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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옹알이 2016.04.09 (토)
나의 껍질을 벗겨다오온몸을 뒤집지는 말아다오가슴에 품은 태양 하나 아직도 식지 않았거늘나의 껍질을 찢어다오심장은 터트리지 말아다오뒤집어 아래위를 익혀다오가슴 한구석에 뜬 달 기울지 않았는데나의 껍질을 부셔다오목마르다! 우유 한잔 부어다오마음대로 뒤적이며 주물러 다오팔, 다리, 가슴, 아무데나나의 껍질을 산산조각 내다오.식초와 소금을 조금 넣던지반쯤은 실신토록 그래도 살아남아야 하는데끓는 물속에서나의 껍질을 벗기지...
김시극
알고 왔느냐 지구에 내리면 녹는다는 것을녹으면 없어진다는 것을아홉 달 어두운 벽을 헐어버린 너바람가슴에 안겨 펄 - 펄 - 흩날리며지구에 내려오는 그 까닭을 작은 햇살에도 숨소리 한번 없이 녹아버리는그래도 너에겐 절망의 눈빛 어디에도 없구나녹아 없어지는 것이 어디 너 하나뿐이겠느냐 온몸을 찢어서 물이 되는 너물은 강으로 흐르고그 강물 다시 흘러 바다를 채우는데 사라진다는 것은영원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 너는...
김시극
가위바위보 2015.08.22 (토)
삼세판두 번 먼저 이기면 게임 끝내 어릴 적 한때가위바위보나는 시퍼렇게 날 선 가위를 냈지그는 부서지기 싫어하는 바위를 내밀었다 내 젊은 날 한때가위바위보나는 유품(遺品)으로 접어뒀던 보자기 하나 판 한복판에 깔았지그는 벼랑 끝에 선 바위 하나 뽑아서 판 모서리에 내동댕이쳤다 내 초로(初老)의 한때가위바위보나는 아랫마을 고물상에서 산 녹 쓴 가위를 내밀었지그는 어느 패장(敗將)이 버리고 간 단도(短刀)같은 가위를...
김시극
저녁 단상(斷想) 2015.04.18 (토)
새떼들 어둠속으로 돌아가고하늘은 휑하니 더 넓어지다흩어졌던 무덤들이 모여 앉는다옹기종기별들은 웃음 풀어내기 한참 전에눈물을 닦을 줄도 안다 홀로 서서 있을 때 나는 두리번거린다홀로 앉아 있을 때 그리움이 들린다홀로 누워 있을 때 먼 곳이 보인다홀로 있을 때 그녀 뒷모습 아득히 생생하다 너는 죽음을 얼마나 아느냐저승에 가기 전 먼저 간 죽음을 만나보라늦은 저녁이면먼저 가 있는 죽은 자와 마주앉아보라죽음은 네 생의...
김시극
속수무책 2015.01.09 (금)
단 한 번의 착지(着地)였다 방바닥이 좌우로 울퉁불퉁 파도치고천정이 아래위로 떴다 앉았다 날아다니는  이 속수무책(束手無策)의 세상에머리 먼저 내밀었으니 내 이번 생애는처음부터 속수무책 이었다 잘못 내렸다 삼만 번의 태양이 뜨고삼만 번의 별들이 알알이 지고속수무책에 기대서서속수무책을 버티고  땅에서 안개가 솟아올라 땅거죽을 모두 적셨고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코에 숨을 불어넣으셨다니따 먹으면 안...
김시극
석간수(石間水) 2014.10.10 (금)
나는 무기징역(無期懲役) 죄수(罪囚)였다고향(故鄕)을 잃어버린 죄(罪)  지하(地下) 감방(監房)에서 간밤에 탈출(脫出)했다몇몇 깜빵 동료(同僚)와 함께 돌 틈이다첫 탈출(脫出)의 탄성(歎聲) 울린 새벽 나는 돌바닥에 등 대고 누워버렸다 뚫어진 하늘에 술렁대는 나뭇잎 물결소리잎 새 사이로 진검(眞劍)을 내리 치는 아침햇살 그 햇살이 무서웠다 끝 가는데 까지 흘러야!  목숨은 여러 개 여차(如此)하면 서너 개쯤 버려도 지금은 바다를...
김시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