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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8-10-22 16:42

이영춘/ 캐나다 한국문협 고문
산 능선에 올라 앉아
산 아래 바닥을 생각한다
바닥은 하늘이 된다는 것을
오르지 못한 것들의 바닥은 뿌리가 되고
뿌리들은 땅의 기운이 된다는 것을
오늘 하늘 능선에 올라 와서야 비로소 알았다
어느 날 태백산에 올라와서야 알았다
환웅은 바닥을 행해 내려온 하늘의 아들이라는 것을
웅녀는 하늘을 받아 안은 땅의 딸이라는 것을
하늘과 땅 두 손뼉 마주쳐 불꽃 튀는 사랑으로
탄생된 제국,
제국은 곧 바닥의 뿌리들이 모여 사는 곳
바람의 숨결들이 모여 사는 곳
나는 오늘 그 바닥의 맨 밑바닥에서
하늘의 뿌리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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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 속의 입 2022.03.21 (월)
사과 같은 시간 속에서사과를 훔쳐 먹은 사과의 씨앗들이거품으로 떠돈다강 하구에 잠든 눈동자들이 눈을 뜨고 달려오는 밤,사과 같은 시간 속에서, 사과의 맨발 속에서말을 잃은 말의 군중들이하늘의 언어로 지상에 장사를 지낸다어느 천공의 눈동자들이 말을 잃고달려오는 말의 시간들,빗물에 쓸린 언어들의 혀가 빗물 속에 둥둥 떠 간다빈 허공에서 쏟아지는 활자들이, 언어들이수억 채의 집을 짓고, 가난을 짓고, 방황을 짓고집은 강물이 되어...
이영춘
바람의 외투 2021.11.1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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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춘
공터 2021.08.23 (월)
이영춘 / 캐나다 한국문협 고문무기력으로 떠오른 내가무기력으로 가라앉습니다천둥번개, 내 안의 내력으로가라앉습니다나는 내가 없는 존재를 찾아길을 떠납니다막다른 골목 끝에서천둥소리에 실려 오는 물방울 하나하얀 나비 날개로 날아오릅니다누가 앉았다 돌아간 흔적 없는 공터,웅덩이 같은 빈 발자국에빗방울이 고요히 내려와 앉았다가사라집니다 
이영춘
이영춘 / 캐나다 한국문협 고문냇가에 앉아 물소리 듣는다물소리에 귀가 열리고 귀가 젖는다물길이 돌부리에 걸린다풀뿌리에 걸린다걸린 물길 빙ㅡ빙 원 그리며 포말이 된다물길도 순리만은 아니었구나이 지상의 길에서 서로가 서로에게밀려나고 밀어내는 등(背) 뒤편 같은 것오늘 이 봄, 냇가에 앉아물길도 아프다는 것을 알았다소리 없는 소리로울며 간다는 것을 알았다
이영춘
눈 내리는 집 2021.03.01 (월)
이영춘 / 캐나다 한국문협 고문하늘이 내린다 적막이 내린다발 시린 들고양이 들창문에 몸 숨긴다어깨 시린 달, 발그레 눈 비비며처마 끝에 걸린다산모롱이 돌아 나간 우체부 발자국발자국마저 아득히 멀어진 집눈에 묻힌다 꽃 속에 묻힌다기침소리 고요로 잠든 집툇마루 끝에서 잠 청하던 삽살강아지부스스 꼬리 털고 일어나 인기척에 귀 세운다눈이 온다 천사가 온다세상 소리에 귀 닫은 집세한도 한 채 홀로 떠 있다
이영춘
눈 내리는 집 2020.12.2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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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박 붕대를 감고 있는 사람들,시간은 점점 헐거워지고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우유를 먹는다헐거워진 시간들이 온몸을 탱탱하게 당긴다생의 반나절을 탱탱하게 조이던 여름, 여름의 끝 별,물고기 비늘처럼 풀어진다물푸레 나뭇잎들이 별처럼 쏟아지는 밤,꽁꽁 묶였던 몸이 나른한 오후처럼 넘어간다바닥이 보이지 않는, 끝이 보이지 않는 저 지평선물속의 고기들은 다 죽어가고압박 붕대에 묶인 사람들이길 없는 길을 건너간다허공에서 잠든 길, 꽉...
이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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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