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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두 번째 이야기 – 엄격책임

이정운 변호사 piercejlee@hot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1-11-06 22:06

손해배상 소송의 근거는 과실인 경우가 많습니다. 누군가의 부주의로 인해 다치거나 재산상 손해를 입었을 때 그 책임을 묻는 것이지요.

 

하지만 과실과 무관하게 책임을 묻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애완동물로 호랑이를 기르는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호랑이 주인은 매우 철저한 사람이어서 평소에 늘 호랑이를 묶어두거나 아주 튼튼한 철창에 가두어 둡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호랑이가 탈출해 옆집의 이웃을 공격했습니다. 그러면 호랑이 주인은 책임이 있을까요?

 

당연합니다. 그리고 그 책임은 과실과 무관합니다. 다시 말해 호랑이 주인이 아무리 호랑이를 철저하게 관리했어도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렇듯 과실과 무관한 손해배상의 근거를 strict liability, 엄격책임또는 무과실책임이라고 합니다.

 

엄격책임에 관한 고전과 같은 판례로 Rylands v. Fletcher가 있습니다. 1868년 영국 상원 (House of Lords) 이 판결한 재판입니다.

 

잠깐, 무언가 이상하지요? 상원은 입법기관인데 상원에서 판결했다? 그렇습니다. 2009년 영국 대법원 (Supreme Court of the United Kingdom) 이 생기기 전까지 영국의 최고 법원은 상원이었습니다. 물론 상원 의원이 모두 판사의 역할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명 “Law Lords”, 즉 법 의원을 임명해서 이들에게 판결을 맡겼지요.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Rylands v. Fletcher는 직물제조업으로 맨체스터 (Manchester) 최고의 부자가 된 존 라이랜즈 (John Rylands) 에 관련된 소송입니다.

 

1860년 라이랜즈 씨는 자신의 면직공장에 물을 대기 위해서 큰 저수지를 지었습니다. 땅을 파고 물을 채웠지요. 그런데 그 저수지의 물이 넘쳐 흘러 바로 옆 광산이 침수되어 버렸습니다. 광산의 주인인 토마스 플랫처 (Thomas Fletcher) 씨는 급히 양수기를 동원해 물을 퍼냈지만, 물은 계속 차올랐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플랫처 씨는 전문가를 불러 원인을 조사했고, 전문가는 라이랜즈 씨의 저수지 아래에 플랫처 씨의 광산으로 통하는 오래된 갱도가 있음을 밝혀내었습니다. 물을 퍼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던 거지요.

 

당시 돈으로 약 937파운드에 달하는 손해를 입은 플랫처 씨는 라이랜즈 씨와 저수지를 지은 시공업자를 고소했습니다. 하지만 플랫처 씨는 첫 두 번의 재판을 연달아 지고 마는데요. 이유는 라이랜즈 씨의 과실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플랫처 씨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었지요.

 

하지만 상황은 세 번째 재판에서 역전되었는데요. 재무부 회의소 법원 (Court of Exchequer Chamber) 에서 과실과 무관하게 라이랜즈 씨에게 책임이 있다고 판결한 것입니다. 블랙번 (Blackburn) 판사는 남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무언가를 자신의 땅에 들여놓은 사람은 만약 그것이 자신의 땅을 벗어나 남에게 해를 끼쳤을 때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이후 라이랜즈 씨는 다시 한번 항소했지만, 상원은 결국 플랫처 씨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오늘날 엄격책임의 원칙은 생활 방해 (nuisance: 소음, 오물, 매연 등을 방산하여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 제조물 책임 (product liability) 등 여러 분야에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법적 책임면제고지이 글은 법률 조언이 아니며 저자는 이 글에 대한 일체의 법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법률 조언이 필요하신 분은 변호사를 찾으십시오.





이정운 변호사의 풀어쓴 캐나다법 이야기
칼럼니스트: 이정운 변호사
  • UBC 로스쿨 졸업
  • UBC 경제학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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