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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4-12-12 13:26

한국문인협회 캐나다 밴쿠버 지부 회원작/시
한 움큼씩 제 살점 뜯어내며 혹한 속에, 고독 속에
깃발 없는 깃대로 남기로 한
12월의 나무들

이마 찢기고 등골 휘어지도록 소용돌이치는 역류에
알몸으로 맞서기로 한
산란기(産卵期) 연어떼

죽어야 사는 삶
버려야 얻는 생명
그 가증할 삶의 절정

날이 저문다
노을은 그러나 용암처럼 끓어 오른다
마그마 같은 석양(夕陽)이 절정에서 스스로 침몰한다

밤새도록
암흑 속에서, 침묵 속에서 조양(朝陽)을 산란한다
산불처럼 피어날 12월의 나무들

어느덧 세월강 후미진 기슭
주마등 스치듯 물결따라 다다른 황혼기(黃昏期)
나도
석양에 얼굴 들 수 없는 자
지린 막장에서 정금(精金) 같은 황금기(黃金期)를 캐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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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혼(招魂) 2020.10.05 (월)
자정이 훨씬 지난 시간기어이 창가에 나앉는다숨죽은 거리, 눈익은 정적이애잔하다보고 싶다*삼도천에 재 뿌리고 자넬 보내던 날어이없게도 나는 아무것도 몰랐었다이렇게 오랜 시간 자넨 돌아오지 않는데도두 손 모으고 고백해야 할 우리의 만신창이 송가(頌歌),묵은 약속으로 기다리고 있지 않느냐엎드려 쏟아내야 할 우리의 선혈같은 감사,은빛 봇물로 차오르고 있지 않느냐돌아오라이승과 저승이래야겨우 구만리한 번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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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리기 2019.12.11 (수)
추적추적 젖어드는 누른 11월씻어도 닦아내어도 초록은 멀기만 하다시간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잿빛 버거운 하늘과질퍽거리기만 하는 길 달릴수록찢겨 나딩구는 것은 가엾은 수평이다 곧추세워져 덮쳐오는 것은 경건한 수직이다수평과 수직 쪼개질 줄 알면서그러나 만나야 하는 그 가증할공존내 안에 병든 cross녹슨 못 자국그 이름으로 남발한 부도 수표들 구천을 떠도는 헐벗은 유기견들남은 삶을 산다는 건 새벽 서리 하얗게...
백철현
터널 2019.07.09 (화)
멈출 수 없는 곳이기에 그저 달려왔을 뿐이다눈뜬장님매연으로 충전된 발정 난 박쥐들삶은 그렇게 눈물 없이도 흘러갔었다한 때는목련 떨어지는 소리가 지축을 울렸고발아래 짓밟힌 꽃잎들이 아프다 진물 흘렸다또 한 때는  밤으로 달려온 열차이마엔 화인처럼 허연 서릿발눈물처럼 흘러내려라다시는 썩지 않을 소금기 머금은눈물로 흘러내려라시내를 이루고호수를 만들고그 위에 띄워 본 뭉게구름나도 꿈처럼 푸른 땀 닦으며 당신의칠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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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하늘          먹구름으로 고인 체흐르지 못했던 시간들마침내 헝클어진 머리채 풀어헤치며 철지난 소나기로 오열한다아무도 없는 겨울바다이간질하는 칼바람에 휘말려 칼춤을 추는 날 선 비수들허연 거품 물고 파도로 침몰한다 만신창이 온몸으로그러나 바다는 아우성하는 아픔들을 말없이 품어 담는 어미의 가슴이다열 길 물속,자궁 속 같은 그 적막의 한 가운데서 가시를 면류관으로 잉태하는눈멀고...
백철현
하늘길 2018.10.11 (목)
아스라이마른 가지 사이로또 그 길은 열리고마침내 하늘을 동강 내고 홍수처럼 그대에게 이른다태평양이야 한걸음에 건너뛸 수 있지만정작 집 앞 실개천은 입술 깨물어도 넘을 수가 없구나어느덧 낙엽 뒹굴고속 빈 강정 같은 뼈마디 저려 올 때면실개천은 메말라 터진 혓바닥 드러내지만하늘 그 길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나니어쩔 줄 몰라 어쩔 줄 몰라나는 정말 어찌할 줄을 몰라해 저문 한강 둔치서러운 발바닥만 감싸 쥐고 앉았다.
백철현
재두루미 2018.06.25 (월)
백철현 / 밴쿠버 문인협회2018년 1월 31일재의 수요일재를 덮어쓴다는 건죄를 덮어쓴다는 거다죄를 덮어쓴다는 건사랑을 완성한다는 거다먼저 보냈었다사랑했던 그들차마 재를 덮어썼었다눈물로기도로오래 참음으로재를 덮어썼었다해 저문 첨탑 꼭대기깃발 없는 깃대처럼눈먼 사랑이 처연하다들꽃 무리 둔턱에재두루미 한 마리석양빛에 긴 목덜미눈이 부시다거룩하다엄마를 닮아있다.
백철현
겨울 나그네 2018.01.2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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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철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