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이웃과 이웃사촌

권은경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8-11-29 17:00

권은경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이웃은 가까이 사는 사람이나 집을, 이웃사촌은 정이 들어 사촌 형제나 다를 바 없이 가까운 이웃을
말한다. 예로부터 이웃이라 하면 가까이에 살면서 필요에 따라 물건을 빌리거나 음식을 나누기도 하고,
기쁜 일은 물론 슬프고 힘든 일까지 함께 나누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존재들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이웃끼리는 황소 가지고도 다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이익과 손해를 떠나서 이웃과는 가족과 같이
뜻을 합하고 정답게 지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성경에서는 그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이웃이란 요즘처럼 빽빽한
아파트 사이에서 오다가다 만나는 무명의 누군가가 아니라 마음을 나누며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이다. 지금은 가깝고도 멀게만 느껴지는 말이 되어버렸지만, 이웃은 늘 가까이에 있으면서 많은 것을
함께한 소중한 친구이고,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을 되돌아보면 좁은 골목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철 대문의 소박한 집들이 떠오른다. 우리
집과 나란히 붙어 있거나 마주 보고 있는 골목 안의 집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같이 정겨운
이웃들이 살고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드나들듯 서로의 집을 오가며 모든 것을 공유하던 이웃들은 참
사이가 좋았다. 말랑말랑한 밀가루 반죽을 기다란 밀대로 쭉쭉 밀어 칼국수를 만드는 날이면
동네잔치라도 있는 듯 이웃들이 모여들었다. 빈손으로 오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저마다 겉절이,
물김치, 장아찌, 제철 과일들을 푸짐하게 들고 나타났다. 소박한 밥상이 차려지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던 이웃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늘 웃을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민구
아빠가 바람이 났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온 동네 이웃들이 민구 아빠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들고 나는
시간까지 확인했다. 민구네의 행복을 지키는 일은 이웃 모두의 사명인 듯 투철했다. 혜영 엄마가 허리를
다쳤다면 이웃들은 허리에 좋다는 찜질 팩이며 마사지 기계를 들고 모여들었다. 오현이 아빠가 경마로
집을 날리고 왔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는 온 동네가 초상집처럼 스산했다. 혹시 아픈 이웃의 마음을 더
다치게 하지 않을까 이웃들은 어설픈 위로의 말을 건네기보다 묵직한 침묵 끝에 한숨을 달아 자신의
가슴을 내리쳤다. 이웃의 기쁨이 곧 자신의 기쁨이고, 이웃의 슬픔이 곧 자신의 아픔인 양 이웃들은 먼
친척보다 가깝다는 이웃사촌이 되어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갔다.
 
세월이 흘러, 하나 둘 새로 지은 아파트를 분양 받아 뿔뿔이 흩어졌다. 처음 들어 보는 신도시로 떠나는
이도 있고, 동네 가까이에 들어선 뉴타운으로 가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 살게 된
이웃사촌들은 저마다 바쁜 일상 중에도 부지런히 안부를 묻고, 서로의 경조사를 살뜰하게 챙기며 함께
늙어갔다. 어릴 때 한 가족처럼 오갔던 이웃들은 지금도 친 이모, 친삼촌처럼 여전히 만나면 반갑고,
허물이 없다. 어쩌다 누가 시집, 장가라도 갈라치면 오랜 이웃사촌이 가장 먼저 예식장 문을 박차고

들어와 왁자지껄 축하 인사를 건넨다. 서로를 얼싸안고 기뻐하는 주름 잡힌 이웃들의 얼굴이 꽃처럼
피어서 사방을 환하게 비추었다. 언제 봐도 반가운 이웃사촌, 그들의 모습은 자식들의 결혼사진
속에서도 그 위력을 떨치고 있다.
 
인정 많고, 순박한 이웃사촌 틈에서 훈훈하게 자랐던 지난날을 떠올리면 절로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하지만 정작 어른이 되고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이웃 간의 따뜻한 관계와 소통은 옛일이 되어버렸다.
그저 자신의 삶에 몰두하며 하루를 살아내기에 바빠 누구도 먼저 이웃에게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아침 일찍 일터로 향하고, 늦은 밤에야 집에 돌아오니 어쩌다 이웃과 마주친다 해도 가벼운 눈인사가
전부다. 복작복작 좁은 골목에서 이웃과 더불어 살던 것과 비교하면 달라도 한참 다른 모습이다. 어느덧
소박하고 정겹던 이웃사촌이라는 말은 추억 속의 언어가 되어버렸다.
 
