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먹는 유혹이 때로는 죽음보다 강하다.

박병준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8-03-05 13:29

독자기고 / 늘산 박병준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필요에 따라 존재한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모기나 파리도 있어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사는 써리에는 야생동물들이 많이 산다. 그 중에 하나가 청설모다.
이놈들도 제 방식으로 살아가는 동물이겠지만 나에게는 성가신 존재 중에 하나다.
 
과일을 따먹는 것을 시작으로 씨로 넣어 놓은 콩도 파내 먹으며 내가 좋아하는 라즈베리 딸기도 먹어 치우기 때문이다.
 
지금 놈들과 지혜 겨루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담장 위를 뛰어 다니기에 올가미로 잡기도 하고 틀을 놓기도 한다.
틀은 철사로 되어 있고 안쪽에 땅콩을 갈아 넣어 놓으면 냄새를 맡고 들어가다가 발판을 밟을 때 문이 닫히게 되어 있는 함정이다.
 
아침에 무심코 건너다보는데 무엇이 움직이는 게 보인다. 얼른 망원경으로 살피니 청설모 한 마리가 틀에 와서 서성거린다.
맛있는 땅콩냄새를 맡았는데 들여다보니 한쪽이 열려 있다.
청설모도 제 나름대로 생각하는 듯하다.
‘이것은 내가 늘 먹이를 찾아 먹는 환경과는 완전히 다르다. 철장 안에 먹이라----. 나무에 달린 것을 따먹거나 익어 떨어진 것을 주워 먹는 것이 정상인데---’
그런데 고소한 냄새가 오금을 저리게 하고 있다.
 
조심스럽게 살펴보고 있는 모양이 약간 불안한 기색.
한 바퀴 돌아보고는 담장위로 올라간다.
한참 가만히 있더니 다시 내려선다.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옳지 잡히는구나. 숨을 죽이며 바라보는데 한참 있다가 어럽쇼 다시 돌아 나와 담장으로 올라간다. 바로 앞에 맛있는 먹이를 두고 돌아 나오다니.
조심스럽기가 보통이 아니다. 숨을 죽이고 바라보는 재미도 보통이 아니다.
 
한 번 더 오르내리기를 반복한 후에 또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드디어 덜커덩 문이 닫혔다. 후닥닥 놀라 뛰어 보는데 그의 생은 이미 거기서 끝난 것이다.
먹는 유혹이 죽음보다 더 강한 걸 어쩌랴.
 
고위 공직자가 먹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당하는 걸 수없이 보게 된다. 장관 후보자가 추천되어 청문회에 이르면 위장 전입이다 교통법 위반이다 논문 표절이다 문제가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 흠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도리어 이상한 눈으로 보는 시대가 되지 않았는가 한다.
모든 생물이 본능적으로 살아간다면 인간은 본능적인 유혹을 넘어 탐욕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린다. 진정 끝을 모르는 탐욕이다.
안에서는 몰랐는데 밖에 나와서 바라보니 보이는 것이다.
 
어떤 부서의 고위 공직자들이 단체로 해외 출장을 갔다고 한다.
모두들 돌아 올 때 부인들을 위하여 선물을 준비해 왔는데 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아왔고 출장비 남은 것을 반납하였다 한다. 그런데 부인들이 모여 담소 하다가 선물을 받지 못한 부인이 이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융통성 없는 남편과 살기 싫다고 이혼을 했다는 소식이다.
부패 공화국, 우리 공직 사회에 아직 청백리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한때 나는 인간의 가장 강력한 본능이라 할 수 있는 식욕과 성욕, 어느 욕구가 더 강력할까 생각해 본적이 있다.
먹는 게 우선이라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성이 우선이라 한다.
흉년에는 먹는 게 우선이라 하는 게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Sex 할 때에는 먹는 게 생각나지 않고 식사 중에는 그 생각이 나니 성이 우선이라고 하면 어떨까.
그런데 이 가설이 요즈음 정리 되었다.
먹는 게 우선이고 또 마지막까지 남는다는 걸 발견했다.
 
나에게는 100세가 되신 어머님이 계시는데 지금 Care Home에서 생활 하신다.
이틀에 한번쯤 방문하는데 식사를 하거나 누어서 잠자는 게 일이다.
성이란 그의 생애에서 잊혀진 지 아득히 오래 되었다.
 
결국 우리는 먹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고 배를 채우고 나서 힘이 생기면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란 결론을 얻었다.
 
