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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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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9-01-08 16:13

이원배 / 캐나다 한국문협 이사장
‘어른 다 되었구나. 우리 아들.’
 중학교에 들어가서 그 동안 부르던 ‘아부지’라는 호칭 대신 ‘아버지’라고 했을 때 내 아버지로부
터 들은 칭찬이다.
 아들이 사춘기가 지나면서 ‘아빠’라는 호칭 대신 ‘아버지’라고 했을 때 내가 아들에게 한 말이기
도 하다. 국어사전에는 어른의 정의를 ‘다 자란 사람’이라고 해 놓았다.
다 자란다는 것은 무엇인가? 육체적 성장인가,
정신적 성장인가? 몸만 자랐다고 우리는 어른이라고 하지 않는다.
생각도 함께 자라야 비로소 어른이다. 조선시대에는 장가가면 어른대접을 받았다.
못 가면 어른 표시인 상투는커녕 평생 떠꺼머리 아이 대접이었겠다. 지금은 장가간 철부지가 많
다. 결혼여부가 어른을 정의하지도 않는다.
  몇 년 전 서울에서 열린 대한노인회 주최 ‘노인의 날’행사에 밴쿠버 대표로 초청받은 적이 있었
다. 나는 60대 중반을 조금 넘어선 나이로 참가자 중 제일 막내였다.
참가자 대부분이 70,80대로 나보다 한참 어른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어른이란 그저 나보다 더 나이 먹은 사람이었다.
해서 오지 말아야 할 곳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행사당일 개회식에서 이 심 회장이 말했다. 노인(老人)이 되지 말고 어른이 되자.
  노인은 피할 수 없는 젊은이들의 미래이다.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순에 가시 쥐고(고려 말 우탁 의 시조 중 )’  즉,
늙는 길에 홱 가시를 뿌려 늙음 오는 것 막고,
그래도 온다면 막대로 후려친다고 해도 어느새 백발은 삼단 같던 머리를 뒤덮어버린다.
누구에게나 오는 늙음이지만 젊은이들은 노인을 실어한다.
‘틀딱충(틀니 딱딱거리며 잔소리나 하는 벌레)’이라며 경멸하고 냄새 난다고 피한다.
자기들은 생전 늙지 않으리라는-나도 한때는 그랬던-착각 속에서.
  왜 젊은이들이 노인들을 싫어하는가? 이는 보편적인 노인의 특징 때문이다.  고집이 세고,
남에게 대접받으려 하고, 젊은이에게 훈계하려 하고,
소싯적에는 잘 나갔던 사람이었음을 과시하려 한다.  . 뿐이랴. 큰 소리치고, 반말하고,
남의 말은 귀담아듣지 않으면서 자기 이야기는 상대방이 안 듣는다고 버럭 역정 내는 것도 보태

야 한다. 늙는 것이 벼슬인양,
조금만 무시당하거나 서운한 일을 겪으면 상대를 죽는 날까지 철전지 원수 삼는 일이 다반사다.
그러나 시대는 변한다. 조선시대 노인은 그래도 무방했을 것이다.
감히 노인의 권위에 누가 도전했으랴. 전후 세대(戰後 世代)가 노인의 반열에 들어서는 지금.
그런 노인들은 소위 ‘적폐청산’의 대상이 된다.
틀딱충에 ‘연금충’(재원고갈의 위기에 있는 노후 연금 축내는 벌레 같은 노인)이 더하여지면 종
내 ‘빨리 지구에서 떠나세요’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서글프다. 경로효친(敬老孝親
)이란 말도 조만간 사어(私語) 되겠다.
  그래서 이심회장은 ‘어른’이 되자고 강조했다. 어른이란 육체적으로만 다 자란 사람이 아니다.
정신적으로도 한없이 성장해 나가는 사람이다.
부와 지위와 명예를 다 지니고 있음에도 항상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그렇다고 남을 시기하지 않는 노인. 그가 진정한 어른이다.
젊은이들의 말에 조용히 귀 기울이고, 그들에게서도 무언가 배우고,
고맙다고 인사할 줄 아는 노인. 그가 진실로 어른이다. 자신이 떠날 때를 알고,
세상으로부터 얻은 재산이나 지혜를 젊은이들을 위해 쓸 줄 아는 노인. 그가 참된 노인이다.
  심심파적으로 방에서 새끼줄 꼬는 시골노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대신 새끼줄 꼬아 준 이웃청년이 혼 난 옛이야기를 들어 보셨는가? 혹자는 노인들에게도 일거
리가 있어야 된다는 뜻으로 이야기를 해석한다. 나는 다르다.
모처럼 기운 없는 노인을 위한다는 마음에 짚으로 새끼줄 꼬아준 이웃청년에게 우선 고맙다고 
하고,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열심히 노력한 청년을 칭찬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는 알 듯 모르게 튼튼하게 새끼줄 꼬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래야 여간 해서 끊어지지 않고 쓸모 있는 새끼줄 꼬는 법이 대대로 이어질 것 아닌가?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조병화 시 ‘의자’중에서
 
  기해(己亥)년 새 날이 밝았다. 올 해도 어김없이 한 걸음 더 노인의 길 가야 한다.  어차피 갈 길.
뒤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 ‘어른의 길’로 포장하며 가야겠다.
우리가 선대로부터 배우고 익힌 지혜로 세상을 살아 왔듯이,
후대를 위해 부지런히 길을 닦아야겠다. 이웃을, 사회를,
내가 살아가는 국가나 조국을 위해 어떤 세월을 걸어갈 것인지 보여줘야 한다. 뒷짐지고 서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모르면 잠자코 있어. 하면서 젊은이들 앞길이나 가로 막으며,
욕심나는 자리는 양보하지 않고,
싫어하는 자리는 얼른 피하는 그런 노인네가 되어서야 쓰겠는가? 조병화 시인처럼 어린 분을 
위해 묵은 의자를 비워 드려야 하겠다.
 이를 위해 몸으로 실천하며 행위로 본을 보이는 어른이 늘어난다면,
올 한해도 밴쿠버 교민사회는 아무런 잡음 없이 세대간 도타운 정으로 아름다운 나날들을 보낼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새해 소망을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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