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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여섯 번째 이야기 – 도랜스의 소탐대실

이정운 변호사 piercejlee@hot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1-12-06 00:11

영미법에도 본적지와 비슷한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도미싸일 (Domicile) 입니다. 도미싸일은 “삶의 터전”이 되는 곳을 말하는데 주거지나 국적과 다른 개념입니다.

 

갓 태어난 아이는 부모의 도미싸일을 그대로 물려받습니다. 하지만 부모의 보살핌을 벗어나면 자신의 도미싸일을 선택할 수 있는데, 이때 중요한 것은 어느 장소에 영구히 머무르겠다는 의사입니다. 실제 거주한 기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도미싸일은 두 지역의 법이 충돌할 때 특히 중요합니다. 법의 충돌 (conflict of laws) 이란 어느 곳의 법을 적용해야 할지 애매한 상황을 말하는데 특히 가정법과 상속법을 적용할 때 많이 발생합니다. 이때 당사자의 도미싸일에 따라 적용하는 법이 달라지곤 합니다. 

 

도미싸일에 관한 가장 유명한 판례는 1930년대 초에 있었던 존 도랜스 (John Thompson Dorrance) 의 유산에 관한 일련의 재판들인데 도랜스는 농축 수프 (condensed soup) 의 발명가이자 캠벨 수프 社 (Campbell Soup Company) 의 사장이기도 했던 입지적인 인물입니다.

 

1897년 자신의 사촌이 매니저로 있던 캠벨에 입사한 도랜스는 1914년 사장의 자리에 오릅니다. 이후 캠벨을 사버리지요. 그리고 캠벨을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로 만드는데 성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합니다.

 

도랜스는 1925년까지 뉴저지 주에 살다가 1925년 겨울 펜실베니아 주로 이사를 갔습니다. 하지만 뉴저지 집을 팔지는 않았습니다. 이는 변호사의 충고에 따른 것이었는데요. 뉴저지가 펜실베니아에 비해 여러 가지 세금이 적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뉴저지의 세금혜택을 받기 위해 도랜스는 늘 사람을 두고 뉴저지 집을 관리하고 때때로 방문해 머무르기도 했습니다. 또한 각종 서류상에도 계속 뉴저지가 자신의 도미싸일이라고 표시했습니다.

 

문제는 1930년 도랜스가 세상을 떠나면서 생겼습니다. 도랜스의 유언집행인은 뉴저지가 도랜스의 도미싸일이었다고 신고하고 약 17백만 달러의 상속세를 뉴저지에 납부했습니다. 하지만 펜실베니아 주 역시 도랜스의 도미싸일이었다고 주장하며 비슷한 금액의 상속세를 지불하라는 소송을 제기하였던 것입니다.

 

도랜스의 유언집행인은 도랜스가 죽을 때까지 자신의 도미싸일은 뉴저지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는 사실을 들며 반박했지만 펜실베니아 주 최고법원은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도미싸일을 판단할 때 중요한 것은 말보다 행동이라고 밝혔습니다. 즉 도랜스가 살아 생전 자신의 도미싸일은 뉴저지라고 주장했지만 실제 그의 행동을 보면 펜실베니아 주에 영구히 거주하려는 의사가 분명했다는 것입니다.

 

두 주에 모두 상속세를 지불하게 되자 당황한 도랜스의 유언집행인은 뉴저지 주에 지불한 상속세를 돌려받으려고 소송을 시작하지만 이 소송 역시 패소하게 됩니다. 이유는 뉴저지주가 펜실베니아 주 법원의 결정을 따라 할 이유가 없으며 도랜스의 유언집행인이 도랜스의 도미싸일이 뉴저지라고 신고한 이상 이를 번복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세금을 아끼기 위해 두 곳에 집을 둔 도랜스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도미싸일에 관한 명 판례가 남았지요.

 


*법적 책임면제고지: 이 글은 법률 조언이 아니며 저자는 이 글에 대한 일체의 법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법률 조언이 필요하신 분은 변호사를 찾으십시오.

 

 

 


 



이정운 변호사의 풀어쓴 캐나다법 이야기
칼럼니스트: 이정운 변호사
  • UBC 로스쿨 졸업
  • UBC 경제학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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