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깔깔대다 흐느끼다 침묵하다 생각한다.
내가 왜 여기 있을까.
집에서 밖에서 여행 중에도 늘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왜 여기 있을까.
혼자 있거나 누군가와 함께 할 때, 아름다운 자연 풍경 앞에서도 문득문득 알고 싶다.
내가 왜 여기 있을까.
거울 보면서, 약속 장소에서, 신혼 첫날밤 침대 위에서도 순간순간 궁금했다.
내가 왜 여기 있을까.
그에게 속옷과 와이셔츠 넥타이와 양복을 챙겨주고, 상을 차려주고 구두를 윤나게 닦아주고, 배웅할
때 키스까지 해주고도 매양 돌아서서 생각한다.
내가 왜 여기 있을까.
어쩌다 찾아간 바닷가, 유원지, 명산들, 이국에서도 그랬고, 처음 간 곳이 언젠가 와 보았던 것처럼
느껴질 때도 쭉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내가 왜 여기 있을까.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히히덕거리다가도 자주자주 생각한다. 전생에 나랑 연관 있던 사람인가, 어떤
관계였을까. 이생에서 이날 이 시간 만날 거라는 계획된 대본이라도 있었나.
내가 왜 여기 있을까.
넓고 넓은 세상 중에 왜 하필 이 나라에 태어나 이 동네, 이 집에서 살아갈까. 내 고향도, 내 집도 아닌
동네에서 낯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갈까.
내가 왜 여기 있을까.
시집에서 설거지 할 때, 이사 와서 짐 풀 때, 남의 집에 초대되었을 때, 호텔에서 대접받을 때,
전시회나 공연장에 갔을 때도 자연스레 생각한다.
내가 왜 여기 있을까.
하늘은 왜 내게 선물 같은 한 남자와 두 아들을 주고, 그들을 보살피며 끝까지 사랑토록 했을까. 매일
뒤바뀌는 꿈속에서도 번번이 그 생각을 한다.
내가 왜 여기 있을까.
달나라도, 별나라도, 바다 속도, 땅 속도 아닌, 그렇다고 극락도, 천국도, 지옥도 아닌, 이 지구의 땅
위에 존재하는 걸까. 그것도 인간의 모습으로.
내가 왜 여기 있을까.
어떤 땐 꿈이 현실 같고, 현실이 꿈같다. 꿈속에서도 현실처럼 선과 악이, 행불행이 존재하니까.
어쩌면, 이미 죽어서 이승의 삶을 회상하고 있는 중인지, 잠시 바람 쐬러 놀러 나온 건지도 모른다.
진짜 내 본체는 어디에 있을까.
내가 왜 여기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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