이젠 반장 리우민이 나서 말했다.
그는 친구들로부터는 인기도가 낮았으나 선생님들로부터 신뢰도가 가장 높아 반장이 되었었다. “응 그날 숙제를 주었던 날 너희가 다 귀가하고 없을 때 박각시나방이 떠올랐단다. 그때 교실에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던 딱 한 명의 학생이 있었다.” 선생님이 이번엔 왼쪽 귀 볼을 만지며 말했다. “윌리엄이요? 윌리엄 너 그날 우리랑 함께 교실 문을 나서지 않았어?” 리우민과 방송부장이 말했다.
윌리엄은 말이 없었다. 그는 이쯤 ‘자기가 나서서
선생님을 이 진흙밭에서 꺼내 드려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윌리엄이 고개를 조금 들어 말하다 말고 머리
뒤 꼭지만 긁어댔다. “우리, 이런 비생산적인,
그러니까 논쟁해봐야 아무런 실익이 없는 대화 그만하고 수업에 들어가자꾸나.” 선생님이
앞머리를 위로 올리며 말했다. 윌리엄은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 “진실은…” 윌리엄의 짧은 말과 함께 얼버무리는 이상한 행동이 반복되었다.
이렇게 끝나면 선생님과 자기의 관계가 친구들 앞에서
이상해질 것 같았다. 어차피 잘 숨기지 못하는
성격의 그가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선생님이 숙제를 잘 못 해온 자기가 친구들로부터 웃음거리가 되지 않도록 거짓말로 감싸주신 거라고 말할 것 같았다. “윌리엄, 이제 되었다.
친구들도 이젠 다 조용하지 않니?” 선생님이 원래의 부드럽고 당당한 모습으로 말했다.
“이것 하나만 말해주고 싶구나. 선생님은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중요하다.
훗날 선생님이 거짓말한 것이 어느 것 하나라도 드러나게 되면 누군가 궁지에 몰린 약한 자를 돕기 위한 것이었다고 이해해주기 바란다.”
“자 벌써 수업 시간이 조금밖에 안 남았구나. 오늘은 유사 생물 비교분석 시간이 아니었다. 이 과제물들을 지금부터 10분간 자세히 살펴보고 다음 시간에 리포트를 써오기 바란다.
1. 박각시나방과 박쥐의 같은 점과 차이점,
2. 박각시나방과 벌새의 같은 점과 차이점, 3.
오늘 수업 시간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각자의 생각, 입장바꿔 자신이 선생님이라면 혹은 윌리엄이라면, 리우민이라면 부반장이라면,
방송부장이라면 이런 때 이렇게 발언했을 거라는 것을 두 가지로 선택해 써오기 바란다. 이상.” “아 참 빠진 게 있구나, 윌리엄에게만 또 한 가지 선택사항을 추가한다. 박각시나방을 어디에서 잡았는지, 박각시 나방의 발이 왜 저러는지, 이번 숙제로 인해 바뀐 생각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선생님의 긴말이 끝났다.
“선생님, 끝까지 윌리엄만 특별대우 하시군요.” 친구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함께 말했다.
“이 녀석들하곤.. 윌리엄 내가 대답해 보아라.”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선생님이라면 오늘 어떻게 처신했을까?”
윌리엄은 말하기 위해 일어섰지만 밖으로 뱉지 못하고 속으로만 얼버무리고 말았다. ”안 되겠다.
윌리엄이 생각만 하지 않고 말로 잘 표현하는 학생이 되도록 우리가 돕자꾸나. 공부 잘하는 것도 좋지만 표현을 잘해서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는 기술도 필요하단다. 윌리엄이 말하기 전까지 오늘 수업은 끝나지 않는다.”
선생님이 말했다.
“선생님이 또 그에게만 특혜를 주신다!”
교실 내 거의 절반의 학생이 한목소리로 떠들었다.
“나는 교실 밖 공부는 잘하지 못합니다.
벌새를 잡는다면서 박각시나방을 잡았습니다.
동물에게 돌을 던져 두 마리나 상처를 입혔습니다. 선생님이 나를 위해 수렁에 빠졌는데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실성한 사람처럼 윌리엄이 쏟아냈다. 개학 첫날 마지막
시간에 적막감이 돌았다.
“감사합니다, 후련합니다. 가슴을 뚫어주신 선생님 고맙습니다.”라고 외치며 윌리엄은 교실을 박차고 나갔다. 절뚝거리며 달렸다. 선생님의 퇴근길로 들어섰다. 탱자나무밭 뒤에 숨어 누군가를 기다렸다.
(jpark@monarchwealth.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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