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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아홉 번째 이야기 – 국제법과 남북 관계 (2)

이정운 변호사 piercejlee@hot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2-01-07 16:41

국내문제 불간섭원칙과 관련된 유명한 판례로 흔히 “니카라과 사건”이라고 알려진 미국과 니카라과 정부 사이에 있었던 소송이 있습니다.

 

니카라과는 중앙아메리카에 위치한 작은 나라로 1821년까지 스페인의 식민지였습니다. 이후 잠시 동안 멕시코와 중미 연합의 일부였다가 1838년 독립하였는데 독립 후에도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 간의 치열한 다툼 때문에 정치적으로 불안했습니다.

 

보수주의자를 지원한 미국은 1912년부터 1933년까지 국가 경비대 (National Guard) 란 이름으로 니카라과에 군대를 주둔시켰는데 이 군대의 우두머리였던 소모사 (Somoza) 장군은 1937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20년 동안 미국의 비호를 받으며 니카라과의 독재자로 군림하였습니다. 또한, 그의 아들도 권력을 대물림하여 1979년까지 니카라과를 지배했습니다.

 

소모사 왕조를 무너트린 것은 쿠바의 지원을 받은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Sandinista National Liberation Front) 이었는데 오랫동안 친미 우익 정책을 펴던 소모자 왕조를 무너트린 산디니스타 정권을 미국이 탐탁게 여길 리 없었습니다.

 

좌파 혁명이 남미 전체로 퍼질 것을 두려워한 미국은 산디니스타 정권을 무너트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1981년 탄생한 레이건 정권은 산디니스타 정권이 엘살바도르의 게릴라 활동을 지원한다는 이유로 니카라과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산디니스타 정권에 대항하는 콘트라 반군에 1천만 달러가 넘는 지원을 하였습니다. 또한, 니카라과에 무역 제재를 가하는 한편 니카라과 영해와 내수에 수뢰를 매설하고 항만, 정유시설, 해군기지를 공격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니카라과 정부는 1984년 미국의 행동이 국제법에 어긋난다며 국제사법재판소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국내문제 불간섭원칙이라는 국제 관습법을 위배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미국은 국제사법재판소에 이 문제에 관한 재판을 진행할만한 사법권 (jurisdiction)이 없다고 주장했고 이 주장이 기각되자 소송에 참여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결국, 미국의 참여 없이 진행된 이 재판에서 국제사법재판소는 니카라과 내정에 대한 미국의 간섭은 UN이 우호관계선언을 통해 명문화한 내정문제 불간섭원칙을 위배한 행위라고 판결하였습니다.

 

물론 이러한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이 니카라과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바꾸어놓진 않았습니다. 그럴만한 힘이 국제사법재판소에는 없었으니까요.

 

판결을 강제로 집행할 방법이 없다는 것은 국제법이 가진 가장 큰 한계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제법을 무시하고 힘에 의존한 외교를 하면 전 세계의 비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급변사태 시 한국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고 간여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계속)


 

*법적 책임면제고지: 이 글은 법률 조언이 아니며 저자는 이 글에 대한 일체의 법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법률 조언이 필요하신 분은 변호사를 찾으십시오.



이정운 변호사의 풀어쓴 캐나다법 이야기
칼럼니스트: 이정운 변호사
  • UBC 로스쿨 졸업
  • UBC 경제학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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