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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아홉 번째 이야기 – 전쟁에 져도 보험이 있다?

이정운 변호사 piercejlee@hot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2-05-27 21:09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남서쪽에 벵쿨루 (Bengkulu) 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이곳은 1685년부터 영국의 동인도 회사가 후추무역을 하던 곳인데요. 1714년 영국군이 세운 말보로 요새 (Fort Marlborough) 는 아직 관광명소로 남아있습니다. 


말보로 요새와 관련된 유명한 판례가 하나 있는데요. 바로 보험법에서 빼놓을 수 없는 Carter v. Boehm 라는 판례입니다. 


1759년 10월, 당시 말보로 요새의 수비를 맡고 있던 조지 카터 (George Carter) 총독의 형제인 로져 카터 (Roger Carter) 는 카터 총독을 위해 보험을 하나 들어주었습니다. 이 보험의 내용이 대단히 흥미로웠는데요. 바로 말보로 요새가 1년 안에 프랑스군에게 점령된다면 그 피해를 보상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로져 카터는 왜 이런 보험에 가입한 것이었을까요? 그 이유는 당시 세계정세를 보면 알 수 있는데요. 1756년, 유럽의 열강들은 둘로 갈라져 7년 동안의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이 전쟁은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때 프로이센 (Preussen) 에게 슐레지엔 (Schlesien) 지역을 뺏긴 합스부르크 (Hapsburg) 가의 마리아 테레지아 (Mari’a There’sia) 가 잃어버린 땅을 수복하기 위해 일으켰지만, 나중에는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식민지 쟁탈전으로 발전하였지요. 


7년 전쟁이 한창이던 1760년 3월, 말보로 요새는 프랑스군에게 점령되었고 로져 카터는 보험업자인 찰스 보우힘 (Charles Boehm) 에게 보험금을 청구하였습니다. 하지만 보우힘은 카터 총독이 프랑스군의 공격 가능성과 요새의 취약함을 제대로 고지해주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습니다. 


결국, 분쟁은 법원으로 향하게 되었고 판결을 맡은 맨스필드 판사 (Lord Mansfield) 는 보험계약의 당사자는 반드시 상대방에게 중요한 사실을 숨김없이 알려야 의무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보험법상 최대선의 (utmost good faith, uberrimae fidei) 의 원칙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맨스필드 판사는 카터 총독이 최대선의의 원칙을 어기지 않았다고 판결했는데요. 이는 당시 7년 전쟁이 한창 중이던 상황으로 비추어 보아 말보로 요새가 프랑스군의 공격을 받을 것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누구에게나 공개된 정보는 굳이 밝힐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또한, 말보로 요새가 프랑스군의 공격에 취약하다는 점을 충분히 고지하지 않은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는데요. 이는 보험에 가입하는 행위자체가 취약성을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요새가 충분히 견고하다면 보험차체에 가입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지요. 


이 판례는 보험법상 아주 큰 의미가 있기도 하지만 당시의 세계정세를 엿볼 수 있어 더 흥미롭습니다. 



*법적 책임면제고지: 이 글은 법률 조언이 아니며 저자는 이 글에 대한 일체의 법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법률 조언이 필요하신 분은 변호사를 찾으십시오. 







이정운 변호사의 풀어쓴 캐나다법 이야기
칼럼니스트: 이정운 변호사
  • UBC 로스쿨 졸업
  • UBC 경제학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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