세상살이란 유혹의 바다를 헤엄쳐 나가는 것과 같다.
땅콩 냄새에 목숨을 거는 청설모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마스크 인생 2023.12.18 (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COVID-19) 팬데믹이 2020년 1월 30일부터 시작되었다. 세계 보건 기구(WHO)에서는 3년 4개월 만인 지난 2023년 5월 5일에 팬데믹의 종식을 선언하였다. 이제 COVID-19은 독감과 같은 엔데믹(풍토병)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 COVID-19은 변이를 일으키며 감염을 일으키고 있어,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을 계속 개발, 접종하고 있다.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착용하게 되었다. 팬데믹 초기에 약국이나...
김현옥
가을의 그림자 2023.12.18 (월)
가을은 차츰 가을다워저 가고 있다세월을 견디어 나가기 위해자연은 버리며 산다가을 바람이 일면남길 것과 버릴 것으로가을 비가 내리면가질 것과 보낼 것으로가을은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아름다운 가을의 멋과소중했던 가을의 추억까지도아낌없이 떠나보내며가을의 그림자는 점점 익어 만 가는데난아무것도 갖지 못하는 줄 뻔히 알면서늘 청춘인 줄 착각하고늘 건강한 줄 오해하고늘 당연한 줄 생각하며허전하다며, 부족하다며, 비어 있다며뭔가...
나영표
길을 가는 사람들 2023.12.11 (월)
영원에서 와서 영원으로 가는무한의 시간이어라잠시 다녀가는 생명들이오가던 길모퉁이에서 낙엽처럼 모였어라반갑게 즐겁게웃음을 나누고 꿈을 나누고 그 마음 우울할 때는슬픔과 회포를 나누고어느 날그 인연 다 하는 갈림길에 다다르면조용히 손 흔들며추억 한두 개 가슴에 보듬고 가는 길 친구 주고받은 우정에 감사하며서로의 행복을 빌어주며약속하지 못하는 내일의 어느 길목에또 다른 만남을 기대하며우리에겐 좀 더 가야 할 각자의...
안봉자
아버지의 뒷모습 2023.12.11 (월)
 딸아이를 만나러 시애틀에 갔다. 거의 일 년 만이다. 마중 나온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내 품 안으로 파고든다. 어색하게 끌어안으며 살가운 냄새를 맡는다. 새로 이사한 집을 둘러본다. 이 많은 짐을 혼자 싸고 풀었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찡하다. 홀로 살아도 갖추어야 할 것은 한 가족이 사는 것과 다름이 없다. 아직도 어린애 같이 느껴지는 딸아이가 또 다른 나라에서 직장 다니며, 잘 적응하는 것이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
민정희
벌거숭이 산 2023.12.04 (월)
캐나다 로키에는 세 자매 봉이 다정하게 솟아있습니다. 요정이 살 것 같은 아름다운 산입니다. 세 자매 봉에는 일 년 내내 하얀 눈이 덮여 하늘에 닿을 듯했습니다. 하지만,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세 자매 봉 꼭대기에는 더 이상 눈이 없습니다. 이제 세 자매 봉은 덩그러니 벌거벗은 바위산이 되어버렸습니다.“아이 추워! 언니들!”막내는 포근하던 눈옷이 벗겨지자 추웠습니다. 두꺼운 눈옷을 입고 있을 때는 춥지 않았습니다. 눈 속은 참 따뜻하고...
이정순
솔방울의 추억 2023.12.04 (월)
카톨릭을 국교로 하는 캐나다의 가장 큰 국경일은 당연히 크리스마스이다.다민족 다문화 국가이기 때문에 종교의 자유에 따른 다양한 종교가 공존해 크리스마스보다만민의 신과 같은 어머니를 기리는 마더스데이가 실질적으로는 더 많은 국민들이 기리는날이기는 하다.한 해를 마무리하며 예수님의 탄생을 기리는 국경일이라 크리스마스 트리 등 많은 조명,장식과 선물, 음식, 종교적 문화가 발전되어 온 글로벌 축일이다.솔방울도 크리스마스 트리와...
이은세
자화상 2023.12.04 (월)
1 비춰보면스스로만 늘 추해 보이는모습이 있었다흰 여백으로 가득 찬언덕 위생명과 목숨이라는 두 인간이겹치듯 어른거렸고시작도 끝도 없는 기호들이표면에 기재되었다가물가물 아지랑이로피어나고 있었다 2 허기진 배물 채우듯냄새도 색깔도 없었다스스로에 대한 경고나결심 따위는 팽개치고오로지 자신에게만한없이 너그러워 보이는 그곳늘노릿한 바나나 향이 배어 있어서두통약을 찾다가결국 엉뚱한 소화제를 찾기도...
하태린
숨죽이고 2023.11.27 (월)
비는 내리고까맣게 어두움이 몰려왔을 때에도 나는불을 캐지 않으리창구멍 어디에도 머리카락 한 올을 보이지 않으리숨소리도 죽이고나는 꼭꼭 숨으리 그가 애타게 나를 찾고 찾아도그래도 나는 미동도 않으리 어느 날 그가 말하면몰랐다고 말하리정말 몰랐다고 말하리 당신도 애타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리더 탈 것 없어 하얗게 재가 되게 그냥 두리눈 헐기며 앙탈도 하리 세월의 옷자락이 너풀거릴 때그때에야 말하리한없이...
강숙려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