지금 나의 이웃은 모습도 피부색도 다른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다. 처음에는 이 낯선 이웃들과
마주치는 것이 부담스러워 엘리베이터를 타는 일조차 꺼려졌다. 나는 옹졸하고 편협한 사고에 갇혀 이웃
간에 오가던 따뜻한 정을 잊고 있었다. 그러나 몇몇 이웃은 한결같이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네고 안부를
물었다. 언젠가 한번은 하얀 이를 내보이는 낯 설은 이웃 덕분에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요. 어려울 때 서로 돕고 살아야지….”
생각지도 못한 이웃에게서 들은 뜻밖의 말에 가슴이 뭉클했다. 일가친척 하나 없는 낯선 이국 땅에서
국적과 인종을 뛰어넘어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 올랐다. 그리고 추억
속에 살아 있는 나의 소중한 이웃들이 하나 둘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새삼 이웃이라는 말을 곱씹어 생각해 본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그 진가가 드러나고, 더불어 살아갈
때 삶이 더 풍성해진다. 단순히 가까이 살기 때문에 이웃이 된 사람들. 이들과 이웃사촌이 되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 그때처럼 꾸밈없이 진실한 마음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사람 냄새 나는 훈훈한 관계의 시작은
이웃의 변화가 아닌 나의 변화를 먼저 요구하고 있다. 나고 자란 나라, 언어, 문화, 피부색이며 눈동자
모양까지 모두 제 각각인 지금의 이웃들. 그들의 모습 사이로 한 가족과 같았던 옛 이웃들의 모습을
슬며시 끼워 넣어 본다. 사진을 넘겨 보듯 이웃들의 모습을 하나 둘 떠올려 보니 든든한 구원병이
이렇게나 많았나 하는 생각에 가난한 마음이 풍성해진다. 바로 지금, 나는 관습적인 습관에서 벗어나
이웃에게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가야 할 때임을 느끼고 있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홍안에서 노안으로>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이에 비해 늙어 보이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나이에 비해 어려 보여 난처했던 적도 꽤 있었고, 나이 들어서는 비교적 젊게 보니 마음이 흡족할 때도 있었다.20대 초반 제대 후 복학을 했을 때의 일이다. 경기도 안양시 어느 변두리를 걷고 있었는데, 불량하게 보이는 학생 세 명이 나에게 다가와 돈을 내놓으라고 했다. 한 명은 체격이 작았지만 뒤에 2명은 보통 체격...
이형만 외 2인
<고귀한 분실>  해마다 찬바람이 불어오고 단풍 꽃이 필 때면 우리 곁으로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이 있다. 이 고마운 손님은 산란기가 되어 수많은 어려움과 난관을 헤치고 목적지인 모천까지 무사히 회귀하는 연어들이다. 알을 낳기에 가장 좋은 장소를 찾아 먼 바다에서부터 거센 강줄기를 거슬러 하천 상류 얕은 물가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은 그야말로 눈물겹다. 연어에게 주어진 태생적 생존 본능이라 하더라도 돌아오는 길이 얼마나...
양현석 외 2인
  팔루스는 사진 모임에서 매년 세 네 차례 출사를 가는 곳이다. 팔루스는 미국 아이다호 주 서부 맞닿은 워싱턴주 동부에 위치한 밀밭 곡창지대이다. 구릉과 평원으로 끝없이 펼쳐진 이 곳의 아름다움은 한마디로 표현할 수가 없다. 새싹이 돋는 봄은 출렁이는 물결처럼 갓 태어난 푸른 밀들이 춤을 추고, 여름이 다가오면 노란 유채꽃들과 푸른 밀들이 축제를 벌이고, 가을엔 밀들이 베어진 대지가 마치 전라의 여인처럼 본래 대지의 아름다운...
박광일
그래도 봄은 온다 2024.03.25 (월)
경칩 지나 춘분으로가는 길모롱이 언덕 바지에불현듯 반짝이는보라 빛 고운 웃음소리긴 긴 겨울 잔인한 혹한 속에서그래도 봄은 온다고옹기 종기눈 녹은 양지녘에 모여 앉은여리고 작은 제비꽃 가족반짝이는 보라 빛 비단 실 입에 물고대지 위에 점점이희망이란 단어를 환하게 수 놓고 있다
임완숙
니스에서 3박 4일 2024.03.18 (월)
프롤로그쓰레기와 개똥이 널려 있는 지저분한 도시, 니스Nice의 첫 인상이다.트램 역에서 예약한 호텔로 걸어가는 길은 지중해의 아름다운 도시라는 환상에서 깨어나게 한다. 역 주변엔 노숙자와 개가 퍼 질러 앉아 있거나 누워 있어 개똥과 쓰레기 투성이고, 골목으로 들어갈수록 상황은 심각해 발걸음을 떼 놓을 때마다 주의가 필요하다.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기며 도착한 숙소는 소박하지만 깔끔하고 종업원은 친절하다. 프랑스 말을 알아들을 수는...
강은소
3월의 일기장 2024.03.18 (월)
펼쳐보니뒤척였던 적보다 구겨졌던 적이 더 많았군요먼지 투성이로 처박혔던 것보다 나았다고혼자 위로도 해보지만눈 보라 쳤던 겨울밤에 웅크리던 낱말 들다시 덮을까요?여전히 봄은 멀어 보였죠나무 밑 다람쥐가 조심스레 도토리를 오물거리네요가난한 위장을찌그러졌던 속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듬더군요햇살이푸른 햇살이돌돌 말려 올라간 꼬리에 머무네요잔잔하게 바라봅니다조용히 덮었어요그리고 너덜거리는 일기장을 햇살에...
유장원
오래된 마음 2024.03.15 (금)
1‘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는 푸시킨의 시가 서두에 놓인 기사였다. 퇴근을 앞둔 마지막 교정이었지만, 이미 야근이 계속된 터라 피곤이 몰려왔다. 고골이 푸시킨을 200년에 한번 나올법한 작가라고 치켜세운 부분에서는 집중력을 잃고 교정지 위에 빨간 펜으로 기다란 선을 긋고 말았다. 그러다 나의 관심을 끈 건 뜻밖에도 푸시킨의 아내였다. 푸시킨은 러시아 상류층 사이에서 미인으로 소문났던 나탈리아 니콜라예브나...
고현진
추억 (안녕) 2024.03.08 (금)
  김회자 / 사)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창가에 앉아  얼마나 많은 추억들이  비 소리에 섞여 흘러가는지    그리움이 강이 되어  가슴을 흔들어 놓고 한 줄기 빛처럼 비추는  지난날의 추억들이 퐁당퐁당 떨어진다   나를 과거로 이끄는  그리고 나를 현재로 되돌린 비의 속삭임이여 안녕.
김회자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