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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두 번째 이야기 – 시대 속에 사라진 바다의 관습

이정운 변호사 piercejlee@hot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2-02-06 05:09

1883년 영국에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공해 상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살인의 목적이 식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그 해 5월이었습니다. 호주의 한 변호사가 영국에서 미뇨네트(Mignonette)라는 이름의 요트를 구매했습니다. 그리고 호주로 가져오기 위해 4명의 선원을 고용해 항해를 부탁했습니다. 이들의 이름은 두들리 (Dudley), 스티븐스 (Stephens), 브룩스 (Brooks), 파커 (Parker)였습니다. 두들리는 선장이었고 파커는 이제 갓 17세가 된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4명의 선원을 태우고 호주로 향하던 미뇨네트호는 7월 5일 남대서양 한가운데서 큰 파도를 만나 침몰했습니다. 다행히 선원들은 침몰하기 전에 구명정에 옮겨 타서 목숨은 건졌지만 가장 가까운 육지는 1,00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고, 길이 4미터 남짓의 조악한 배에 식량이라곤 순무(turnip)통조림 2개밖에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이들은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였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배고픔과 목마름이었습니다. 통조림은 곧 바닥이 났습니다. 다행히 운 좋게 바다거북이 한 마리를 잡아 거북이의 피로 목마름을 달래고 고기로 배고픔을 달랬지만 이마저도 얼마 가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소변과 바닷물을 마셔보았지만, 갈증은 점점 심해졌습니다.

 

조난된 지 10일이 지나고 구조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이들은 생존을 위한 극단적인 수단을 떠올렸습니다. 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었습니다. 때마침 가장 어린 파커가 탈수증세로 쓰려졌습니다. 파커가 정신을 잃자 남은 이들의 고민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20일째가 되던 날 두들리와 스티븐스는 브룩스의 반대를 무릅쓰고 파커의 목숨을 거두기로 했습니다. 저절로 죽을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습니다. 두들리는 파커를 위해 기도를 하고 주머니칼을 이용해 파커의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파커의 피와 살로 목숨을 연명했습니다. 이 비극적인 일은 이들이 구조되기 불과 5일 전에 일어났습니다.

 

구조된 두들리와 스티븐스는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담담히 밝혔습니다. 자신들이 처벌될 거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이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바다의 관습에 따른 정당한 행위였다고 주장했습니다. 많은 사람은 충격에 빠졌지만, 한편으로 이들을 두둔했습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은 더는 생존을 위한 살인에 예전처럼 관대하지 않았습니다. 두들리와 스티븐스의 형사재판에 판결을 맡은 허들스톤 (Huddleston) 판사는 필요(necessity)라는 이유로 살인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고 밝히고 둘에게 법적으로 정해진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처했던 극단적인 상황을 참작해 여왕의 자비(recommendation for mercy)를 부탁했지요.

 

옛날부터 영국의 왕은 죄인을 사면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당시 내무부 장관이던 하코트(Harcourt)의 조언을 받아 두들리와 스티븐스의 형을 징역 6개월로 감해줍니다.

 

사실 이 사건이 정말 유명해진 이유는 1838년 에드가 앨런 포(Edgar Allan Poe)가 쓴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The Narrative of Arthur Gordon Pym of Nantucket)라는 소설 때문입니다. 미뇨네트호 사건이 있기 45년 전에 쓰인 이 책에는 대서양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던 선원들이 제비뽑기를 하여 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이름은 미뇨네트호 사건의 희생자와 같은 리차드 파커(Richard Parker)입니다.

 

 

*법적 책임면제고지: 이 글은 법률 조언이 아니며 저자는 이 글에 대한 일체의 법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법률 조언이 필요하신 분은 변호사를 찾으십시오.



이정운 변호사의 풀어쓴 캐나다법 이야기
칼럼니스트: 이정운 변호사
  • UBC 로스쿨 졸업
  • UBC 경제학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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