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번째 이야기 – FTA와 ISD조항 (3)

이정운 변호사 piercejlee@hot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1-11-27 10:18

메틸알코올을 메탄올 (methanol) 이라고도 합니다. 술에 들어있는 에틸알코올과 달리 독성이 있어서 인체에 치명적이지요. 하지만 화학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원료이기도 합니다.

전세계에서 메탄올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회사는 밴쿠버에 위치한 메타넥스 社 (Methanex Corporation) 입니다. 연간 생산량은 8~9 백만 톤에 달하고 시장점유율이 30%에 근접합니다.

메타넥스는 1999년 NAFTA 11장 (북미 자유무역협정 ISD 조항, 지난주 컬럼 참고) 을 근거로 미국정부를 UN국제무역법위원회 (UNCITRAL) 에 제소한 일이 있습니다. 이유는 당시 캘리포니아 주의 데이비스 (Gray Davis) 주지사가 메탄올을 원료로 하는 MTBE라는 석유 첨가제의 사용을 2002년부터 금지하겠다는 행정명령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MTBE는 옥탄가가 높아 휘발유의 완전연소를 도와줍니다. 따라서 대기오염을 줄여주지요. MTBE는 1970년대 납 성분이 들어간 가연휘발유가 전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금지되자 첨가제로 각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캘리포니아 지하수에서 MTBE 가 검출되자 물에 쉽게 녹는 특성을 가진 MTBE가 수질을 오염시킨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결국 캘리포니아 주는 MTBE를 금지할 계획을 발표하게 된 것이지요.

메탄올 판매에 큰 차질을 빚게 된 메타넥스는 미국정부를 상대로 무려 9억7천만 달러 (미화) 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는데요. 메타넥스는 지하수에서 MTBE가 검출된 것은 캘리포니아 주가 수질관리와 관련된 법규정을 엄하게 적용하지 못해서 생긴 일 일뿐 MTBE 차체를 금지시킬 과학적 근거는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메타넥스의 주장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주의 결정은 NAFTA 1110조에 규정된 몰수행위 (expropriation) 로 1102조에 보장된 내국민대우 (national treatment) 의 원칙을 위반하였으며, 1105조에 보장된 “국제법에 따라 타당하며 공평한 대우” (fair and equitable treatment) 를 받을 권리를 침해하였습니다.

또한 메타넥스는 캘리포니아 주의 결정이 데이비스 주지사의 부패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습니다. 에탄올 (에틸알코올) 을 생산하는 ADM 社 (Archer Daniels Midland) 가 부적절한 방법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었습니다. MTBE가 금지되면 에탄올 첨가제의 수요가 늘 테니까요.

아무튼 이러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메타넥스는 UN국제무역법위원회에서 패소하였고 미국정부에 약 3백만 달러 (미화) 의 소송비용을 지불하게 되었습니다.

UN국제무역법위원회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주의 행정명령은 공정하며 투명하게 내려졌으며 충분한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데이비스 주지사의 부패혐의 역시 뚜렷한 증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소송은 1997년에 있었던 에틸 사건과 비슷해 보이나 자세히 보면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두 사건 모두 ISD조항이 있을 때 정부는 정책의 투명성과 공평성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이 글을 쓰는 즈음 한미 FTA가 비준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논란 속에 이루어진 일이지만 부디 한국경제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ISD조항 역시 한국에 득이 될지 해가 될지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겠지만, 부디 한국정부가 억울하게 제소 받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또한 국제분쟁 시 한국기업과 정부를 제대로 변호할 수 있는 실력 있는 변호사가 많이 배출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법적 책임면제고지: 이 글은 법률 조언이 아니며 저자는 이 글에 대한 일체의 법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법률 조언이 필요하신 분은 변호사를 찾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