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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후회하는 것 중 한 가지

김난호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6-03-24 15:56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버스에서 내린 젊은이들이 마구 뛴다. 나도 따라 뛰었다. 스카이트레인을 타자마자 문이 닫혔다. 나의 이 무리한 달음박질이 성공한 날이다. 거리도 멀고 주차비도 부담되어 학교 갈 때마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매일 아침 이 풍경 속의 한사람이 되어보면 묘한 착각에 빠진다. 나도 저 젊은이들과 같은 무리가 된 것 같다.

저기 철길 아래의 강변에 공원이 있었구나. 이른 아침 낚시꾼이 벌써 자리를 잡았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흙탕물을 잔뜩 바른 누렁개는 아침 운동 중인가보다. 창밖과 차 안을 왔다 갔다 하며 스마트폰에 빠진 젊은이들과 또 합류한다. 그러던 중 유난히 높이 솟은 젊은이의 앉은키에 눈이 멈추었다. 그는 이십 대쯤 돼 보이는 흑인이었다.   이 시대에스마트폰도 안 가진 특별한 젊은이였다. 추운 한겨울에 반소매셔츠뿐 양말도 없었다. 양팔을 겨드랑이 밑에 끼우고 추위를 이겨보려 애쓰고 있었다. 돌도 녹여 먹는다는 이십 대. 한창 혈기 넘치는 청년의 저 정도 힘겨운 몸부림에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시간은 자꾸 가고 차에서 내리기 전에 무언가 저 청년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데… . 옆에 앉은 덩치 큰 백인 아가씨가 옷을 벗는다. 누구는 더워서 옷을 벗고 누구는 추위에 떨고 있다고 이 불평등한 순간을 아쉬워할 때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벗어진 외투가 청년에게 건네졌다. 고맙다는 말을 영어로 하는 거 보니 의사 표현은 자유로운 것 같았다. 많은 사람이 안도의 한숨을 내 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뉴 웨스트민스터 역에서 청년은 내렸다. 나는 그 청년에게 시선을 뒤쫓지 않았다. 나의 시선을 끊음으로써 좀 전의 특별했던 상황도 마무리 지어주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 그 청년을 평범 속에 파묻힌 괴짜 한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다. 페이스북을 창업하기 전, 하버드 학생 시절 마크는 한 겨울에도 양말 없이 맨발로 다니는 괴짜였다고 한다. 그는 지금 세상을 바꾼다고 가진 재산 아흔아홉을 모두 사회에 기부한 용기 있는 젊은이가 되었다. 나는 내 옆에서 추위에 떠는 사람에게 온기 하나 나눌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내 외투와 양말은 작아서 쓸모가 없을 것이고 주머니 속의 현금을 만지작 거렸었다. 혹시나 돈을 내밀면 거절하진 않을까 화를 내진 않을까 망설였었다.    

추운 겨울이 올 때마다 내 기억에 떠오르는 것은 진정 따뜻한 이웃이 되길 거부했던 후회인지 그 상황이 내가 아니었음을 안도하는 교만인지 모르겠다. 누군가 그랬다. 남을 돕는 것 중 일부는 교만이라고. 신이 정신적 영역을 관장한다면 신체적 영역은 같이 어울려 사는 사람의 몫이 아닐까 한다. 흔히 아플 때 누가 물이라도 한 그릇 떠다 주면 살아날 거 같다는 말을 한다. 아주 위중한 상황이 아니면 물 한 그릇이야 떠다 먹을 수 있겠지만 누가 나를 좀 위로해 주고 보듬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한다. 만약 이런 상황이 다시 내게 닥친다면 거절을 당해도 화를 낸다 해도 나는 외투를 벗어 건네주겠다. 그것이 교만의 일부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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