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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단상(斷想)

김시극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5-04-18 11:20

한국문인협회 캐나다 밴쿠버 지부 회원작/시
새떼들 어둠속으로 돌아가고
하늘은 휑하니 더 넓어지다
흩어졌던 무덤들이 모여 앉는다
옹기종기
별들은 웃음 풀어내기 한참 전에
눈물을 닦을 줄도 안다
 
홀로 서서 있을 때 나는 두리번거린다
홀로 앉아 있을 때 그리움이 들린다
홀로 누워 있을 때 먼 곳이 보인다
홀로 있을 때 그녀 뒷모습 아득히 생생하다
 
너는 죽음을 얼마나 아느냐
저승에 가기 전 먼저 간 죽음을 만나보라
늦은 저녁이면
먼저 가 있는 죽은 자와 마주앉아보라
죽음은 네 생의 영원한 후견인(後見人)
그리고 절대 독재자
너의 모든 것은
죽음이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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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18.12.14 (금)
자목련 핀다고 하지만핀다는 것은언제나 가슴 설레는 것만은 아니다그 꽃잎 떨어졌을 때 그 님은 눈시울 적시겠지비가 온다고 하지만온다는 것은언제나 기쁜 것만은 아니다다리 밑 낡은 텐트 안에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갈바람에 먼 길 떠나는 고엽(枯葉)이라 하지만선뜩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늘 가슴 도려내는 것만은 아니다칼날 북풍에 한겨울 버티고 선, 저 나무들을 보라동지섣달 하루해가 어둠에 묻힌다고 하지만묻힌다는 것은항상 슬픈 것만은...
김시극
햇볕 좋은날 2018.07.30 (월)
돌아가는 세탁기가 멈췄다떠그덕떠그덕, 삐- 삐-멈춘다는 것은무엇을 끝내고 쉰다는 것젖은 빨래야 햇볕에 말린다 해도젖은 그대 가슴 어디에 걸어둘꼬바람의 날개 밑에허공의 외딴 지붕위에젖은 빨래는 제 몸을 쥐어짜며보송보송 가벼워진다가벼워지는 빨래라야멈춰보는 삶이라야그대여, 너와 나의 사랑은그렇지, 젖은 빨래 같은 것그냥 젖은 옷 휘감고젖은 가슴 말리기에햇볕 좋은날.
김시극
어둠이 밝혀내는 황홀한 세상을그대, 보셨나요.실낱같은 잔뿌리들이발끝을 함께 모아캄캄한 땅속, 어미의 자궁벽을 허물고 나와어둠 속에서 노래하는 희한한 세상을그대, 들으셨나요.이때풀꽃과 나무의 꽃들은흔들리기 시작합니다천천히 그것도 아주 느리게보드라운 바람에도낡은 햇살에도새벽을 적시는 봄비에도그리고피는 꽃은머리는 하늘을 이고떨어지는 꽃은온몸을 뿌리 쪽으로그래서꽃은 뿌리의 자식, 어둠의 후손어둠이 밝음을 삼키는 이...
김시극
헤매는 바람 2017.11.24 (금)
가끔헤매었다, 너는해 뜰 무렵이나혹은 저녁노을이 까무러칠 때 간혹싸돌아다녔다개똥풀꽃 흐드러지게 피어있는봄철 들판에 때때로머뭇거렸다미친 듯 장대비 쏟아지고번개가 하늘을 찢어발기는 그런 대낮 한때너는, 어리버리 갈 곳 잊었다 지랄같은 갈바람 헐떡이며 달려와볼이 붉은 계집아이 사타구니같은 잎들을잡아채 삼십육계 할 때도, 너는마냥 헤매었다 그러고 보면헤매고 싸돌아다니는, 너는그림자 없는 바람성자(聖者)렷다....
김시극
7 월의 바다에서 2017.07.15 (토)
7월의 바다는 촐랑대는 가시내들바라보면 다만 우주의 물방울 하나바르게 푸르게 살면 다시 오려나 여기!바퀴는 다 망가지고 해저에 갈아 앉은 수레바람 속을 날던 말(馬)들은 어디 갔나?바로 보면 다만 여기인 걸바람이 다 지나간 뒤 수평선을 태우는 불의 바다바랑을 다시 비워라 향긋한 백팔번뇌를 채워주마바짓가랑이를 다시 올려라 파도가 밀려온다바가지를 비우고 다시 채워라 술의 노래를 불러라바라면 다시 시작해 볼 일 “어쩔 수 없다“라는...
김시극
샛바람 강 건너온다눈비 젖던 나뭇가지에수상하게 올라탄다꽃몽울 쌔근쌔근뽀시시 웃음 한창마파람 논밭 질러온다낯익은 산과 들판은짙푸르게 차려입고밤늦도록 무도회장으로갈바람 산 넘어 불어온다낙엽 지는 밤길에볼이 붉은 동자승(童子僧) 서넛밤새워 걷고 걷고 또 걸어새벽녘 아케론* 강기슭에 이르려나높바람 절벽아래 달려온다계곡에 부러 나는 적설(積雪)깊어가는 하얀 침묵, 술 취한 바람이침묵을 잘근잘근 씹는다바람은 오고바람은...
김시극
모로 가는 바람 2016.11.19 (토)
밤늦게 내리는 하얀 빗줄기안쓰러워바람은 비의 허리를 얼싸안고어둠 흥건한 골목 끝, 불 꺼진 창젖은 창문 앞에 다다른다.몇 개 남은 단풍잎애처로워바람은 잎 하나 물고재 넘어 동떨어진 마실, 고가시내 집삽짝 안으로 살랑살랑 들어선다.오늘 밤도지나간 세월의 촛불을 끈다바람, 모로 가는 바람 한 오큼이먼저 와서 눕는다.그리워 하지말자.산다는 것은 그리움을 견디는 것한 세상 그리움이 지천에 깔렸다한들그리워 하지말자.
김시극
어느 여름 한낮 2016.07.22 (금)
숲속 그늘에 앉았다바람과 주거니 받거니 낮술, 서너 사발(沙鉢) 비우는데길 잃은 소낙비에 그만 들켰다 젖은 옷 벗어잔솔가지에 걸어두고벗을 것 더없는 몸 하여,이름 없는 어느 무덤 옆 잔디위에 누웠다까마귀 서너 마리노송나무 우듬지에 앉아서 까으악 까악 하시는 말씀“보라, 저기 저 푸짐한 먹거리!”            건너편 산 중턱무르익은 7월의 햇볕아래검은 모자 쓴 교회당 종탑 하나녹 슨 조종(弔鐘)은...
김시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