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심현숙
남편은 요양병원(Nursing Home)에서 2인실을 사용하고 있다. 그곳에서 거주하는 2년 9개월 동안 두 번 룸메이트가 바뀌었다. 우리는 남편이 병원에서 이곳으로 퇴원할 때부터 독실을 원했으나 여자환자들이 계속 들어오다 보니 2인실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동성끼리만 방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분은 인도사람이었는데 남편보다 6살 연상으로 조용하고 점잖은 사람이었다. 남편은 아는 체 할 상황이 아니었으나 딸과 나와는 인사도 하고 간혹 도와드리기도 했다. 2년을 함께 지냈지만 그 분은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 후 두 달 뒤 안쇼니라는 나이지리아 젊은 남자가 들어오게 되었다. 처음엔 피부색깔도 다르고 루게릭병 환자이다 보니 말을 할 수 없어 답답했다. 그러나 듣는 것은 정상이라 아이패드(ipad) 위에 부착된 카메라가 눈동자의 움직임을 인식하여 화면위에 단어를 만들고 문장을 형성하여 의사표현을 한다. 요즈음엔 문장을 음성으로 변환하기도 해서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한번은 "Thank you for flower"하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으나 건성으로 넘기고 남편만 돕고 있었더니 반복해 같은 말이 들려왔다. 그 때에서야 얼마 전 사다준 꽃에 대한 인사라는 걸 알아차리고 커튼을 젖히고 "You are welcome, my pleasure."라고 대꾸했다.
그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엔지니어로 근무했다고 한다. 벽에 걸려있는 사진을 보니 지금과는 대조적일정도로 신체도 건장했다. 내 아들보다는 두 살이 많지만 나는 지금 그를 아들처럼 생각하며 지낸다. 그가 크리스찬이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고 무척 반가웠다. 종교가 같아서인지 타민족인데도 쉽게 가까워졌다. 그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에게 두 아들과 딸이 있다는 사실이다. 두 명은 대학생이고 막내아들은 고등학생으로 잘 자라고 있다. 아내는 자기 나라에서 간호사로 일하지만 벌써 두 차례나 다녀갔다.
루게릭병은 잔인한 병이다. 다른 병은 점점 기력이 빠지고 정신이 없어져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난다면 이 병은 죽어가는 순간까지 정신이 맑아 자기 육체가 굳어가는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다. 모든 몸의 근육이 점차 마비되다 보니 폐 기능도 약해져 인공호흡기를 부착하게 되고 침을 삼키기도 어려워 입으로 흘러나온다. 나는 간혹 간호사의 손이 못 미칠 때는 그의 입에 석션을 해주거나 침을 닦아주기도 한다. 내가 원래 비위가 약해 이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못 되었는데 참으로 많이 변한 것 같다.
그는 우리에 비해 방문객이 많은 편이다. 처음엔 그들의 말만 믿고 형제가 많구나했는데 알고 보니 교회 교우들이었다. 우리는 남편 사고 후 거리상 가까운 곳으로 교회를 옮겨 남편이 모르는 교인들이 대부분이다. 간혹 병문안을 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으나 남편이 모르는 교우들이라 사양하곤 한다. 12년 동안 심방은 주로 담임목사님께서 해주셨는데 갑작스레 한국으로 떠나시고 나니 아직도 안정이 안 된다. 아마 담임목사님을 아들이나 형제보다 더 믿고 살아온 것 같다.
요즈음 사실 외롭다. 많이 외롭다. 외로움은 자기 자신이 만든 것 같지만 이민지에서, 더구나 삶의 석양에 있는 우리가 누구에게 아픔을 호소할 수 있겠는가. 누구나 아픔은 있으나 말하지 못하고 다가서지 못하는 건 교만하거나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만큼 상대에게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이다. ‘자기들도 힘들 텐데 내 고통까지 얹어준다면……’하는 송구스런 마음이 모든 언행을 멈추게 하고 달팽이마냥 혼자서 갇혀 살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데서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을 때가 있다. 딸과 나는 주말에 하루씩 번갈아가며 쉬는데 그 날은 딸이 아빠에게 가는 날이었다. 아빠와 하루를 보내고 온 딸은 눈가에 붉은 빛이 돌며 운 기색이 보였다. 아무 것도 묻지 못하고 있는 내게 딸은 안쇼니 말을 꺼냈다. 그가 눈으로 자꾸 자기 앞에 설치되어있는 아이패드를 가리켜 쳐다보았더니 눈으로 한자 한자를 찍어서 어렵게 단어를 만들고 있었다. 단어 하나하나가 모여 완성된 문장은 'Thank you for taking care of him.'이었다고 한다. 딸은 생각지도 못한 그 문장을 보고 눈물이 왈칵 쏟아져 화장실로 뛰어갔다고 한다. 나도 딸에게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앞을 가렸다. 주님이 마치 내게 하신 말씀 같았다. 지금까지 남편을 병수발한지 14년 동안 난 누구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시어머님 같았던 시이모님께서는 “애비한테 잘 해야 한다" 하셨고 친정식구들은 “너무 고생이 많다”라고 했을 뿐……. 아빠를 도와줘서, 남편을 도와줘서 ‘고맙다’는 이 말을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루게릭병 환자에게서, 더구나 타민족인 남편의 룸메이트에게서 듣는다는 건 꿈에도 상상 못했던 일이다. 하나님은 안쇼니를 통하여 우리를 위로해주셨고 칭찬해주셨다고 믿는다.
얼마 전 그는 우리 가족이 힘들어 보였는지 “우리가 불 가운데 있을 때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며 딸에게 용기를 주었다고 한다. 성한 우리가 그를 위로해줘야 하는데 반대가 되어 미안했다. 그는 참 신앙인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들이다. 남을 돕는다는 건 진실 된 마음이지 환경이 아님을 안쇼니를 통하여 다시 깨달았다. 그래도 딸이 안쇼니에게 힘을 준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We are friend"라고 그가 문장으로 표현했을 때 딸은 “We are family, we have same father"라고 말해줘서 아주 좋아하며 활짝 웃었다한다.
그가 앞으로 점점 육체적인 고통이 심해질 텐데, 그리고 점점 슬퍼질 텐데 아픔을 덜 느끼고 덜 슬펐으면 좋겠다. 이 밤도 남편과 안쇼니가 편안하고 무사하게 잠 잘 수 있기를 기도하는 심정으로 나도 한자 한자 자판을 두드리며 이 글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의 환한 모습을 오래오래 볼 수 있기를 기원한다. “사랑한다. 안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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